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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402호, 그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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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승인 : 2019-04-29 11:30:04
▲ 윤흥식 사회에디터

402호 남자는 그날 새벽 1시 23분 집을 나섰다. 인적이 끊긴 대로변을 걸어 인근 셀프주유소로 향했다. 돌아올 때 그의 손에는 기름통이 들려 있었다.

​세 시간여 뒤인 오전 4시 32분. 사내는 자신이 3년째 살고 있던 스무평 짜리 주공 아파트 거실과 주방에 휘발유를 뿌렸다. 그리고 아파트 출입문에 서서 불붙인 신문지를 집안으로 던져 넣었다.

​402호 남자는 마흔두 살 뱀띠였다. 그가 태어나던 해 대한민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047달러였다. 너나없이 어려웠던 시절, 그의 집안은 유독 가난했다. 친구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하던 해, 그는 소규모 정비공장에서 비숙련 노동자 생활을 시작했다. 김해와 창원의 공장에서 일하면서 허리를 다쳤다. 산재 인정을 받지 못하면서 세상에 대한 분노가 싹텄다.

​402호 독신남은 눈매가 매서웠다. 누구라도 좁은 길에서 마주치면 피해가고 싶을 만한 인상이었다. 서른세 살 되던 해, 사내는 자신을 '기분 나쁘게 쳐다보던' 대학생과 시비가 붙었다. 칼부림을 벌인 끝에 유죄판결을 받았다. 조현병이 인정돼 공주치료보호감호소에서 9개월을 보냈다. 감호소를 나온 뒤 다시 6개월을 정신병원에서 보냈다.

기초수급자이자 조현병 환자였던 402호 남자는 자신이 불을 지른 집에 화염이 치솟는 것을 보고 "불이야!"라고 소리쳤다. 쇠난간을 두드려 잠든 이웃들을 깨웠다. 그리고 컴컴한 2층 계단으로 내려가 사람들이 내려오길 기다렸다. 미리 준비해둔 흉기로 급소를 공격했다.

​402호 남자가 범행에 사용한 흉기는 두 달 전 재래시장에서 구입한 34cm 길이의 특수칼이었다. 그는 한 자루로는 모자라다고 생각했는지, 한꺼번에 두 자루를 준비했다. 그때 그의 마음 속에 어떤 지옥도가 그려지고 있었는지 가늠하기란 쉽지 않다.

​그 새벽 402호 남자의 손에 다섯 명이 숨졌다. 70대 남성 황모씨, 60대 여성 김모씨와 50대 여성 이모씨, 시각장애 여성 최모양, 초등생 금모양 등이었다. 하나 같이 자기방어 능력 없고, 특별한 원한관계도 없는 인물들이었다.

402호 남자는 경찰에서 "저도 하소연을 했었고 10년 동안 불이익을 당해 왔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불이익을 당해 오고 이러다 보면 화가 날 대로 나고..."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만약 여기가 OO주공이 아니고 서울 부자동네였다면 이런 일이 일어났겠어?"라며 발을 굴렀다.

402호 남자가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르고, 별 원한도 없는 이웃들을 잔혹하게 살해하기 한달 전 한국은행이 발표한 대한민국의 2018년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은 3만1349달러였다. 그가 태어나던 해와 비교하면 30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였다. 살림살이가 서른 배 나아지는 동안 삶의 질과 행복지수는 뒷걸음질쳤다. 부모의 학력과 소득이 낮은 집안 출신의 자녀들이 상류사회에 진입할 수 있는 확률을 뜻하는 '개천용 지수'는 바닥까지 떨어졌다. 대한민국은 만인을 향한 만인의 전쟁터가 됐다. 그 전쟁터 한구석에서 안인득이라는 이름의 402호 남자가 자신의 전쟁을 치르기 위해 재래시장에서 두자루의 칼을 사고, 셀프 주유소에서 휘발유 통을 채웠다.

그 사내는 우연히 402호에 주소를 두고 있었지만, 201호나 503호에 살았다 해도 이상할 것 없는 사람이었다. 어느날 층간소음을 핑계로 당신이나 내 집의 초인종을 눌렀을 수도 있는 평범한 '이웃' 중 한 명이었다.

KPI뉴스 / 윤흥식 사회에디터 jardin@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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