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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 문학공간] "우리는 반드시 누군가와 헤어지고, 뭔가를 잃어버린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Google구글에서 선호하는 출처로 추가
기사승인 : 2026-10-16 17:51:12
7번째 소설집 '눈 내리는 삼일포' 펴낸 김연수
인생의 기본 전제는 상실이라는 시간의 산물
어디서 어떤 각도로 보느냐에 따라 삶은 달라져
"문학이야말로 삶을 바꾸는 가장 강력한 도구"

어떤 시간여행자가 과거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면, 거기에 자신이 놓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물이 날 정도로 인생이 뻔하고 지긋지긋하다면, 같은 하루를 몇 번이고 다시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우리는 뭘 해야만 할까요? ...어쩌면 우리 모두는 시간여행자일지도 모르죠. _ '수면 위로' 

 

▲ 4년 만에 새 소설집을 펴낸 김연수. 그는 "살아 있는 한, 나는 시간의 여행자"라고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야 만다. 김연수는 인생에도 중력이 작용한다고 했다. 인생에서 바닥으로 떨어질 때, 그 상태를 받아들이기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이 자연 상태에서는 아무도 거스를 수 없는 중력 때문이라면 수용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김연수는 젊은 시절에는 경전이나 철학에서 위안을 구했지만, 상실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시간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이제 받아들인다고 했다. 그가 4년 만에 펴낸 소설집 '눈 내리는 삼일포'(문학동네)에 수록된 단편 9편에는 시간에 대한 숙고와, 삶을 대하는 시선의 방향과 각도에 대한 통찰이 고르게 스며 있다.

앞에 배치한 세 편은 상실 이후의 시간을 '다시 쓰는' 이야기다. '우리 인생의 목격자'의 이선희는 사는 게 힘들어 그만하고 싶다는 후배의 전화를 받고, 열두 살 때 쓴 '운행 일지'를 꺼내 투수의 꿈을 접은 자신과 판소리를 그만둔 어머니의 1982년을 다시 쓴다. '수면 위로'의 화자는 연인 기진을 잃은 뒤 유튜브 영상 속에서 같은 하루를 반복해 산다는 '시간여행자' 기진을 다시 만나고, 소설은 같은 질곡을 매일 반복한다는 건 갇혀 있는 시간여행자와 다를 바 없다는 깨달음을 준다. '조금 뒤의 세계'에서는 십 년 넘게 소설을 쓰지 못한 소설가가 KTX에서 첫 소설 속 인물의 어머니를 만나 "꿈의 내용을 바꿀 수 있는 건 꿈속의 등장인물이 아니라 그 꿈을 보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다.

- 4년 동안 쓴 작품을 묶고 나니 어떤 변화가 느껴지나.
"시간 감각이 달라진 게 지난 4년 동안 가장 큰 변화였다. 대학생 때는 30년도 안 되는 시간으로 세상을 보면서 이해하지 못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 화도 많았는데, 60년 가까이 늘려서 보니 뭔가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시간을 늘려서 보니까 우리가 상실로 가득 찬 세상을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어나서 뭔가를 얻으려고 계속 노력해 왔는데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 보니 그렇게 얻었던 것들을 잃기도 하고, 부모 같은 분들은 돌아가시기도 한다. 시간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는 것이고, 이 세상은 결국은 상실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저와 똑같이 시간을 여행하는 사람들이고, 먼저 갔던 사람들이 다 경험한 것들이 바로 상실이다. 우리는 모두 상실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

- 특별히 '상실'을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는가.
"죽음 같은 상실을 처음 경험했을 때, 삶이라는 게 무의미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경전이나 영원의 세계에 대한 관심으로 위로를 구하면서 40대를 보낸 것 같다. 그러다가 '원래 이 세계는 그런 곳'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세상에 대한 염증이 오히려 없어졌다. 제가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때는 여기가 되게 싫었는데, 그걸 받아들이고 나니까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것은 아주 쉽다, 그것이 사라졌을 때를 생각하면'이라는 추리소설가 G. K. 체스터턴의 말을 예전에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좌우명처럼 좋아했다. 이제 이 상실을 받아들이고 나니까, 지금 우리가 위안을 얻을 데는 과거에도 미래에도 없지만 지금 살아 있는 이 순간은 어쨌든 '있다'는 사실이 선명해졌다. 나이 든 부작용일까."

- 우리는 모두 '시간여행자'라는 시각이 흥미롭다.
"우리는 자신이 볼 수 있는 것만 본다. 현재 시점에서는 아무리 곱씹어도 답이 안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 답은 몇십 년 지나면 너무나 명백하게 보인다. 보이지 않는 걸 보아야 하는데, 그건 너무 어렵다. 귀인이 나타나서 그걸 보여주면 좋겠지만, 문학이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해 왔다. 인생은 이야기로 구성돼 있고, 이 이야기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어떤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해결책을 줄 수는 없지만, 지금 당신이 설명하는 그 이야기 말고 다른 이야기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문학이 전달할 수 있다. 어쨌든 지금 당신이 생각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 '싸구려 위로'라는 노래에서 생겨난 어떤 마음이 '우리 인생의 목격자'에 담겼다고 썼는데, 위로가 싸구려가 되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이렇게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해결책을 줄 수 없어야 될 것 같다. 해결책은 본인도, 위로해주는 사람도 가질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래에서도 그렇지만 소설에서도 일단은 '그냥 밖으로 나와라, 거기 있지 말고'라는 식으로밖에는 이야기할 수 없다. 강하게 한마디 한다면 '죽지는 말라'는 것인데, 사람들은 '이제 끝'이라는 이야기 때문에 죽는다고 생각한다. 그 이야기는 그가 만든 것일 뿐, 옆에 있는 사람은 다르게 쓸 수 있지 않나. '너는 소중한 사람'이라고. 해결책은 줄 수 없지만 그 이야기를 바꿀 수 있는 사람들이 주는 위로는 싸구려가 아닐 것이다." 

-인생에도 중력이 존재하는가.
"어느 시점에 이르면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본인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어떤 일들이 반드시 벌어진다. 가장 대표적인 건 병에 걸리는 것인데, 이는 아무런 의도 없이 주어진다. 이후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진다. 중력이라는 그 보편적인 힘이 작용해서 이렇게 두 번째 삶이 시작되는 것인데, 이는 모든 사람에게 다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 삶이 시작되고 나면 이전에 본인이 썼을 회고록과는 다른 관점이 시작된다. 억울하든 이해하든, 대부분 고통으로 경험되는 어떤 일은 예외 없이 다 일어난다. 고통이 모든 사람에게 인생의 중력으로 작용하게 된다는 걸 이해하게 됐다."

-소설이란, '깨어 있는 채 꿈을 꾸는 것처럼' 쓰는 '꿈 일기' 같은 것인가.
"세상을 바꾸는 제일 강한 도구가 문학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없던 말을 만드는 일이다. 이를테면 '여성참정권' 같은 말, 이걸 일단 만들어야 외칠 수가 있고, 일반인에게 스며들어서 입법부에서 법으로 제정하고 현실로 만들어지지 않나.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평소에 생각하지 못했던 어떤 표현을 찾아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상상하지 못했던 어떤 이야기를 쓰는 순간, 이것이 힘을 가지고 현실화될 수 있다. 한 번도 말해보지 않은 것들을 계속 써 보는 일은 글쓰기를 잘 이용하는 방법이다. 그렇게 쓰는 글들은 대부분 꿈과 같은 이야기들이다."

가운데 세 편은 역사를 다시 쓴다. 표제작 '눈 내리는 삼일포'는 이수지의 동명 그림책을 보면서 시간이 관통하는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고 즉석에서 소설로 쓰겠다고 제안한 작품이다. 소설은 조선 후기, 학질에 걸린 딸을 살리려는 서얼 선비 덕암이 좀이 쏠아 구멍투성이가 된 현재(玄齋) 심사정의 그림을 약값으로 내놓으며 시작된다. 그는 현재가 그림을 완성한 뒤 빛이 스며들라고 직접 구멍을 뚫었고, 그러고 보니 눈 내리는 삼일포 같더라고 했다는 것이다. '용인에서 보낸 편지'는 병인박해 때 붙잡힌 프랑스 신부의 편지로 이뤄져 있다. '신들은 토끼산을 떠났다'의 노작가는 제주의 택시 기사에게 1987년 4·3 유족들의 당굿을 증언하면서 학살과 개발로 이어진 상실을 드러낸다. 김연수는 "역사는 언제든지 다시 쓰기를 할 수가 있다"면서 "소설가라면 어떤 이야기든 사람들이 상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다시 쓸 수 있어야 된다"고 강조했다.


▲ 김연수는 "내게서 뭔가를 뺏어가고 또 뭔가를 주는 시간에 대해 생각했다"고 말한다. [문학동네]

 

SF 두 편은 몸이 없는 마음을 상상한다. '동풍이 어디로 흩어지는지'에서 아들과 아내를 잃은 노인 규철은 죽은 가족이 사는 시뮬레이션 세계로 '디지털 이주'한 손녀를 데려오려 '고독 택시'에 오르지만, 망명자 운전사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신의 마음 아래에서'는 급우들을 죽이고 자살한 소년의 데이터를 수정해 재탄생시킨 안드로이드 아들과 같이 사는 어머니 이야기다. 오류가 생긴 '인공 아들'을 제거해야만 할까.

김연수는 "몸이 없이 의식만 존재한다면 세상은 어떨까 싶은 질문을 하다 보니 그렇게 써나간 것 같다"면서 "SF라기보다 일종의 사고 실험에 가깝다"고 말했다. 그는 "몸 때문에 많은 전쟁을 비롯해 남을 짓밟는 다양한 문제가 일어나는데, 그렇다고 의식만 있는 AI라도 현명한 존재는 못 될 것 같다"고 이었다. AI는 다 알고 있는 것만 얘기를 할 뿐,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얘기를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마지막 '그리고 밤과 가을이'는 앞의 모티프들이 모이는 자리다. 눈이 침침해진 부고 담당 기자 정기는 딸의 SF 수상작을 발견하고, 소설가란 "이야기를 짓고 부수는 사람"이라던 자신의 옛말을 떠올리는 딸의 글을 접한다. 김연수는 "침침해진 눈의 물리적 컨디션에 대해 생각하면서 정작 다른 사람들과도 다르지 않았던 정신적인 눈의 한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면서 "여기가 현재 도달한 어떤 지점인데, 아직 끝난 것 같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시간의 여행자 김연수의 말.

'우리가 사는 세상은 상실의 세상이다. 한때의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진다. 시간을 여행한다는 건 그런 의미다. 시간의 여행자는 반드시 누군가와 헤어지고, 뭔가를 잃어버린다. 그리고 여행은 계속된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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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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