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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마술사 권용래 "나는 붓 대신 망치 든 노동자"

제이슨 임 문화전문기자
기사승인 : 2024-11-14 09:27:02
구상·추상 넘나든 화가에서 빛의 마술사로
버리는 포장 포일에 비친 찰나의 빛에 영감
기독교에서 불교까지 철학 사유 담뿍 담아

그림이 손에서 잘 떠나지 않았다. 그림이 막히자, 허기가 밀려온 모양이다. 작가는 배도 채우고 갈증도 털어야 했다. 치킨과 맥주로 육신을 채우곤 손에 움켜쥔 알루미늄 포장 포일을 휴지통에 던진다. 순간 조명에 부딪힌 포일이 찰나의 빛과 만나 환영을 연출한다.


권용래 작가의 스테인리스 일루젼시리즈는 마치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처럼 세상에 나왔다.
 

▲ 권용래 작품, Light in Light - Orange Yellow, 145.4X227.3cm, stainless steel on canvas, 2023 [작가 제공]

 

권 작가는 본래 붓을 든 화가였다. 대학원을 막 졸업할 때부터 유명 갤러리의 전속작가가 돼 시쳇말로 잘 나가는, 전도유망한 화가로 활동했다. 구상에서 반추상까지 다양한 작품 세계를 거친 그는 늘 자기 방식을 찾아 나갔지만, 늘 허기를 느꼈다.

"예술은 늘 새로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쓰는 캔버스와 물감에 대한 불편함도 저를 눌렀죠." 그는 인터뷰 시작부터 "예술은 작품의 내용뿐만 아니라 재료의 새로운 연구가 필요하다"는 지론을 폈다.

"의왕 창고에서 작업했어요. 한번은 큰 비가 와서 작품 여러 점을 잃었죠." 작가로서 살점이 떨어지는 고통이었을 터. 작가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불행은 오히려 그에게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 그동안 찾던 새로운 방식을 더 빨리 결정하는 모멘텀이 됐다.

 

우연일지 운명일지 그에게 던져진 찰나의 순간은 그의 예술혼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사실 당시에도 '덜 변하는 재료, 재활용이 가능한 재료가 무어냐'는 고민도 하고 있었죠. 특히 오랫동안 '빛으로 어떻게 세상을 꾸릴까'라는 긴 염원이 있었는데 우연의 순간에 실타래가 확 풀렸죠."


▲ 권용래 작품, Eternal Flame-Sky Blue, 181X259cm, stainless steel on canvas, 2023 [작가 제공]

 

그의 작품은 일종의 '설치미술'이다. 사각 캔버스 위에 수천 개의 스테인리스 조각을 붙이고 조명을 비춰 작품을 완성한다. 그러려면 인고의 시간과 과정이 필요하다. 처음엔 스테인리스 스틸 판재를 '미러'로 가공해야 한다. 거울 효과를 내기 위해서다. 판재는 수천 개의 작은 유닛으로 오려진다. 유닛엔 망치질도 가해진다. 빛이 비칠 때 다양한 효과 때문이다. 나중에 수천 개 유닛은 캔버스 위에 자기 자리를 찾아 고정된다. 클라이맥스는 조명이 뿌려지는 순간이다. 사각 틀 작품 위에 빛이 비추면 차가운 유닛의 성질은 이내 사라지고 빛이 만드는 황홀한 환영이 세상에 튕겨 나온다. 배경 채색에 따라 어떤 작품은 석양처럼 물들고 어떤 작품은 바다인 양 파도가 일렁인다.

 

"나의 작품은 빛입니다.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빛을 쓴 것이 아니라 빛 자체가 재료이자 기법이며 표현이죠. 사실 나는 빛을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빛이 머물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의 얘길 들어보면 물감을 대신하는 건 빛인 듯하다.

그런 점에서 그는 '빛을 좇는 예술가'로 불려야 할 듯하다. "현대미술은 태동기부터 빛에 대한 화두를 짊어진 시각예술로 봐도 무방해요. '빛은 무엇인가'란 물음은 영원히 짊어져야 할 숙제죠. 그런 점에서 제 작업은 드로잉보다 훨씬 빛을 잘 표현할 수 있어요."

그의 일루전은 형이상학적으론 알파와 오메가다. 작가 자신은 기독교 배경이라지만 그의 작품 속엔 전능자의 "빛이 있으라"는 기독사상부터, 히랍 철학, 불교의 화엄 사상까지 안 닿은 곳이 없다.

 

형이하학적인 설치방식에도 고도의 사유가 있다. 작품 중간엔 마치 작은 강줄기 같은, 패인 듯한 음영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그의 설명을 들어보면 이런 움푹 파인 음영, 없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그는 그곳에 더 많은 유닛을 채워야 한다고 했다. '비우기 위해 더 많은 것을 채운다'는 다소 도발적인 사유는 빛이 만드는 그의 환영만큼이나 강한 망치로 머리를 치는 듯했다. 또 이런 그의 작품들은 다양한 철학적 사유를 넘어 고도의 과학 역량까지 집대성 한 점에서 유의미하다.

 

▲ 권용래 작가가 유닛 작업을 하고 있다. [작가제공]

 

"작품은 하나의 그릇이죠. 내용이 담긴 사각 틀에만 있다곤 할 수 없죠. 작가가 어떤 걸 표상하느냐가 중요하죠. 어떤 경우엔 그 모든 것이 사각 틀 밖에 있다고 볼 수도 있죠. 작품을 보며 이런 정신, 영성, 감성 같은 걸 찾아볼 수 있다면 저는 족해요."

 

알 듯 모를 듯 이어지는 그의 설명은 빛만큼이나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는 인터뷰 끝에 프랑스 철학자인 '가스통 바슐라르'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작품들은 바슐라르의 '촛불의 미학'의 현신처럼 보였다. 촛불 불꽃이 응시자를 몽상의 세계로 이끈다면 그의 일루전은 마치 억겁 너머 생사도 모를 환영으로 인도하는 듯.

빛의 마술사 권용래. 렘브란트, 마네, 모네, 르누아르, 고흐 같은 빛을 좇던 역대 거장들은 그의 작품을 어떻게 평할까. 그들은 상상하지 못한 표현기법에 찬사를 쏟아내지 않을까.

그런데 그는 정작 자기를 두고 "붓 대신 망치를 든 노동자"라 낮춰 불렀다.

권 작가의 작품들은 다음달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다음 달 3일부터 8일까지 미국 마이애미 One Herald Plaza에서 열리는 'ART Miami 2024' 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 권용래, 과천 센텀스퀘어, Vision-Light, stainless steel on stone wall, 2022 [작가 제공]

 

권 작가는 서울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수학했다. 일찍이 동아미술상(1992)과 중앙미술대전 장려상(1989)을 받았다. 작품들은 현재 국립 현대미술관, 호암갤러리, 삼성미술문화재단, 현대미술관(울산), 서울 시립미술관, 홍콩 콴훤핀 미술관, 중국 북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국립 현대미술관 미술은행, 대구미술관, 우리옛돌 박물관, 실비아왈드 엔 포김 미술관 등 국내외 주요 미술관을 비롯해 메리어트 호텔 여의도, 메리어트 호텔 창원, 분당 서울대학교 병원, 삼성서울병원, 안국약품, 여의도 수출입은행, ㈜SPG, 송암천문대, 청심문화센타, 엘지전자, 지에스홈쇼핑사옥, 동아알미늄 사옥, 스카이밸리CC, 삼원제지 사옥, 대전지원천안법원, 울산블루마시티, 광명 스마트워크센타, 울산 블루마시티, 카타리나 기념관, 제주그랜드하얏트호텔, 수원 포포인츠 쉐라톤호텔, 박진영 병원 등 주요 기관에 소장돼 있다.

 

KPI뉴스 /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Jasonyim@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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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임 문화전문기자
제이슨 임 문화전문기자 안녕하세요.아트전문기자 제이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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