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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 문학공간] "가를 두고 그냥 왔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기사승인 : 2026-07-17 17:30:15
죽음 상실 변주하는 '가를 두고' 펴낸 백가흠
결이 달라진, 따스한 희망의 실마리 담아낸 8편
고독을 넘어서는 출구는 일상의 소소한 기쁨
"소설은 남의 일을 내 일처럼 전해주는 이야기"

지난밤에는 밤새 울었습니다. 딱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눈물이 났습니다. 잠에서 깨어 산에서 들려오는 어떤 동물 울음소리를 듣고 있었는데 후드득 눈물이 떨어졌습니다. 나도 내가 왜 우는지 몰랐습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아서 그냥 내버려두었습니다. 처음에는 눈물만 흘렸는데 나중에는 소리 내 울었습니다. _ '가를 두고' 

 

▲ 5년 만에 새 소설집을 펴낸 백가흠. 그는 "문학은 '지금 네 옆에 있는 사람을 네 자신처럼 대하라'는 문장 앞에 복종한다"고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백가흠 여섯 번째 소설집 '가를 두고'(문학과지성사)에 수록된 단편들 속 인물들은 자주 운다. 아버지가 죽었다는 비보를 접하고도 난감했을 뿐인 딸은 조지아의 우다브노에서 아침이 올 때까지 운다. 장마로 인해 둑이 터지고 마당으로 밀려드는 물줄기 속에서 노인은 죽은 이들의 환영을 보며 통곡을 한다. 아들의 죽음을 전해 들은 아버지는 치매에 걸린 아내가 충격받지 않도록 딸의 울음을 단속한다. '작게, 작게…… 울어라.'

제대로 울지 못하는 것도 동맥경화 같은 답답함을 수반한다. 울 수 있다는 것은 그나마 가슴이 따뜻해졌을 때 가능한 일이다. 지난 일, 혹은 사라진 사람에 대한 뒤늦은 회한과 그리움이 현재형 깨달음으로 수용될 때 울음은 터져나올 수 있다. 그동안 백가흠표 소설에는 어둡고 참담하며 그로테스크한 인간들의 양상이 빠지지 않은 편이었다. '가를 두고'에 수록한 8편의 단편들은 이전에 비하면 한결 따스해진 편이다.

-이번 소설집에 부여하는 의미는?
"50대로 넘어가는 기간에 쓴 단편들인데, 이제 제 나이에 걸맞은 옷을 입은 느낌이다. 이전에는 소설이 내 몸에서 좀 떨어져 있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았는데, 이번에는 내 몸에 붙어 있는 것 같다. 소설을 쓸 때 주변 얘기보다는 이상적인 세계나 서사를 구축해야 된다는 강박이 컸던 편이다. 그러다 보니 일상적인 것과는 조금 동떨어져 있는 것들도 많았다. 코로나 기간을 거치면서 혼자 있는 시간도 많아졌고, 그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이나 제 감정에 좀 더 충실해진 느낌이다. 그냥 지나친 의미 있는 사람들을 다시 돌아보게 되는 계기도 있었다."

-이전 소설들과는 결이 다른 희망의 실마리 같은 것들이 보인다.
"친한 친구들이 여럿 죽었다. 사고로 보낸 친구도 있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이도 있다. 그들 이야기를 연작소설로 쓰고 있는 중이다. 사라지고 난 뒤에야 오히려 뭔가 복원되는 느낌이다. 상실에 대한 감정이 옛날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살려낸다. 그렇게 나이를 먹어가는 모양이다."

-우는 캐릭터들이 많다.
"정말 목놓아 울고 싶었던 모양이다. 애도나 아쉬움이나 미처 다하지 못한 감정의 표현에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다른 방법이 없다. 아주 친했던 친구가 죽은 지도 몰랐다. 슬프다는 얘기조차도 너무 뒤늦은 그런 감정들이 밀려오는데, 어느 날 정말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미안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이런 감정 앞에서는 어떤 지적이고 멋있는 혹은 근사한 장면이나 에피소드는 존재하기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다는 것은 뒤늦게 깨닫는 일 같다. 즉흥적이거나 그때그때 느끼는 감정의 표현이라기보다는, 비로소 이해하고 다시 생각하는 행위의 결과일 수 있다. 쓸 때는 몰랐는데, 운다는 것은 사태를 혹은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는 과정처럼 읽힌다."

아버지는 항상 내 근처에 있었으나 나는 알지 못했다. 아버지는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나는 몰랐다. 아버지를 위해 처음 흘리는 눈물이었다. …우다브노에 아침이 올 때까지 나는 울었다. 사라졌던 빛이 산맥을 넘어 아주 천천히 평원을 가로질러, 아버지의 무덤 위를 지나서, 서서히 내게 오는 것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다시 곧 돌아오겠다고 내게 오고 있는 것들에게 대답해주었다. _ '우다브노에서 아침을' 

-조지아까지 날아가 우다브노에서 식당을 운영하다 홀로 쓸쓸하게 죽어간, 단역 배우 출신 아버지를 찾아간 단편은 따스하다.
"아르자니 평원의 동쪽을 코카서스 산맥이 가로막고 있다. 해가 그쪽에서 떠오르고, 그 방향은 우리나라 쪽이기도 하다. 딸이 비로소 아버지의 인생을 온전하게 이해하고, 오빠가 재혼하면서 남긴 조카를 키우고 있는데 이제 이복 동생까지 거느리면서 새로운 가족 형태의 가장이 되는 국면이다. 말미에 '사라졌던 빛이 아버지의 무덤을 지나 내게 오는 것'은 아버지가 살았던 삶으로 회귀하는, 아버지의 책임을 다하겠다는 딸의 다짐이기도 하다."

-단편들에 '죽음'이 배음으로 깔려 있다. 작중 인물의 말처럼 '죽음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고 느끼는 것'인가.
"죽음은 어떤 삶이 하나의 획을 긋고 마무리되거나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그런 의미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은데, 그게 그렇게 이성적이고 물리적인 시간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죽음은 불현듯 떠오르는 과거의 어떤 기억들을 되새김질하면서 느끼는 감정의 형태 같다는 생각이다."

'그에게 독재 시대는 양쪽 진영 모두 손쉬운 먹잇감이었다. 편을 모으기 쉬웠고, 선동이 어렵지 않았다. 그에게 어려운 일은 같은 지대 안에서 정적을 제거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언제나 성공적이었다. 갖은 추문과 소문으로 반대쪽 힘을 빌리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그의 말은 녹슬고 낡았다. 이제 그가 하는 말에 사람들은 예전처럼 열광하지 않았다.' _ '복숭아를 씹으며'

이번 소설집에도 위선과 허위를 예리하게 뒤집어 보이는 백가흠표 단편은 빠지지 않았다. 김영태라는 노인은 시대의 파도타기를 절묘하게 해낸 인물로 보인다. 그가 어떻게 험난한 독재정권 시절을 건너 민주화투쟁이라는 명분으로 이기적인 삶을 살아왔는지 흥미롭게 드러낸다. 이즈음에도 그 일단을 볼 수 있는 현재형 풍경으로 읽힌다.

지질한 작가의 자학적인 고백을 담은 '감귤모텔 부흥회' 역시 백가흠표 단편으로 포진해 있다. 백가흠은 "나 스스로에게 가하는 채찍 같은 것인데, 이 소설을 읽고 조금 움찔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랑 같이 소주나 한 잔 하면 좋겠다"며 웃었다. 떡집을 하는 문예창작과 동창을 두고 "데뷔도 안 했는데, 걔가 무슨 글을 썼다고 자꾸 나하고 떡집 하는 애하고 비교하고 그래"라며 화를 내는 작중 작가를, 후배가 들이받는다.

'비교라고요? 데뷔요? 그게 중요해요? 글 쓰는 사람이 무슨 말을 그따위로 해요? 내가 암만 몰라도 형은 정말, 그게 잘못됐어. 그리고 형이 떡집을 알아요? 떡집 하려면 매일 새벽 두 시에 일어나서 준비해야 해요. 얼마나 부지런해야 하는데, 형처럼 게으른 사람이 알기나 해?' _ '감귤모텔 부흥회'

'아무도 모르게'의 은퇴한 노인은 스타벅스에 출근해 창밖을 바라보며 사는 고독한 인물이다. 그를 겨우 살게 만드는 소소한 희망의 빛은 새끼 고양이와 불현듯 떠오른 지난 시절의 사랑이다. 백가흠은 "고립된 쓸쓸한 삶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출구는 일상에서 찾는 소소한 재미, 막걸리 한잔 같은 그런 일상의 순간이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말했다.

 

▲ 백가흠이 두고 온 '가'는 무엇일까. 그는 "곰곰 생각해보니 붙잡지 못한 사랑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고 말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학자금 대출에 시달리며 고단한 이중 노동을 하던 청년 태형이, 푸드 트럭의 단골손님이던 베트남 유학생 흐엉의 갑작스러운 부재를 겪은 후 그녀의 팍팍했던 삶을 이해하고 그녀의 고향으로 가보겠다고 다짐하는 '라오까이 라이까이—가을이 오면'은 이즈음 청년들과 이주 노동자의 현실을 보여준다.

표제작 '가를 두고'는 아버지와 어머니, 여동생의 무덤을 자기 집 뒤뜰로 옮겨와 그 죽음을 끌어안고 혼자 사는 남자가 등장한다. 이 노인네는 산불이 그 집을 덮쳐 무덤도 태우고 아버지의 유일한 흔적마저 집어 삼키는 국면에서 허둥지둥 도피하다가, 집에 누렁이를 묶어둔 채 나와서 망연자실한 동네 노파의 탄식에 접한다. '내가 미쳤는갑다. 가를 두고 그냥 왔다.' 백가흠이 두고 온 '가'는 무엇일까. 

 

"질문을 제 쪽으로 돌려 생각해 보니 참 난감하면서 머리가 멍해지네요. 곰곰 생각해보니 외면하고 모른 척한 게 참 많아요. 붙잡지 못하고 흘려 보냈던 '사랑'이 제일 먼저 떠오르고, '진심' '양심' 이런 미처 도달하지 못하고 돌아섰던 감정도 두고 온 것 같아요."


백가흠은 "'가'에는 중의적인 의미가 있다"면서 "지나온 사람이나 감정 같은 것이기도 하지만, '무덤가'의 '가'처럼 항상 근처에 있는 어떤 것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성경과 불경을 모두 학습시킨 AI가 반복적으로 강조했다는 "지금 네 옆에 있는 사람을 네 자신처럼 대하라"는 문장을 그가 '작가의 말'에 명기한 배경이기도 하다. '가'에 있는 존재들을 끌어안겠다는 소설가의 다짐인 셈이다. 이어지는 말.

'문학은 이 문장 앞에 복종합니다. 소설은 남의 일을 내 일처럼 남에게 전해주는 이야기니까요. …모자람 많은 생이 감당하기에 너무 큰 진리를 이제야 알게 된 것 같아 자꾸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습니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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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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