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간첩 조작 후 이중간첩 역할 강요…43년 만에 풀린 보안사 족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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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 조작 후 이중간첩 역할 강요…43년 만에 풀린 보안사 족쇄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Google구글에서 선호하는 출처로 추가
기사승인 : 2026-05-29 16:00:19
1983년 '재일 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 피해자 김병진 씨
보안사가 조작…검찰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건
검찰, 유죄 전제 '공소 보류' 상태였던 김 씨에게 무혐의 처분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3년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이란 게 있었다. 국군보안사령부(국군방첩사령부 전신)가 조작한 사건이었다. 당시 이 사건에 휘말려 간첩으로 몰렸던 김병진 씨에게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사건 발생 후 43년 만이다.


서울중앙지검은 28일 김 씨와 관련해 "1983년 11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공소 보류 처분했던 사건을 직권으로 재기해 혐의 없음 처분했다"고 밝혔다. 공소 보류는 국가보안법에 규정된 죄를 지은 사람에 대해 검사가 범행 후 상황 등을 참작해 재판에 넘기는 걸 보류하는 조치다. 유죄를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김 씨가 지난해 8월 '공소 보류 처분 직권 취소 요청' 진정서를 냈는데, 검찰이 그 내용을 검토해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것이다. 

 

▲ '재일 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을 조작한 보안사의 후신 국군방첩사령부 엠블럼. [국군방첩사령부]

 

검찰이 국가보안법 관련 공소 보류 처분 사건을 직권으로 재기해 무혐의 처분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소돼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것이 아니기에 재심을 청구할 수도 없었던 김 씨 경우와 유사한 다른 피해자들 사안에 대해서도 앞으로 같은 조치가 이어질지 주목된다.

김 씨가 휘말린 사건을 조작한 주범은 보안사이지만 검찰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도 이번 결정은 눈길을 끈다. 이 문제를 살피려면 사건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국내에 들어와 대학원생이자 일본어 강사로 활동하던 재일 한국인 3세 김 씨는 1983년 7월 악명 높은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끌려갔다. 그곳에 석 달 동안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고문을 당하며 간첩으로 조작됐다. 보안사 요원들은 김 씨를 서모 씨에게 포섭된 간첩으로 몰아갔다.

만행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보안사는 김 씨에게 역용(逆用) 공작을 강요했다. 역용 공작은 적국 정보 요원을 포섭해 이중간첩으로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보안사가 민간인을 간첩 혐의로 영장 없이 검거한 다음 이중간첩 역할을 강제한 사례는 김 씨 외에도 더 있다. 그중에는 공작이 종료되자 보안사가 그간 이중간첩 역할을 하게 한 피해자를 구속한 경우도 있다.

김 씨는 보안사의 역용 공작 강요를 거부하지 못했다. 고문에 시달린 데다, 아내와 아직 돌도 안 지난 아기의 안전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였다. 결국 보안사에 강제로 채용돼 다른 재일 한국인을 간첩으로 조작하는 일에 투입되는 기막힌 일을 겪어야 했다.

김 씨를 간첩으로 몰아간 것으로 모자라 자신들을 위해 일하게 강요하기까지 한 보안사의 행태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거창 학살을 자행한 군부대가 학살 현장의 생존자를 끌고 다니며 잡일까지 하게 한 것을 떠올리게 만든다.

보안사가 김 씨에게 역용 공작을 강요할 때 이용한 지렛대 중 하나가 공소 보류 처분이다. 이와 관련, 2009년과 2024년에 김 씨 사건을 조사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검찰은 민간인 수사권이 없는 보안사가 국가안전기획부 명의를 빌려 위법 수사한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공익의 대표자로서 수사 기관 지휘·감독의 본분을 다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공소 보류 후 2년이 지나 소추할 수 없게 된 1986년, 김 씨는 보안사에 사표를 내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보안사의 간첩 조작 실상을 상세히 정리한 책 '보안사'를 1988년에 출간했다. 이 책은 보안사에서 간첩으로 조작된 다른 피해자들이 훗날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을 때 증거로 활용된다.

2000년대 들어 진실화해위가 김 씨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고 사과와 명예 회복 조치 등을 권고했지만, 보안사가 김 씨에게 씌운 간첩 누명을 근거로 한 공소 보류 족쇄는 풀리지 않았다. '김 씨를 간첩으로 포섭한 인물'이라고 몰아간 보안사 때문에 중형을 받았던 이른바 '김 씨 공범' 서 씨가 2017년 재심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음에도, 김 씨를 괴롭힌 족쇄는 그대로였다.

그러다가 이번에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것이다. 사건 발생 후 이 결정이 나기까지 43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20대 청년이던 김 씨는 70대 노인으로 변했다.

  

KPI뉴스 /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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