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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에 놓인 '거리 위의 노인들'

김이현
기사승인 : 2018-10-02 10:27:43
보행 중 교통사고 사망자 절반 이상이 노인
"집값 하락·주차 불편" 실버존 님비 현상도

 

▲ 지난달 28일 서울 청량리 청과물 도매시장 앞 횡단보도에서 사람들이 급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김이현 기자]

 

지난달 28일 서울 청량리 청과물도매시장 앞은 노인들로 붐볐다. 성바오로병원과 시장을 연결하는 교차로의 신호등에 파란불이 켜지자 그들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 횡단보도의 도로 폭은 건너편까지 약 35m, 대각선으로는 약 50m. 보행신호 시간은 약 55초다. 걸음이 느린 노인들이 건너편 인도에 도착하자마자 빨간불이 켜졌다. 짐을 든 한 노인은 파란불이 약 30초 남았을 때 건너기 시작했고, 걷는 도중 신호는 빨간불로 바뀌었다. 이미 신호 대기선을 넘어 출발하는 차량과 기다리는 차량이 뒤섞여 아찔한 상황이 연출됐다.

보행 중 교통사고로 죽거나 다치는 노인(65세 이상)이 늘어나고 있다. 노인을 교통사고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노인보호구역(실버존) 제도가 시행되고 있지만 노인 교통사고 사망자 비율은 매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 2017 노인 보행자 교통사고 자료 [행정안전부 제공]


경찰청에 따르면 작년 기준 전체 보행 사망자 1675명 중 노인이 54%(906명)에 달했다. 보행 중 교통사고로 숨지는 사람 중 절반 이상이 노인이라는 의미다. 특히 2013년 3만283건이었던 고령 사상자 발생 교통사고는 2017년 3만7555건으로 5년 새 약 25% 증가했다.  

 

▲ 2017 노인 보행자 교통사고 자료 [행정안전부 제공]


노인들이 자주 다니는 시장과 병원 등에서 사고가 가장 빈번하게 일어났다. 청량리 청과물시장과 경동시장 일대는 지난해 ‘노인 보행자 교통사고 다발지역’ 전국 1위였다. 횡단보도가 없는 곳에서 길을 건너거나, 보행 신호가 끝나기 전에 횡단보도를 다 건너지 못하는 이유 등이었다.

 

▲ 청량리역~청량리 청과물 도매시장 앞 도로. 두 횡단보도 사이 거리가 200m 가량이다. [그래픽 김상선]


7년째 청과물도매시장에서 잡화를 판매하고 있는 A(72·여)씨는 "청량리역과 시장 사이의 횡단보도 간격이 너무 멀다"면서 "몸이 아픈 노인들이 멀리갈 수 없으니 횡단보도가 없어도 그냥 건너다녔던 것"이라고 말했다. 청량리역 횡단보도에서 시장 교차로 사이의 거리는 약 200m다.

그러나 지금은 도로를 가로질러 다닐 수 없다. 동대문구와 동대문경찰서에서 지난 5월 이곳을 '실버존'으로 지정하고 중앙분리대를 설치했기 때문이다. A씨는 "중앙분리대가 생기고 나서는 길을 못 건너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는 보행 사고가 안 나는 게 아니라 막혀 있으니 덜 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 서울 청량리역과 청량리 청과물 도매시장 앞 교차로 사이에 중앙분리대가 설치돼 있는 모습 [김이현 기자]


실제로 사고가 빈발했던 청량리 청과물 도매시장 인근의 지난해 교통사고 사망자는 25명에서 올해 7월까지 7명으로 줄었다. 중앙분리대를 설치하고 제한 속도 하향을 표시해 단속하는 등 실버존을 지정해 사고를 줄인 것이다.

이처럼 전국에 설치된 실버존은 2018년 6월 기준 1457개소다. 이곳은 복지시설이나 의료시설, 여가시설 주변에 지정되는데 노인보호표지판과 과속방지턱, 미끄럼방지 등의 시설이 설치되며 차량 속도 제한이 있다. 일반 도로에 비해 범칙금과 벌점을 2배로 부과하며 휴일과 공휴일 관계없이 매일 오전 8시~오후 8시까지 적용된다.

통행금지 제한이나 주·정차 위반 8만원, 신호·지시 위반 12만원, 보행자 보호 의무 불이행은 횡단보도에서는 12만원, 일반 도로에서는 8만원의 범칙금이 부과된다. 속도위반은 △ 20km/h 이내는 6만원 △ 20~40Km/h는 9만원 △ 40Km/h 초과는 12만원이 부과된다. 특히 교통사고가 발생하면 운전자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로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이 선고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 지난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노인보호구역에서 노인들이 도로를 지나다니고 있다. [정병혁 기자]


지난 2010년 노인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동대문구 한 경로당의 회장 B씨는 "이 주변 도로가 노인보호구역인지 알지도, 들어보지도 못했다"며 "실버존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했다. 

동대문구 전농동에 위치한 대한노인회 동대문구지회는 2017년 실버존으로 지정된 곳이다. 이 건물 앞 도로에는 시속 40km 제한을 알리는 글자와 함께 '노인보호구역' 표지판이 서있다. 해당 도로 인근 건물관리자 D씨는 "40km 제한 구역이라고 쓰여 있지만 이를 단속하는 카메라는 저 멀리 사거리에 설치돼 있고 그마저도 60km 제한이다. 사실상 강제성이 없다"면서 "그냥 노인보호구역이라는 공간이 있음을 참고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12년째 택시를 운행하는 C씨(52·남)는 "학교 앞이야 어차피 속도를 줄여야 한다는 인식이 있지만, 노인보호구역은 잘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갑자기 튀어나오거나 무단횡단을 하는 건 노인들도 아이들 못지 않다"면서 "실제로 사고를 경험한 적은 없지만 불안한 상황이 있을까 싶어 항상 노심초사한다"고 말했다.  

 

▲ 지난달 28일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에 위치한 대한노인회 동대문구지회 앞 도로 모습. [김이현 기자]

 

더욱이 실버존은 어린이보호구역인 '스쿨존'(1만6355곳)과 비교하면 10%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경찰청 교통운영계 관계자는 "실버존은 스쿨존과 달리 지자체별로 지정관리 계획을 수립하게 돼 있다"면서 "스쿨존 같은 경우는 신규지정할 때마다 국비로 예산이 지원되지만 실버존은 지자체 예산이기에 재정자립도에 따라 노인 관련 예산이 적은 것이 현실"이라고 밝혔다.

이어 "시설주들이 직접 자신의 동네를 노인보호구역으로 신청해야 하는데, 주민들의 반대에 부닥치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그는 "실버존은 주차금지 단속에 대한 범칙금 과태료가 2배 가까이 되고, 속도 제한과 주·정차 제한과 같은 불편이 있기 때문"이라면서 "집값 하락 등 여러 가지 문제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높다"고 덧붙였다.

양정빈 남서울대 노인복지학과 교수는 "노인들은 도로 안전에 대한 인식이나 교육이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보다 접근성이 떨어진 세대"라면서 "노화 과정에 따라 판단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노인 보행사고 증가 원인을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운전자의 시야가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노인보호구역과 중앙분리대 등과 같은 시설에 대한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보행자 안전교육과 캠페인 등 민간과 지자체가 함께 다각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을 통해 노인의 보행사고를 예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KPI뉴스 / 김이현 기자 kyh@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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