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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아서 높아 보이는 섬 '가파도'

김병윤
기사승인 : 2018-11-20 13:55:24
제주도 자리돔 산지로 어족 풍부해 낚시꾼에게는 최고
▲ 가파도에 해무가 낀 가운데 황금빛으로 물든 보리밭과 해무 너머 보이는 산방산과 송악산 [뉴시스]

 

키 작은 섬. 섬이 키가 작단다. 웬 생뚱맞은 소리인가. 나도 모르겠다. 안내판에 그렇게 적혀있다. 그런 섬이 있을까. 있다. 정말로 있다. 어디에. 제주도에. 왜 키가 작다 할까. 알아보면 이해가 된다. 섬의 최고 높이가 20.5m 밖에 안 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작은 산일게다. 차마 산이라 부를 수도 없다. 평지라 부르고 싶다. 섬사람들은 그곳에서 소망을 빈다.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기도한다. 전망대도 만들어 놨다. 이름도 붙여 놨다. ‘소망전망대’라고.

소망전망대는 왜 세웠을까. 한라산을 마주 보기 위해 세웠단다. 주민들의 꿈이 소박하다. 아니다. 정말 꿈이 크다. 속내를 들여다보자. 한라산이 어떤 산인가. 해발 1947m. 남한에서 제일 높은 산이다. 섬사람들은 한라산을 보며 꿈을 키웠다. 마을 산보다 100배 높은 한라산이 친구이다. 눈을 뜨면 한라산이 보인다. 한라산이 동경의 대상만은 아니다. 인생길을 같이 가야 할 동지이다. 그 섬의 사람들은 꿈이 크다. 그렇다고 거만하지 않다. 오히려 소박하다. 

 

▲ 가파도 표지석 [김병윤 기자]


그 섬이 궁금하다. 섬의 이름은 무얼까. 가파도다.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맞다. SBS ‘불타는 청춘’ 촬영지다. 하지만 속내는 보여주지 못했다.

가파도에는 여유가 있다. 숨이 가쁠 이유가 없다. 가쁠 수가 없다. 일부러 뛰어가기 전에는. 섬 전체가 집 앞마당 같다. 어디를 봐도 막힌 데가 없다. 코스모스가 반긴다. 해바라기도 반긴다. 반갑다. 반가워서 웃음이 난다. 모두가 애기 같다. 꽃은 피었는데. 부끄러워 그랬을까. 다 자라지 못했다. 정말 작다. 바람이 강해 자랄 수가 없단다. 섬도 작은데 너희들마저, 측은한 마음이 든다. 아니다. 배워야 한다. 연약한 꽃들의 생명력을. 마음을 바꾸니 경외감이 든다.  


야생화 옆 황량한 밭이 을씨년스럽다. 불모지인가. 아니란다. 봄날의 초록빛을 준비한단다. 정성스럽게 밭을 갈아 놨다. 청보리 밭이다. 곧 씨를 뿌린다. 가파도의 겨울바람은 살을 엔다. 얼마나 추울까. 씨가 얼지나 않을까. 걱정하지 말란다. 당신들 삶이나 걱정하란다. 청보리는 어김없이 얼굴을 내민다고. 그 아름다움에 빠지지나 말라고. 정말 그렇다. 가파도의 청보리는 환상이다. 가파도의 청보리는 키도 크다. 1m에 이른다. 다른 지역 보리와 비교가 안 된다. 4월이면 가파도가 시끄럽다. 청보리 때문이다. 섬에는 초록빛 청보리가 물결을 놓는다. 청보리 축제로 명성을 얻었다. 전국에서 모여든다. 4월에는 호젓한 섬이 아니다. 여인네들 웃음소리가 섬을 덮는다. 시끄러워 싫은가. 한번쯤은 웃고 넘기자. 새색시가 봄맞이 나왔다 생각하자.  

 

▲ 낮은 담장 너머 주황색 지붕이 수채화 같다. [김병윤 기자]

 

가파도는 편하다. 옛 추억을 살릴 수 있어서. 발 닿는 곳마다 엄마의 품 같다. 포근하다. 엄마 손을 잡고 걷던 시골길이 생각난다. 가파도의 동네 길은 너무 호젓하다. 아무리 둘러봐도 사람이 없다. 산들바람 소리마저 크게 들린다. 주황색 지붕 집들이 수채화 같다. 구멍 뚫린 돌담은 동화 속 그림 같다. 조용히 눈을 감았다. 세월이 멈췄으면 좋겠다.  

 

▲ 가파초등학교 [김병윤 기자]


상념에 빠졌을 때 종소리가 들린다. 아이들이 재잘거린다. 아주 작은 시골학교다. 가파초등학교이다. 너무도 정겹다. 잘 가꾸어진 정원수 몇 그루. 융단 같은 잔디. 자그마한 학교 건물. 순박한 아이들 얼굴. 최상의 조화이다. 선생님이 친구인가 보다. 스스럼없이 장난친다. 과외는 없다. 참교육의 현장이다. 보여주고 싶다. 도시 학부모들에게. 꼬맹이 둘이 손을 잡고 걷는다. 친구들이 놀려댄다. 얼~래리 꼴~래리. 얼~래리 꼴~래리. 오랜만에 듣는 소리이다. 피식 웃음이 난다. 어린 시절 짝궁 생각에.


추억을 뒤로 하고 또 걷는다. 삶의 현장이 나타난다. 해물짬뽕 파는 식당. 조그만 카페. 천연염색 기념품 가게. 모두가 자그마하다. 손님을 부르지도 않는다. 주인의 여유가 넘친다. 


몇 걸음 옮기니 파도가 밀려온다. 해안가에 돌로 쌓은 담장이 보인다. 불덕이란다. 불덕이 무얼까. 해녀들의 탈의실이었다. 불을 쬐며 쉬는 곳이었다. 해녀들의 공동안식처였다. 한겨울 물질에 얼마나 추웠을까. 생각만 해도 몸이 떨린다. 돈물깍도 있다. 돈물은 담수를 일컫는 제주방언이다. 바닷물과 대비되는 말이다. 소금기가 없는 물이다. 섬에는 돈물이 귀했다. 다행히 바닷가에 샘이 몇 개 있다. 샘은 생명수였다. 보물이었다. 섬사람들은 지켜냈다. 돈물깍으로. 자신들의 삶과 함께.  

 

▲ 상동우물 [김병윤 기자]


가파도는 모슬포 항에서 15분 쯤 걸린다. 동네는 상동과 하동으로 나뉜다. 예전에는 하동이 중심지였다. 현재는 상동이 중심지이다. 그래봐야 한 동네이다. 선사시대 유적이 많다. 135기의 고인돌이 있다. 신석기시대에도 사람이 살았다는 뜻이다. 하동마을 빨래터. 상동우물. 선조의 삶이 그대로 남아있다. 126가구 227명이 오순도순 살아간다. 가파도는 탄소 없는 섬이다. 어족이 풍부하다. 자리돔 산지이다. 낚시꾼에게는 최고의 섬이다. 연인이 가기 좋은 섬이다. 다정히 손잡고 걷기에 으뜸이다. 술래잡기하기 좋은 섬이다.

지나간 청춘을 찾기 위해. 첫사랑의 추억을 되새기기 위해. 가파도는 그런 섬이다.

KPI뉴스 / 김병윤 기자 bykim7161@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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