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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직설] 왜 언론개혁마저 정파적으로 소비하나

UPI뉴스
기사승인 : 2021-08-11 16:02:32
"이명박 정권도 MBC PD수첩 PD들을 잡아가두고 종합편성채널 만들 때 '언론개혁'이라고 했다. 언론개혁이라는 말이 정파적으로 소비돼선 안 된다. 우리가 지켜온 언론개혁 운동은 권력에 의해 뺏긴 말과 글을 되찾는 과정이었다. 1970년대 동아·조선투위, 1980년대 80해직자 선배들, 1987년 엄혹했던 시기 박종철 죽음을 알렸던 선배 기자들…. 권력 압제에 맞서 언론을 되찾아오는 게 개혁 본질이었다. 촛불정부를 자임하는 정권이 언론에 위험을 가져다줄 수 있는 법안을 이렇게 가볍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

지난 7월 윤창현 언론노조위원장이 한 말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을 꿰뚫는 명언이다.

이른바 '언론징벌법'으로 불리는 이 개정안은 '고의나 중과실에 의한 허위보도'로 인한 피해액의 최대 5배까지 언론사에 징벌적 손해 배상을 물릴 수 있고, 소송에서 피해 입증을 피해자가 아닌 언론사가 부담하도록 하면서, 해당 언론사 매출의 1만분의 1 수준으로 배상 기준 금액의 하한을 설정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언론은 물론 언론자유와 헌법을 중히 여기는 각계 단체와 인사들은 단호히 반대하고 나섰다.

"5공 때의 '정의사회 구현'과 무엇이 다른가"(박경신 고려대 교수) "처음부터 끝까지 총체적으로 잘못된 명백한 위헌 법률"(윤석민 서울대 교수) "문재인 정권이 파시스트의 길을 가고 있다"(윤평중 한신대 교수) "이 법 통과되면 '최순실 보도' 못나온다"(황용석 건국대 교수) "박정희도 하고 싶었지만 못했다"(이준웅 서울대 교수)

그럼에도 민주당은 왜 이 법을 힘으로 밀어붙이려고 하는 걸까? 이승선 충남대 교수가 지적한 '이 논의를 둘러싼 세 가지 현실 인식'은 민주당의 '세가지 믿는 구석'으로 해석해도 무방할 것 같다. 첫째,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 구제를 위한 손해배상액이 낮다. 둘째, 한국 언론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 수준이 낮다. 셋째, 각종 여론조사 결과 잘못된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에 대해 찬성 의견이 높다.

이 정도면 밀어붙여 볼 만하지 않느냐는 생각을 했음직하다. 나 역시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 구제를 위한 손해배상액을 더 올려야 한다고 생각하며, 낮은 언론 신뢰도에 대해선 "스스로 죽으려고 그러느냐"며 언론을 강하게 비판해 왔다. 그러나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징벌적 손해배상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대한 찬성 의견이 높은 것은 언론에 대한 불신을 넘어선 혐오의 산물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언론만의 책임은 아니다. 문재인 정권도 공동 책임을 져야 한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는 대통령 재임 시절 자신에게 비판적인 언론을 '쓰레기'로 매도해 지지자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누렸지만, 한국에선 일부 여권 정치인들이 그런 트럼프 역할을 함으로써 언론을 '기레기'로 각인시키는 데에 큰 기여를 했다.

그로 인해 보수 언론만 기레기가 된 게 아니다. 진보 언론 사이트엔 문 정권에 조금만 비판적인 기사가 실리면 친문 지지자들이 '기레기'라고 욕하는 댓글 공세가 퍼부어진다. '정치적 양극화'를 극단으로 밀고 간 문 정권 하에서 언론은 아무리 잘 해도 '기레기'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운명에 처해진 것이다.

가짜뉴스? 그건 유튜브나 1인 미디어에 흘러 넘치는데, 이들은 규제 대상이 아니다. 정치인들도 가짜뉴스를 양산해내고 있는데, 이들 역시 규제 대상이 아니다. 언론계 일각에선 "권력의 거짓말도 손해액의 5배까지 배상하도록 법 대상을 확대하자"는 말까지 나왔는데, 그렇게 할 각오가 있는가?

이 법의 문제는 지난 8월 4일 CBS 라디오 '한판승부'에서 법안 처리를 주도한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와의 논쟁에서도 잘 드러났다. 진 전 교수는 "MBC에서 '채널A 기자와 한동훈 검사장이 짜고 (벌인) 검언유착 사건이었다'라고 허위보도를 했다"며 "(이건) 징벌적 손해배상 대상이 되나 안 되나"라고 물었다.

또 그는 "한겨레신문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음해하기 위해 별장 성접대를 받았다고 얘기를 했다. 그건 징벌적 손해배상의 대상이 되나, 안 되나"라고 물었다. 이 두 질문에 김 의원은 곤혹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다.

민주당에게 필요한 건 역지사지(易地思之)다. 정치는 언론 이상으로 국민적 불신과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정치징벌법'을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단지 입법권을 가졌다는 이유로 정치에 대한 정파적 분노를 언론에 떠넘기려는 건 옳지 않다. 윤 언론노조위원장은 "이명박 정권이나 박근혜 정권이 이런 법률을 만들었다면 민주당이 찬성했겠느냐"고 물었다. 당장 거리로 뛰쳐나가 대대적인 반대 시위를 벌였을 게다.

문 대통령은 야당 시절인 2014년 "우리 당이 집권하면 (언론의) 비판·감시를 확실히 보장할 것이다. 언론의 잘못된 보도나 마음에 들지 않는 논조에 정치 권력이 직접 개입해 좌지우지하려는 시도는 옳지 않다"고 했다.

그때의 마음 그대로라면 문 대통령은 지금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해야 옳다. 언론개혁을 정파적으로 소비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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