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AOA 찬미 어머니 인터뷰, 희생과 봉사로 극복한 인생 굴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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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OA 찬미 어머니 인터뷰, 희생과 봉사로 극복한 인생 굴곡

김현민 Google구글에서 선호하는 출처로 추가
기사승인 : 2019-12-27 13:44:15
어려웠던 성장기부터 이혼하고 전 남편 사채 빚 갚은 사연까지
미용실 운영하며 세 딸 키우면서 갈 곳 없는 청소년들 보살피기도
그룹 AOA 찬미의 어머니가 굴곡 많았던 인생사를 밝혔다.

▲ AOA 찬미의 어머니가 27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삶을 얘기했다. 찬미가 지난 3월 20일 오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2019 F/W 서울패션위크' SWBD(소윙바운더리스) 패션쇼에 참석해 포토타임을 가지고 있다. [정병혁 기자]

27일 한국일보는 찬미 모친 임천숙 씨와의 인터뷰를 공개했다. 어린 시절의 그는 술과 노름에 빠진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거리에서 소매치기를 하는 등 어려운 성장기를 보냈다.

이른 나이에 결혼한 그는 둘째 찬미를 포함한 세 딸을 낳았고 남편과는 이혼했다. 술과 노름을 했던 남편은 사채를 끌어다쓰면서 빚이 1억2000만 원이 됐고 그 중 7000만 원을 떠안는 조건으로 이혼한 뒤 10년 동안 갚아야 했다.

17세에 미용을 시작한 임 씨는 1999년부터 경북 구미 황상동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20여년간 갈 곳 없는 청소년들을 돌봐왔다.

임 씨는 이곳을 거쳐간 아이가 300명은 되지 않겠냐고 추산했고 그 중 아직까지 연락을 하고 지내는 이들이 100명 정도 된다고 밝혔다.

그는 자녀들이 어떻게 살았으면 하냐는 질문에 자신이 좋아서 뭔가를 할 때 따라오는 돈이 자신의 돈이 된다면서 즐겁게 일하고 몸과 마음이 건강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오랜 기간 교도소 봉사를 해오기도 했다는 임 씨는 재소자들이 출소해서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미용 기술을 가르치고 싶다고 전했다.

그는 자신이 롤모델로 삼은 삶의 태도를 말하며 유안진 시인의 '지란지교를 꿈꾸며'를 언급했다. 해당 시처럼 사람을 대할 때 성별, 나이, 직업이 뭐든 사람 대 사람으로 대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KPI뉴스 / 김현민 기자 khm@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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