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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범 감독, 더 이상 울지마라"

김병윤 Google구글에서 선호하는 출처로 추가
기사승인 : 2018-09-02 12:13:10
축구인생 처음으로 인터뷰하다 눈물
위기에 빠진 한국 축구 구한 소방수

남자가 울었다. 김학범 감독이 울었다. 두 번이나 울었다. 처음에는 선수들이 안타까워서. 두 번째는 선수들이 대견해서. 김 감독의 눈물은 국민들도 울렸다. 리더의 눈물은 그래서 값진거다.

 

▲ 아시안게임 연속 우승이라는 위업을 이룬 뒤 참았던 울음을  

 

김 감독은 왜 울었을까. 우승을 해서. 금메달을 목에 걸어서. 꼭 그것만은 아닐게다. 지나온 인생길이 주마등처럼 스쳐갔을 수도 있다. 잡초처럼 살아온 인생이 생각났을까. 누구도 모른다. 

 

김 감독은 조실부모 했다. 초등학교때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배가 고팠다. 배가 고파 축구를 시작했다. 삼시세끼 밥을 먹고 싶었다. 축구부 합숙소에서는 밥을 줬다. 너무 행복했다. 밥을 먹을 수 있어서.

 

선수시절은 화려하지 못했다. 그냥 그런 선수였다. 프로팀에 가지 못했다. 실업팀 국민은행에 들어갔다. 현역생활은 오래 가지 못했다. 평범한 은행원으로 전환했다. 창구에서 돈을 셌다. 회의감이 들었다. 내가 갈 길이 아닌데. 그라운드가 그리웠다. 직업을 바꿨다. 축구팀 코치로. 선수들은 크게 반기지 않았다. 단지 유명선수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김 감독은 이를 갈았다. 낮에는 운동장에서 땀을 흘렸다. 저녁에는 축구서적을 뒤적였다. 영어실력이 딸렸다. 영어사전이 닳도록 단어를 찾았다. 책을 보며 선진축구를 배웠다. 내친 김에 박사학위까지 땄다. 모교인 명지대에서.

 

진인사대천명. 노력을 다하고 하늘의 부름을 기다렸다. 기회가 왔다. 프로팀 일화 천마에서 코치로 불러줬다. 차경복 감독을 열심히 보좌했다. 우승의 숨은 공로자로 인정받았다.

 

마침내 일화 천마의 감독이 됐다. 꿈이 이뤄졌다. 우승컵을 또 들어 올렸다. 자만하지 않았다. 시즌이 끝나면 훌쩍 떠났다. 유럽으로. 남미로. 방랑자 생활을 했다. 놀러가는게 아니었다. 선진축구를 체험하러 다녔다. 열심히 공부했다. 팬들은 김 감독의 이런 노력에 찬사를 보냈다. 멋진 별명을 붙여줬다.

 

학범슨 김학범 감독. 영광스런 별명이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김 감독은 한국의 퍼거슨이 됐다. 본인은 쑥스럽다며 손사래를 친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팬들이 지어준 걸.

 

일화에서 물러난 뒤 한동안 야인생활을 했다. 백수 생활은 오래 가지 못했다. 도와 달라는 팀이 많아서. 1부리그 강등권에 놓인 팀들은 김 감독을 애타게 찾는다. 잔정 많은 김 감독은 거절하지 못했다.

 

강원 FC의 강등을 막아냈다. 광주FC의 요청이 왔다. 남들은 가지말라 했다. 팀 사정이 너무 안좋다고. 그래도 갔다. 위기에 빠진 팀을 내칠 수 없었다. 끝내 강등을 막지 못했다. 미련없이 사표를 던졌다. 구단에서는 남아달라 애원했다. 고마웠지만 떠났다. 1나의 할 일을 못했다며. 김학범 다웠다. 떠날 때와 들어설 때를 아는 남자였다.

 

김 감독의 팔자가 소방수인가 보다.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축구협회가 구조신호를 보냈다. 준비기간이 얼마 없었다. 흔쾌히 받아 들였다. 조금의 고민도 없이. 이마저도 축복이라는 마음으로. 

 

취임소감이 담대했다. 우승할 자신이 없으면 팀을 맡지 않았다고. 장수의 결기가 보였다. 속은 타들어 갔다. 밤잠을 못이루며 고민했다. 여기서 무너지면 나의 축구인생도 끝날텐데.

 

이왕 엎질러진 물. 주워담긴 늦었다. 고민할 시간에 실천을 했다. 선수선발부터 전술까지. 예상대로 였다. 선수선발에 잡음이 따랐다. 귀를 틀어 막았다. 흔들리기 싫어서. 끝내는 그 선수가 해줬다. 만감이 교차했다.

 

▲ 아시안게임 우즈베키스탄전에서 연장전 끝에 4-3 승리를 거둔 뒤 기자 인터뷰에서 처음 눈물을 보인

 

뒤돌아 보니 자신이 울고 있었다. 우즈베키스탄과 8강 전에서 인터뷰하며 처음 울었다. 어렵게 한마디 했다. 정말 힘드네요. 그리고는 끝내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가 안나왔다. 처음이었다. 김 감독 축구인생에 가장 힘 들었나 보다.

 

더 이상 울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런데 또 눈물이났다. 우승이 확정된 순간. 그동안 고생해준 선수들이 고맙고 대견해서. 명장 밑에 약졸이 없다하지 않는가. 김 감독은 진정한 명장의 눈물을 보여줬다. 명장 밑에서 선수들도 강해졌다. 한국 축구의 경사다. 장래가 밝아졌다.

 

남자는 태어나서 3번 울어야 된다고 한다. 김 감독은 아쉽게도 이번에 2번 울었다. 이제 울 기회는 한 번 밖에 없다. 그때가 언제일까. 궁금하다. 기대도 된다. 기분좋은 상상을 해 본다. 월드컵 감독으로. 올림픽팀 감독으로. 프로팀 감독으로. 아무래도 좋다. 꼭 이루어지길 그를 아는 많은 이들은 기대한다. 

 

KPI뉴스 / 김병윤 기자 bykim7161@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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