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기자의 눈] 사망 1879명…어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의 3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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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사망 1879명…어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의 3주기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기사승인 : 2024-11-21 14:51:55
옥시 제품 애용하다 희생된 고 김응익 씨
가해 기업의 피해 배상 문제는 표류 상태
대법, 국가 책임 인정…정부 사과는 아직
정부와 국회, 문제 해결 위해 적극 나서야

김응익 씨는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평범한 시민이었다. 1997년부터 10년 넘게 옥시(현 옥시레킷벤키저) 제품을 애용했다. 독성 화학 물질이 몸을 망가뜨릴 줄은 꿈에도 모른 채.

2011년부터 병마가 닥쳤다. 류머티즘, 뇌경색에 이어 폐 섬유화를 동반한 호흡 곤란이 김 씨를 괴롭혔다. 그는 2020년 폐 이식을 받았지만 이듬해 암 진단을 받고 결국 세상을 떠났다. 향년 64세. 가습기 살균제 피해 신고자 중 1725번째 사망자였다. 

 

▲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다룬 한 다큐멘터리에 담긴 생전의 김응익 씨 모습. [MBC경남 보도 화면 갈무리]

 

생을 마감하기 3개월 전 김 씨는 아픈 몸을 이끌고 거리에 나섰다. 가해 기업들의 피해 배상 문제 등 가습기 살균제 참사 관련 현안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김 씨는 웃옷을 벗고 망가진 몸을 공개하며 "살아 있을 때 해결되는 걸 보고 싶다"고 호소했다.

호소는 외면됐다. 김 씨의 3주기인 21일 유족과 참사 피해자, 환경보건시민센터를 비롯한 시민 단체 관계자들이 서울 여의도 옥시레킷벤키저 사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피해 배상 등을 여전히 촉구해야 하는 상황이다.

3년 동안 진전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6월 가습기 살균제 피해에 대한 국가의 배상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한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소송 제기 10년 만에 가해 기업들만이 아니라 국가도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한 판결이었다.

그에 앞서 1월에는 서울고등법원에서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한 SK케미칼·애경·이마트 임직원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무죄를 선고한 1심을 뒤집고, 전에 유죄가 인정된 옥시레킷벤키저 제품과는 성분이 다른 물질을 사용한 SK케미칼 등의 형사상 책임도 인정한 판결이었다.

이처럼 의미 있는 판결이 몇몇 있긴 했지만, 전반적인 흐름은 피해자들의 가슴을 짓누르는 갑갑한 상황의 지속이다.

우선 피해 배상 문제가 표류 상태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를 위한 조정위원회는 2022년 조정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옥시레킷벤키저와 애경이 거부해 배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옥시레킷벤키저와 애경은 피해자 발생 규모에서 1, 2위 기업으로 지목된다.


지지부진한 건 정부 쪽도 마찬가지다. 대법원 판결이 나온 만큼 정부는 사과, 진상 규명, 피해 회복을 위한 포괄적 방안 제시 등 상응 조치를 취하는 게 마땅하다. 그러나 판결 후 5개월이 지나도록 사과조차 없다.

김완섭 환경부 장관 후보자가 7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사과할 뜻이 있음을 밝혔을 뿐이다. 2017년 8월 문재인 대통령이 피해자들에게 사과한 적이 있지만, 그때는 국가의 법적 책임이 인정되기 전이다. 더 늦기 전에 정부 차원에서 공식 사과할 필요가 있다.

국회 쪽도 다를 바 없다.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짐을 덜어줄 정치적 해법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는 사이 정부의 공식 사과도, 피해 배상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피해 신고자 중 사망자는 김 씨 이후 154명이 늘어 1879명에 이른다(10월 31일 기준).

이제라도 정부와 국회가 발벗고 나서야 한다. 배상 등 현안 해결 부담을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만 지워서는 안 된다. 피해 신고자가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 연구 추산치의 1%도 안 되는 만큼 피해자를 더 찾아내고 피해 인정 범위를 넓히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가습기 살균제가 출시된 지 30년, 정부가 그 피해를 공식화한 지 13년이 지났다. 적잖은 시간이 흘렀지만 가습기 살균제 문제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관련 책임자들이 참사를 초래한 '생명보다 이윤'이라는 위험한 주술에 취해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때다.

 

▲ 김덕련 기자.

 

KPI뉴스 / 김덕련 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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