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책꽂이] "불을 느낀다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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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 "불을 느낀다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Google구글에서 선호하는 출처로 추가
기사승인 : 2024-07-10 10:39:14
사후 46년 만에 묶어낸 남정국의 시와 일기 '불을 느낀다'
10대부터 천재성 보인 문학청년, 너무 일찍 사라진 아쉬움
절친들이 나서서 복원한 시와 메모와 일기로 사후 등단

남정국(1958~1978)은 대학 1학년 11월, 채 스물을 넘기지 못하고 북한강 차가운 물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듬해 그의 죽음을 애석해하는 벗들이 유고문집을 꾸리긴 했지만, 그의 '천재성'이 내내 안타까워 최근 시집 '불을 느낀다'(엠엔북스)로 새롭게 묶어냈다. 그가 46년 만에 시인으로 세상에 각인된 셈이다.

 

▲사후 46년 만에 시인으로 다시 태어난 남정국(1958~1978). [엠엔북스 제공]

 

불을 느낀다/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마침내 가슴으로 쳐들어가는/ 결심하는 자의 망설임/ 그의 광기(狂氣)를 듣는다. _ '불을 느낀다' 전문

이 표제작을 쓴 시점은 그가 고려대 인문학부에 막 입학한 1978년 3월이었다. 중학생 시절부터 문예반에 들어가 문학에 빠져들었던 그에게 이 시점은 오래 산 여느 문인들의 절정기라 할 만하다. 이 해에만 이번 시집에 실린 27편 중 18편을 쏟아냈다. 

 

폭압적인 유신통치가 정점을 향해 치닫는 캠퍼스의 분위기가 유달리 섬세한 감성을 지닌 어린 시인의 정서에 어떤 배경으로 작용했을지는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여기에 젊은 치기와 개인적인 사정까지 감안하면 저 '불'은 웬만해서는 아무도 끌 수 없는 미래였을 터이다. 그 미래는 시편들을 모아놓고 보면 어둡고 죽음에 다가서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른 죽음을 예감했던 걸까.

알 수 없음으로 피어나는/ 무수한 꽃들의 최후에는/ 쓰라린 조국 같은 밤이 머물고/ 언제쯤 창은 햇살로 밝아져서/ 네가 안심할 수 있겠느냐// 별빛 몇 개에 눈물을 흘리면/ 때 이른 부음(訃音) 몇 개가 책상에 놓여 있다/ 죽어서 이름만이 남은 몇 사람이/ 가을을 거닐고 있다. _ '십대(十代)' 전문

일찍이 고등학교 2학년 나이인 1976년 8월에 쓴 저 시편에서부터 때 이른 '부음'이 거론되고 있다. 아마도 윤동주(1917~1945) 같은 요절한 선배 문인들을 염두에 둔 것이었겠지만, 그 자신 그보다 빨리 채 피워지도 못한 채 사라지리라고 예감했을까. 

 

어린 '십대' 시인은 1975년에는 아예 '죽음이 오네요'라는 표제로 시를 써놓았다. '그래요/ 죽음이 오네요/ 질긴 그물을 손에 쥐고/ 완강한 걸음으로 신작로를 걸어오네요.// 그리하여 아무도 모르는 채/ 또 한 사람이 사라져갈/ 저 익숙한 정경'('죽음이 오네요' 부분). 죽음에 대한 어린 10대의 사념은 대학에 들어온 해에는 보다 성숙한 세계관으로 나아간다.


나는 기억하리라/ 당신의 이슬. 당신의 미소. 우리들의 죽음을./ 씨를 받겠지/ 그 씨들은 다시 우리 아닌 우리가 되어/ 우리가 오늘 이렇게 흔들리며 흔들리며/ 서로에게 가려 하는 것처럼/ 그렇게 또 흔들리며 가려 하겠지. _ '수꽃이 암꽃에게' 전문 (1978년 5월) 

'독백체'에 이르러서는 "여기는 인간의 씨앗이 살 곳이 못 된다. 그래서 이별이 없는 곳으로 가려 한다. 그래서 눈물이 없는 곳으로 가려 한다."고 쓴다. "류마치스 같은 밤/ 너의 온몸에 배를 깔고는 회충처럼/ 엎디어서 진액을 빨아먹는 밤"('밤')에 이르면 그가 느끼는 어둠은 깊이를 헤아리기 어렵다. "아아 밤이 왔어요. 나는 밤 속에 죽어요. 어둡고 습한 밤이 내 등에 걸터앉아 마구 찍어대고 있어요."라고 한탄한다.


두살 터울 누나 남인복('문학뉴스' 편집인)은 "일주일을 수색한 끝에 동생은 다시 생전의 모습 그대로를 드러냈고, 차가운 강물 탓에 심장마비로 사망해 물을 먹지 않아 몸체는 붓지 않았다고 했지만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제 뒤집을 수가 없었다"고 회고한다. 그는 "구름처럼 표표히 흐를 수 있는 내 거칠은 심장을 씻을 강물은 말랐는가"라는 메모를 남겼지만, 정작 거칠고 차가운 강물이 그의 평화로운 심장을 움켜쥔 셈이다. 


일찍이 "오만불손하게도 문학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었다"면서 "중1때부터 남정국을 문학이라는 늪에 빠뜨리고 죽음에 이르게 한 데 '귀책사유'를 느낀다"는 고인의 절친 김강석(KPI뉴스 고문)은 "이번에 정식으로 그의 시집을 내게 된 것은 그의 유고 시집이 분실되거나 너무 낡아 볼 수 없게 된 때문이기는 하지만, 무엇보다 수십 년이 지나도 그때 그 나이에 그런 시를 썼다는 사실을 납득할 수 없었고 그는 천재가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을 풀기 위해서"라고 시집 말미에 썼다.

대성리 북한강에서 배가 뒤집혀 벗들이 물에 빠졌을 때 다른 이들을 구하고 홀로 심장이 멎은 그를 두고 "그 혼자만의 익사도 항상 민중이니 하며 남을 앞세우던 그의 이타주의적(他主義的)인 의식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점은 짐작해 보지 않아도 자명"하다고, 그의 사후 7개월만에 유고 문집을 만들었던 벗들(한정수·김주영·김강석)은 돌아보았다. 

 

이번 시집에는 메모와 일기도 함께 수록했다. 23일 오후 6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지하1층 서클홀에서 북토크 '46년만에 돌아온 스물의 시인 남정국 불을 느낀다'도 열린다. 저물녘 강둑을 소일하던 그는 천국을 찾았을까. 

 

오목렌즈 속에 안기는 표정(表情)은 그저 별이 흐르는 밤을 거닐고 괜히 허투루 사는 것 같지만 비명을 지르는 의식(意識)은 그래도 천국(天國)이 있을까 싶어 저물녘 강둑을 소일하고 있다. _'자화상(自畵像)'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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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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