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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하야' 2관왕 이승만, '탄핵' 박근혜…윤 대통령은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Google구글에서 선호하는 출처로 추가
기사승인 : 2024-12-06 11:03:57
[김덕련의 역사산책 ⑨] 탄핵·하야 풍경
근현대사에서 총 3번…1925‧1960‧2017
1925년 임시의정원 "이승만, 헌법 부인"
1960년 이승만 하야 성명 후 번복 시도
2017년 최초로 현직 대통령 박근혜 파면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느닷없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6시간밖에 지속되지 못했다. 시대착오적인 친위 쿠데타 시도는 시민들과 국회의원 과반수의 저항에 실패로 돌아갔다.

분노한 시민들 사이에선 윤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6개 야당은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 비상계엄 선포 파동 후 시민들 사이에서 윤석열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5일 오후 서울역 앞에서 열린 철도노조 서울본부 파업 출정식에 등장한 패러디물. [이상훈 선임기자]

 

탄핵 또는 하야 형식으로 최고 권력자가 물러나는 일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3번 있었다. 첫 번째는 1925년 3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입법 기관인 임시의정원의 임시 대통령 이승만 탄핵이다.

임시의정원은 이승만이 자신에게 불리한 임시의정원 결의를 부인하고 임정의 행정과 재무를 방해했다는 것 등을 탄핵 이유로 제시했다. 탄핵 의결 주문(主文)에서 이승만이 "대한민국의 임시 헌법을 근본적으로 부인하는 행위"를 했다며 다음과 같이 적시했다.

"국정을 방해하고 국헌을 부인하는 자를 하루라도 국가 원수의 직에 둠은 대업 진행을 기약할 수 없고 국법의 신성을 보장할 수 없다."

두 번째 사례는 그로부터 35년 후 발생했다. 이번에도 대상자는 이승만이었다. 1960년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 성명을 발표했다. 전국의 거리가 "이승만 정권 물러가라"고 외치는 시위대로 뒤덮이자 하는 수 없이 내놓은 성명이었다.

그러나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은 끝까지 보이지 않았다. 하야 성명에서도 "3·15 정부통령 선거에 많은 부정이 있었다 하니" 선거를 다시 하게 하겠다는 태도를 취했다.

3·15 선거가 정권 차원의 온갖 부정으로 얼룩졌는데도 자신과는 무관한 일인 것처럼 발표한 것이다. 부정에 항의하는 시민들에 대한 경찰의 무차별 발포 등으로 4월혁명 시기에 186명이 목숨을 잃은 것에 대한 사죄와 반성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고는 성명 발표 하루 만에 하야 결정을 뒤집으려 했다. 4월 27일 이 대통령은 국회 제출용 사임서에 서명을 거부했다. 비서들이 번갈아 가면서 서명을 간청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허정 외무부 장관과 김정열 국방부 장관도 서명을 권했으나 계속 거부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사임하면 온 국가가 혼란에 빠질 것이 확실하다고 강변했다. 허정이 다시 나서 대통령이 사임해도 질서를 확고히 유지할 수 있다고 강하게 얘기했다. 오랜 측근인 허정이 거듭 압박하자 이 대통령은 그제야 사임서에 서명했다.

이 대통령 하야 소식이 알려지자 거리에선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거대한 이승만 동상을 쓰러뜨린 다음 새끼줄에 묶어 끌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었다. 덩실덩실 춤추는 노인, 대통령의 사진과 초상화를 찢어버리는 여성들도 눈에 띄었다.

4월혁명은 1945년 8·15에 이은 제2의 해방이라는 평가가 지나치지 않은 역사의 분수령이었다. 4월혁명, 1979년 부마항쟁, 1980년 광주항쟁, 1987년 6월항쟁으로 이어진 민주화 운동은 한국 사회에 생기를 불어넣어 새롭게 태어나게 만든 원동력이 됐다.

 

▲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한 다음 날인 2017년 3월 1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마지막 촛불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탄핵 환영' 폭죽을 쏘아 올리고 있다. [뉴시스]

 

그 흐름을 이어받은 것이 2016, 2017년 촛불항쟁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도 불린 국정 농단 사건에 분노한 시민들의 촛불항쟁은 박근혜 정권 붕괴를 불러왔다.

2016년 12월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가결됐다. 2017년 3월 헌법재판소는 이를 인용했다. 최초의 현직 대통령 파면이었다.

박근혜 정권 붕괴의 밑바탕에는 세월호 참사 부실 대응, 퇴행적인 국정 교과서 강행 등 거듭된 파행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자리하고 있었다. 4월혁명이 선거 부정에 대한 항의를 넘어 독재와 부정 축재 등으로 점철된 이승만 정권 12년에 대한 총체적 평가였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윤 대통령은 이승만·박근혜 전 대통령과는 다른 결말을 볼 수 있을까. 

 

KPI뉴스 /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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