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없는 쪽 패배' 토끼전과 금융에 적용···가치평가(valuation) 적시성 시장규율 긴요
남해용왕의 병에 토끼의 간이 신약이라고 하여 별주부가 육지에 나가 토끼를 유혹하여 용궁으로 데려왔지만 토끼는 꾀를 내어 간을 두고 왔다고 속이고 다시 육지로 나간다. 여기서 용왕에게 특효약인 토끼의 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용왕과 토끼 모두에게 알려진 정보이지만 토끼의 간이 밖에 있는지 여부는 토끼만이 알고 있는 감추어진 정보이다. 따라서 간이 자신의 뱃속에 있다는 중요한 정보를 갖고 있는 토끼는 용왕과의 협상에서 우월한 위치에 있게 되었고 이는 정보의 비대칭(asymmetric information)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정보 비대칭. 1990년대를 풍미한 정보경제학의 개념이다. 필자가 석사학위 논문을 이것으로 썼지만 서양문헌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문학인 토끼전을 통해 설명하는 것이 이해하기 쉽다. 금융에는 기본적으로 이러한 정보 비대칭 문제가 수반된다. 예컨대 투자 자금을 끌어들이려는 사람은 투자의 성공 가능성 등에 대해 자금을 제공하는 사람보다 정보가 많다. 따라서 이러한 정보 비대칭 문제를 완화하는 것은 금융에서 중요한 관심사가 된다.
2020년대 중반에 일어나고 있는 정보 비대칭의 사례를 보자.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역에 사는 한 은퇴 의사는 지난해 새로운 투자 기회를 홍보하는 브로슈어를 받았다. 자산운용 규모 1조 달러에 달하는 뉴욕의 자산운용사 블랙스톤이 77세인 그에게 사모대출펀드(Private Credit Fund)에 2만5000유로를 투자할 기회를 제안한 것이다. 올해 들어 투자자들의 대규모 자금 회수로 경고등이 켜진 미국 사모대출펀드 시장은 바로 프랑스 의사와 미국 자산운용사 간에 있을 법한 정보 비대칭 문제를 말해주고 있다. 인공지능(AI)에 밀려날 위험에 처한 소프트웨어 기업 대출에 대한 투자자들의 의구심이 자금 회수를 촉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대형 자산운용사들이 이끌어 온 사모대출펀드 시장은 고수익의 대명사였다. 그러나 지금 투자자들은 펀드의 순자산가치가 얼마나 정확하게 평가되고 있는지조차 확신하지 못한다. 사모대출펀드의 가치평가(valuation)가 적시성 있게 이루어지지 않음에 따른 정보 비대칭 문제가 위기를 가져온 것이다.
이러한 와중에 정보 비대칭은 시장 참가자 간 극명한 이익 추구 행태의 차이로도 전개되고 있다. 주요 월가 은행들은 사모대출펀드 시장의 어려움에 베팅하는 파생금융상품 거래를 이달 들어 시작했다. JP모건, 바클레이즈, 모건스탠리 등 유수 은행들이 사모대출펀드가 채무 불이행 등 어려움에 처할 경우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설계된 파생금융상품의 거래에 들어간 것이다. AI의 급속한 발전으로 사업 모델에 큰 타격을 입은 소프트웨어 회사에 막대한 대출을 제공해 온 사모대출펀드의 채무 불이행을 예상하고 베팅하는 행태다. 이른바 주류 금융(mainstream finance)을 대표하는 해당 은행들은 이에 대해 언급하기를 주저했다.
한편 폴 앳킨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은 지난주 워싱턴 D.C.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orld Bank) 춘계 연례회의에서 투자자들이 사모대출펀드 투자의 위험을 감당할 수 없다면 투자를 포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앳킨스 SEC 위원장은 개인적으로도 사모대출펀드에 투자해 본 경험이 있다면서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모두 겪어봤지만 손실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뜨거운 열기를 견딜 수 없다면 부엌에서 나가라(If you cannot take the heat, get out of the kitchen)'고까지 단언했다. 정보 비대칭을 줄이는 정책을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에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고 있는 듯한 감독기관장의 현실 인식이 아닐 수 없다.
돌이켜 보면 사모대출펀드 시장에 커다란 기회를 제공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위기 이후 대대적인 금융규제개혁을 통해 전통적인 은행의 대출을 제한하면서 신용도가 낮은 기업에 대한 위험도가 높은 대출이 사모대출펀드로 옮겨갔다. 이후 초저금리로 인해 사모대출펀드의 자금 조달 비용이 절감되었고 높은 수익률을 찾는 투자 자금들이 몰렸다.
그러면 현 시점에서 미 사모대출펀드 위기로부터 어떠한 시사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많은 금융현상에서 그러하듯이 먼저 신호와 소음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지금 여러 요소가 혼재되어 들려오고 있지만 맞춤형 비은행 대출이라는 사모대출펀드가 지니는 근본적으로 긴요한 역할과 드러나고 있는 다른 문제점은 구분되어야 한다.
은행 대출에 접근이 안 되는 중소형 기업 등을 위한 사모 대출 기능 자체는 본질적으로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우호적인 경제 환경 속에서 자금이 풍부했던 시기에 완화된 대출 심사 기준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과 팬데믹 기간에 걸쳐 자금은 사모대출펀드 시장으로 빠르게 유입되었다. 초저금리 시기였고 이에 따라 대출 경쟁도 심화되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대출은 낙관적인 레버리지 가정과 차입자의 상환 능력에 대한 낙관적인 가정이 전제되었고 현금 상환 의무를 이연하는 현물 상환 구조로도 설계되었다. 소프트웨어 기업은 대출에서 선호되는 분야였고 챗GPT 등장 이전의 많은 대출은 AI의 잠재적 영향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
이제 이러한 대출은 변화하는 금융경제 환경에 직면해 있다. 금리는 높아졌으며 빠른 기술 변화는 기업의 수익구조를 재편하고 있다. AI는 소프트웨어 기업에 실체적이고 점증하는 위협이 되고 있다. 자금 공급과 수요가 풍부했던 시기에 어떤 방식으로 대출 심사가 이루어졌는지 투자자들이 지금 의구심을 갖고 점검하려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는 사모대출펀드 자체의 시스템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시장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일련의 과정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투자 환경이 우호적일 때는 자금이 빠르게 유입되는 가운데 대출 심사 기준도 완화되는 경향이 있다. 위험은 호황기에 축적되었다가 상황이 어려울 때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앞으로 요청되는 접근 방법과 과제는 무엇인가. 앳킨스 미 SEC 위원장이 말한 대로 뜨거운 열기를 견딜 수 없어 부엌에서 나가면 되는 것일까. 이는 2% 이상 부족한 접근 방법이다. 앤드류 베일리 영국중앙은행 총재는 지난 월요일 사모대출펀드를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주요 취약점으로 지목했다. 금융안정위원회(FSB) 의장 자격으로 G20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 앞 서한을 통해 사모대출펀드 시장의 정보 불투명성 등이 글로벌 금융의 취약점이라고 지적했다. 적절한 문제 인식이다. 지난 목요일 은행법학회와 한국은행이 공동 주최한 춘계 학술대회에서 다룬 포용금융(Inclusive Finance)을 위한 정책 과제에서도 정보 비대칭을 극복하는 금융 생태계 설계를 논의했다. 포용금융에 기여하는 사모대출펀드 본연의 역할 제고를 위한 금융 생태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토끼전에서 용왕은 끝내 간을 얻지 못했다. 정보가 비대칭적이면 정보가 없는 쪽은 협상과 거래에서 패배한다. 현대 금융도 다르지 않다. 정보가 없는 쪽은 늘 불리하다. 토끼전과 금융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원리다. 그래서 미국 사모대출펀드 위기의 해법 또한 한국 토끼전에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기 위하여 가치평가의 적시성과 신뢰성을 높이는 제도적 시장 규율 강화가 긴요하다. 투자자는 고수익만을 추구하기보다 정보의 제도적 접근성에 기반한 합리적 의사결정을 중시해야 한다. 금융은 자금의 흐름이자 정보의 흐름이기에 금융제도는 정보의 흐름을 보다 균형 있고 투명하게 만드는 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 이는 지속가능한 금융 생태계를 만들어 가는 데 필요한 조건들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가 경험해 왔듯이 시스템 리스크(systemic risk) 등에 대한 선제적 정책 대응은 금융안정 책무를 지닌 중앙은행 등 유관 정책당국이 항상 유념해야 하는 과제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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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홍균 객원논설위원 |
●조홍균은
법·제도경제학자이자 35년 경력 중앙은행가. 경제, 금융, 기업 관련 정책과 제도를 주로 천착했다. 통화금융정책, 금융체제, 금융감독, 금융산업, 기업정책, 법경제 실무와 이론에서 전문성을 쌓았다. 중앙은행과 정부, 국제기구, 학계, 언론계 등에 걸쳐 폭넓게 이력을 쌓았다.
△ 미 워싱턴대 법학박사(J.D./J.S.D., 법경제학) △ 1989년 한국은행 입행 △ 1990년 조사제1부 조사역 △ 1999~2012년 정책기획국 과장 차장 팀장 △ 2016년 금융감독원 거시감독국 파견국장 △ 2017년 한국금융소비자학회 부회장 △ 2018년 한국금융연수원 교수 △ 2022년 경제연구원 부원장 △ 저서: 우리 시대의 금융경제 읽기(박영사, 2025년) △ 2025년~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법무대학원 교수,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객원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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