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강준만의 직설] 왜 진보신문을 보는 게 고통스러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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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직설] 왜 진보신문을 보는 게 고통스러운가

UPI뉴스
기사승인 : 2022-01-24 16:07:12
가치 지향성 강한 진보 독자들, '집단 사고'로 신문 숨통 조여
'다름'을 '틀림'으로 여기지 않고 너그럽게 대할 수 있어야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나를 대변해 주는 신문이라 느끼고 20년 넘게 봤는데 2년 전부터 그 두 신문을 보는 게 고통스러운 시간이 됐다. 미워서가 아니라 힘들어서 끊었다."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 유시민의 최근 발언이다. 그의 생각을 존중하지만 좀 다른 의견을 말씀드리고 싶다.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열에 여덟이 같으면 여덟에 주목하는 사람과 같지 않은 둘에 주목하는 사람이다. 한겨레·경향신문(이하 '진보신문')과 자주 비교되는 조중동의 독자는 대체적으로 여덟에 주목하는 반면, 진보신문 독자들 중엔 둘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많다. 신문의 구독 동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익은 타협이 가능하지만 가치는 타협이 어렵다. 다른 신문 독자들에 비해 가치 지향성이 강한 진보신문 독자들은 다른 둘이 자신의 가치나 신념에 위배된다는 점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진보신문의 입장에선 독자들의 정치적 동질성이 강할 때엔 일부 독자들의 불만은 그럭저럭 견딜 만 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진보 진영 내부의 분화가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불만은 거세졌다. 게다가 디지털혁명과 함께 '팬덤 정치'가 심화하면서 불만의 표현이 강해지는 동시에 집단적으로 이루어지는 양상을 보였다. 급기야 등장한 말이 '절독'이었고, 걸핏하면 댓글 등을 통해 절독 위협을 가하는 독자들이 크게 늘어났다.

디지털혁명이 몰고온 '미디어 시장 세분화'는 공론장을 같은 편끼리만 모이는 곳으로 재편성했고, 이에 따라 이른바 '집단사고', '필터 버블', '반향실 효과' 등과 같은 현상이 대중의 일상적 삶을 지배하게 되었다. 소셜미디어건 유튜브건 나를 대변해주는 미디어가 날이 갈수록 늘면서 그런 세분화를 하기 어려운 신문의 숨통을 조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신문의 죽음인가? 죽을 때 죽더라도 우리 모두 진실은 외면하지 말자.

진보신문 독자들의 생각이 모두 같아야 하는가? 그게 가능한가? 바람직한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피해야 하는가? 소통은 정치적 생각이 같은 사람들끼리 만든 부족 내부에서만 가능한가? 당신이 소속된 부족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규모가 커지면 분명히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생겨날텐데, 그땐 또 갈라서고 서로 벽을 쌓으면 되는가? 사회는 무엇인가?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공간이 아닌가?

사실 나는 주변에서 유시민의 발언과 비슷한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묻곤 했다. "무엇과 비교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나요?" 답은 늘 디지털혁명이 제공한 대체 미디어였다. "그렇다면 진보신문이 문제라고 할 게 아니라 신문이라는 미디어가 문제라고 말하는 게 옳지 않나요?" 나는 이런 말을 주고받다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시나요?"라는 질문에까지 들어간다.

나도 진보신문을 읽을 때마다 칼럼 내용에 동의하지 않을 때가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내용을 존중할 뿐만 아니라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나 나의 편향성을 점검해보는 기회로 활용한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늘 내 칼럼 내용에 동의하지 않을 독자들을 머릿속에 떠올리기 때문이다. 그런 역지사지가 공정하지 않은가?

유시민을 고통스럽게 만들지 않을 진보신문을 만드는 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겠지만, 감히 장담하건대 그렇게 하기 위해선 진보신문은 수십개로 쪼개져야 할 것이다. 유시민과는 정반대의 이유로, 즉 진보신문이 지나치게 친여적이라는 이유로, 진보신문에 등을 돌린 진보독자들도 있다. 유시민은 이재명을 지지하고 높게 평가하지만, 유시민의 다른 모든 정치적 견해에 동의하더라도 이재명만큼은 거부하는 독자들도 있다.

어디 그뿐인가. 노무현과 문재인의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독자들도 있지만, 그 차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독자들도 있다. 민주당 대표 송영길을 비롯해 여권의 주요 인사들에 대한 생각도 다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입맛을 모두 만족시키자면 얼마나 많은 신문이 필요하겠는가. 소셜미디어와 유튜브는 그런 세분화가 얼마든지 가능할 게다. 그렇다면 신문 탓 하지 말고 차라리 '신문의 죽음'을 말하는 게 정직한 태도가 아닐까?

나는 여전히 종이신문을 사랑한다. 내가 아날로그형 꼰대라서 그런 점도 있겠지만, '다름'을 혐오한 나머지 각자의 성향과 취향에 따라 갈갈이 찢겨져 나가는 '사이버발칸화(cyber-balkanization)'가 우리의 미래여서는 안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미 20년 전 미국 법학자 캐스 선스타인은 사이버발칸화가 상호 소통을 어렵게 만들어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 실제로 우리는 지금 큰 공통점보다는 작은 차이점에만 주목해 분열을 거듭하면서 살벌한 싸움을 벌이는 이전투구를 원없이 보고 있지 않은가.

나는 '다름'을 '틀림'으로 여기지 않으면서 '다름'을 좀더 너그럽게 대하는 세상을 꿈꾼다. 그런 너그러움이 없을 때 '다름'은 고통으로 다가온다. 나는 다른 생각과 주장에 접하면서 고통을 느끼기보다는 "왜 그럴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지적 호기심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물론 내가 아직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기에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되뇌는 말이기도 하다.

▲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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