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오적'·'타는 목마름으로' 시대와 맞선 김지하 시인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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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적'·'타는 목마름으로' 시대와 맞선 김지하 시인 별세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기사승인 : 2022-05-08 19:45:43
저항시에서 출발, 생명운동으로 나아간 인생 여정
1970년대 유신체제에 맞선 필화로 사형 선고까지
박근혜 후보 지지 등 '변절' 논란속 진보진영과 결별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를 외치고, '오적(五賊)'으로 부패세력을 신랄하게 풍자했던 김지하 시인이 8일 별세했다. 향년 81세. 유족에 따르면 고인은 최근 1년여 투병생활을 해오다 이날 강원도 원주 자택에서 타계했다. 

▲8일 타계한 김지하 시인. '김지하'는 한국 현대사에서 한 시대를 압축하는 상징적인 이름이었다. [뉴시스]

'김지하'는 한국 현대사에서 한 개인을 지칭하기 이전에 한 시대를 압축하는 상징으로 굳어진 이름이다. 그가 한때 어두운 뉘앙스를 풍기는 '지하'라는 이름을 버리고 자신의 옛 이름 '영일'을 되찾겠다고 선언했지만, 세상은 여전히 그를 그냥 김지하로 불렀다. 사형선고까지 받았고, 1970년대 중후반을 독방에서 보냈던 그는 1980년대 내내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980년 감옥에서 나온 이후 그의 생각은 투쟁보다는 생명으로, 좌익이니 우익보다는 우주의 철리를 담은 중도의 세상으로 넘어갔지만 그는 '변절' 논란에 휩싸였고, 고독했다.

 "외롭다/ 이 말 한 마디/ 하기도 퍽은 어렵더라만/ (…)/ 그리움마저 끊어진 자리/ 밤비는 내리는데// 소경 피리소리 한 자락/ 이리 외롭다"('그 소, 애린 4')

전남 목포 출생으로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한 고인은 1963년 '목포문학'에 '저녁 이야기'를 발표한 후 1969년 '시인'지에 '황톳길', '비' 등을 발표하며 공식 등단했다. 고인이 1970년 '사상계'에 발표한 담시 '오적'은 현대시에 판소리를 접목해 정부 고위층의 스캔들, 고위공직자의 부패 등을 묘사하며 재벌·국회의원·고급공무원·군장성·장차관 등 당시 권력층을 을사오적에 비유, 5·16 이후 한국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로 인해 수사기관에 연행됐다가 이 시가 야당 기관지에 실리면서 필화사건으로 불거져 고인은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오적' 사건과 병합해 사형을 언도받았고 사르트르, 보봐르 등이 참여한 세계적인 구명운동으로 무기로 감형된다. 1980년 형집행정지로 석방된 고인은 시선집 '타는 목마름으로'(1982), 이야기모음집 '밥'(1984), '남녘땅 뱃노래'(1985), 시집 '애린', '검은 산 하얀 방'(1986), '화개'(2002), '비단길' '새벽강'(2006) 등을 펴냈다.

1991년 명지대생 강경대가 전경의 곤봉에 타살된 후 이어진 학생 청년들의 분신과 투신자살 국면에서 고인은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는 칼럼을 게재, 본격적인 변절 논란에 휩싸였다. 이후 2012년 대통령선거 국면에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해 '진보 진영'과 완전히 결별하는 수순을 밟았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싸롱마고'를 열고 문예부흥운동에 나설 때 기자와 만난 고인은 "간첩조차 독방에 가두어도 일정기간 잡범들과 같이 풀어 놓는 게 상례인데 6년여 동안 벽이 밀려들고 마루가 올라오고 천장이 내려오는 듯한 벽면증에 시달리게 독방에 가두어 놓고 조그만 고통의 몸짓이라도 보일라 치면 정보부에서 득달같이 달려와 항복문서를 들이밀곤 했다"며 "그 시절 민들레 씨가 창살 사이로 내려앉는 걸 보고 하루종일 울었다는 말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생명운동의 씨앗이 그 고통으로부터 발아되기 시작한 것이다. 강건해 보이는 그의 어린시절 별명은 하도 잘 울어서 '울냄이'였다. 그는 "우는 버릇은 가난!"이라고 쓴 적이 있는데, 그 '자발적 가난'이란 비우고 받아들여 대극으로 나아가는 내공의 수련 도구였던 셈이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자주 거론되는 케냐의 소설가 응구기 와 시옹오는 "케냐에서 투옥됐던 동안 김지하 선생의 '오적' 번역본을 읽고 깊은 영향을 받았다"면서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정신적으로 김 선생은 저의 친구였다"고 밝히기도 했다. 고인은 로터스 특별상, 세계시인대회 '위대한 시인상', 브르노 크라이스키 인권상, 이산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소설가 박경리의 딸 김영주(2019년 작고)와 결혼(1973)했고, 유족으로 장남 원보(작가)와 차남 세희(토지문화재단 이사장 겸 토지문화관 관장)씨가 있다. 빈소는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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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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