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강준만의 직설] 자기과시를 위한 도덕은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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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직설] 자기과시를 위한 도덕은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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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승인 : 2022-07-25 08:54:43
'도덕적 허세' 부작용 크고 심각…정치적 양극화 심화시켜
상대편 '악마' 규정…이길 수만 있다면 수단 가리지 않아
정치 쟁점이 도덕·정의의 문제 될수록 타협 가능성 줄어
야구 용어 중에 '스탠드 플레이(stand play)'란 게 있다. 관중을 의식한 플레이 또는 관중에게 멋지게 보이려고 하는 과장된 플레이를 말한다. 쉽게 잡을 수 있는 공임에도 일부러 다이빙을 해서 잡음으로써 관중의 박수를 끌어낸다면, 그게 바로 스탠드 플레이다.

stand는 grandstand를 줄여서 쓴 말이다. grandstand는 야구장 등의 지붕이 있는 정면 관람석을 말한다. 그 관람석의 관중을 염두에 둔 플레이라고 해서 생겨난 말인데, 영어에서 grandstand는 동사로도 쓰여 "관중을 의식한 플레이를 하다"는 뜻이다. 정치인이 인기영합적인 언행을 하는 걸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웬 야구용어 해설이냐고 의아해 할 독자들이 있겠지만, 최근 번역·출간된 <그랜드스탠딩: 도덕적 허세는 어떻게 올바름을 오용하는가>라는 책을 소개하기 위해 불가피했음을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야구선수의 스탠드 플레이에서 연상되는 것처럼, 그랜드스탠딩은 자기과시를 위해 도덕적 이야기를 하는 것을 말한다. 야구선수의 스탠드 플레이는 관중을 즐겁게 만들어주지만, 그랜드스탠딩은 그렇지 않다. 그 부작용이 크고 심각하다.

이 책의 저자인 미국 철학 교수 저스틴 토시와 브랜던 웜키는 "그랜드스탠딩은 민주주의 정치에 막대한 해를 끼친다"며 "사람들이 정치 담론을 자신을 과대포장하는 장(場)으로 여기면, 그들의 이해관계는 사회문제의 해결이라는 목적과 자주 상충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디지털 혁명은 그랜드스탠딩의 폭발을 몰고 왔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는 자신이 도덕적이고 정의로운 사람이라는 걸 세상에 알리는 무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색깔이 비슷한 사람들 위주로 끼리끼리 모이다보니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는 "누가 더 도덕과 정의에 충실한 사람인가"를 겨루는 전쟁터가 되고 만다. 이는 '정치적 양극화'의 동력이 된다.

예컨대, 마음이 잘 맞는 진보주의자들과 수다를 떠는 경우를 가정해보자. 수다를 떨고 있는 사람 모두가 자신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애정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누군가 도덕적으로 시간당 최저임금이 15달러여야 한다고 주장하면, 다른 누군가가 그것을 20달러로 제도화하는 것이 가난한 사람들을 더 신경쓰는 것 아니냐고 할 것이고, 이런 식의 논의가 진행되다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 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게다.

어디 그뿐인가. 이런 유형의 토론에선 "누가 더 경쟁 집단의 견해를 공격하고 경멸하는 데에 유능한가"를 겨루는 경쟁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이런 경쟁에선 상대편에 대한 반감을 강하게 잘 표현하는 강경파일수록 이길 가능성이 높아진다. 물론 경쟁 집단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이 일어나기 때문에, 두 집단 간의 거리는 더 멀어지고 타협 가능성은 더 약해질 가능성이 높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이념적 순수성을 과시하기 위해 타협을 거부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드러내기도 한다. 예컨대, 공화당 정치인 테드 크루즈는 상원의원에 처음 출마했을 때,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텍사스 군중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여러분이 워싱턴에 가서 합심해 일하면서 타협을 하는 저명한 중도파를 찾는 것이라면 나는 분명 아니올시다....나는 워싱턴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타협이 아니라 더 많은 상식과 원칙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그랜드스탠딩이 광범위하게 일어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책에 소개된, 미국에서 2019년에 나온 한 연구 결과를 보자. 이 연구에 따르면 거대 양당 지지자의 40% 이상이 상대편을 "노골적인 악마"로 규정했다.
 
민주당 지지자의 20%, 공화당 지지자의 16%가 상대편 구성원들이 "그냥 다 죽어버리면…한 국가로서 더 나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민주당 지지자의 18%와 공화당 지지자의 14%가 2020년 선거에서 이길 수만 있다면 폭력도 괜찮다고 답했다.

어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런 끔찍한 생각을 할 때에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나온 게 바로 그랜드스탠딩이다. 스스로 자신을 도덕과 정의의 화신인 양 여길 수 있게끔 도덕과 정의의 담론을 끊임없이 구사해야 한다. 그래야 마음이 편해진다.

그런데 바로 이게 갈등을 악화시킨다. 정치적 쟁점이 도덕과 정의의 문제가 될수록 사람들이 그 쟁점에서 타협할 가능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도덕과 정의는 얼른 듣기엔 아름답지만, 그게 현실과 동떨어질 정도로 과장되면 끝없는 분란의 씨앗이 되고 만다. 이렇듯 자기과시를 위한 도덕은 위험하다.

서울대 철학과에서 8년간 유학한 일본 철학자 오구라 기조는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2017)라는 책에서 "한국 사회는 사람들이 화려한 도덕 쟁탈전을 벌이는 하나의 거대한 극장이다"고 했다. 한국이 비교적 그랜드스탠딩이 발달한 사회라는 말일텐데, 기분이 썩 좋지는 않을망정 그랜드스탠딩의 폐해에 대해 한번쯤 진지하고 심각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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