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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파에 찌든 사람들은 비양도로 가라

김병윤
기사승인 : 2018-11-12 17:35:25
손수레가 유일한 운송수단…비양봉 등대는 세상을 밝혀
▲ 비양도 [뉴시스]

 

비양도. 왠지 이름부터 남다르다. 무슨 뜻이 숨겨져 있을까. 간단하다. 날아온 섬이라는 뜻이다. 전설이다. 그래도 흥미롭다. 중국에서 산봉우리가 날아왔단다. 동화 얘기 같다. 그래서 정이 간다. 직접 발을 내디디면 더 정겹다. 상쾌하다. 속이 뻥 뚫린다. 무작정 걷고 싶다. 바닷바람이 얼굴을 때린다. 그마저도 기분이 좋아진다.

비양도는 현림읍 유일한 섬이다. 3.5Km의 해안도로는 비양도의 자랑이다. 세파에 찌든 사람들은 비양도로 가라. 멍하니 해안도로를 걸어라. 아주 천천히 걸어라. 급할 게 없다. 걷다 보면 너울 파도에 옷이 젖는다. 이마저도 힐링이다. 파도 소리가 그대의 시름을 잊게 하리라. 새까만 현무암초가 그대를 반기리라. 인생은 그런 거라고 알려 주리라. 파도에 씻기는 내 몸도 아프다고. 아프니까 인생이라고.

바다의 넓은 품이 안식을 줬는가. 평안을 찾았으면 세상을 넓게 보자. 비양도의 수호신 비양봉에 오르자. 비양봉은 높지 않다. 해발 114m의 낮은 산이다. 용암의 분출로 이뤄졌다. 오르기 편하다. 등산화가 필요 없다. 가는 길도 즐겁다. 시름을 내려놓은 인생길처럼. 걷는 걸음마다 축복이다. 억새가 무성한 등산길은 또 다른 절경이다. 따가운 햇볕이 심술을 부린다. 짜증이 날 만할 때 천사가 나타난다. 수고한다고. 그늘을 준다. 대나무 숲이 반겨준다. 시원하다. 그대로 머물고 싶다. 그래도 가야 한다. 더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고지가 바로 저긴데. 잠깐 가쁜 숨을 몰아쉬면 끝이다.

비양봉 정상이다. 세상이 탁 트인다. 어디를 둘러봐도 바다이다. 시원하다. 아무 생각이 안 든다. 무상무념이다. 높아야만 산이 아니다. 낮아도 세상을 발밑에 놓을 수 있다. 바로 그런 산이 비양봉이다.

비양봉은 회색빛 건물을 원치 않는다. 인간의 탐욕이 서려 있어서. 쪽빛 바다를 보여준다.

쪽빛이 무슨 뜻인가. 하늘을 닮은 푸른빛 아닌가. 비양봉은 말없이 일러준다. 사람들도 이런 마음으로 살라고.  

 

▲ 비양봉 정상의 등대는 제주도 서부바닷길을 밝히고 있다. [동인투어 제공]


비양봉 정상에는 등대가 있다. 비양도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제주도 서부를 비춰준다. 차귀도 등대와 쌍둥이 같다. 하얀색이 깔끔해 보인다. 깨달았으면 속세로 돌아가자. 불과 10분이면 사람 사는 동네이다. 내려가는 발걸음이 아주 가볍다. 구름을 밟는 듯하다. 왜 그럴까. 지친 삶을 벗어나서. 세상을 얻은 것 같아서. 쌓였던 응어리가 풀려서. 그럴 수도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게다. 그 기분은 각자의 선택에 맡기자.

사람 소리가 들린다. 고양이도 보인다. 정겨운 돌담들이 보인다. 하르방이 억새를 잘라내고 있다. 하르방의 땀방울이 성스럽게 보인다. 선착장 부근서 위하여가 들린다. 술이다. 도시에서는 소음이었는데. 비양도에서는 합창으로 들린다. 자연이 주는 분위기의 마력이다. 사람을 여유 있게 만든다. 물끄러미 바라봤다. 눈치 빠른 여행객이 한 잔 하란다. 목이 컬컬했는데. 왠 횡재인가. 체면이랄 게 없다. 덥석 받아들였다. 막걸리의 시원함에 전율이 느껴진다. 안주마저 혼을 뺀다. 자연산 뿔소라. 싱싱하다 못해 너무 딱딱하다. 이가 아플 정도로 오돌오돌하다.

값도 싸다. 한 접시에 만 원. 환상이다. 주저앉고 싶다. 살고 싶다. 이태백을 부르고 싶다.
모든 사람이 한 식구이다.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고 싶다. 받아도 거리낌이 없다.
비양도는 이런 섬이다. 자연과 사람이 동화될 수 있다. 부담이 없다. 가기에도 편하다. 한림항에서 15분 안에 도착한다. 비양도에는 자동차가 없다. 경운기도 없다. 손수레가 유일한 운송수단이다. 정말 자연 친화적이다. 해수욕장도 없다. 처음부터 사람의 발길을 거부했다. 이런 환경이 비양도의 특성을 키워냈다.

비양도에는 특이한 식물이 있다. 바로 비양나무이다. 오직 비양도에서만 볼 수 있다. 비양도 자생식물이다. 기념물 제48호로 지정돼 보호 중이다. 풍부한 어족 자원도 비양도의 매력이다. 마을주민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해녀들이 전복, 소라, 해삼 등을 채취한다. 싱싱한 해산물은 먹거리 제공의 일등공신이다. 여행객들은 싼값에 별미를 즐길 수 있다. 비양도의 절경은 드라마를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2005년 배우 고현정의 복귀작품 배경이다. SBS드라마 “봄날”의 촬영지이다. 드라마는 히트했다. 촬영지는 빛을 못 봤다. 오히려 잘됐다는 평가이다. 조금이라도 늦게 알려져서.

이제 가을이 간다. 아쉬운가. 쓸쓸한가. 미련이 남는가. 모두 부질없는 생각이다. 가면 가는 대로. 오면 오는 대로 맞으면 된다. 가는 게 아쉬우면 떠나라. 비양도로. 아직 가을의 정취가 남아 있다. 늦으면 어떨까. 그래도 좋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 새는 아닐 게다. 마지막 가을의 잔상은 있으리라. 겨울이 올 것이다. 스산한가. 썰렁한가. 마음먹기 나름이다. 겨울을 녹이러 떠나라. 비양도 바닷바람을 벗 삼아.

 

KPI뉴스 / 김병윤 기자 bykim7161@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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