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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 문학공간] "은하수 건너 나귀처럼 걸어간 사랑의 길"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기사승인 : 2026-05-08 16:51:37
소설가·시인 윤후명 1주기 유고시집 '모루도서관' 출간
고향 강릉 떠나 떠돌다 귀환하는 여정 시로 그린 지도
함께 활동했던 문인과 배움 받은 제자들 추모제 진행
"별똥별을 맞으며 우주를 건너야 한다, 그게 사랑이다"

어느덧 팔순(八旬)에 이르렀다니 / 그리운 모든 것 아직 그대로인데/ (…)/ 아름다움과 그리움은 머언 무지개 / 그런데도 어딘가로 발길을 옮기고 있다 / 어쩌면 황야의 한 티끌로 향하고 있는가 / 그럼에도 어디론가 걸어가야 한다 / 머언 무지개는 어디 있는가 / 나는 어디에 있는가 _ '팔순(八旬)에 이르렀다' 부분 

 

▲ 지난해 5월 작고한 소설가·시인 윤후명. 1주기를 맞아 그를 기리는 문인들이 유고시집을 출간하고 추모제를 열었다. [윤후명 작가 1주기 추모 추진위]

 

팔순을 맞은 윤후명(1946~2025)은 곧 닥칠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을까. 지난해 오늘(5월8일) '은하수 건너' 별들의 음악을 찾아 떠난 그는 '오늘은 팔순 생일 / 예전 모습은 어디로 가고 나타난 다른 얼굴 / 마르고 쭈그러진 모습 / …나는 아직도 '비단길'을 가고 있구나'라고 썼다. 1주기를 맞아 출간된 유고시집 '모루도서관'(문학과지성사)은 윤후명 문학의 궤적을 그려내는 정서적 지도라 할 만하다. 팔순에 이르러서도 그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구원의 문장을 찾아 여전히 '논두렁길'을 가고 있다고 토로한다. 그의 나귀 걸음은 끝날 것 같지 않은 현재진행형이었다.

윤후명은 지난해 4월 부산에서 열린 자신의 문학과 그림을 함께 엮은 전시회에 참석했다가 급작스럽게 건강이 악화돼 상경한 뒤, 채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지구별을 떠났다. 일찍이 경향신문 신춘문예(1967)에 시가 먼저 당선돼 시인으로 나선 뒤, 다시 한국일보 신춘문예(1979)에 소설이 뽑혀 시와 소설을 겸업하며 시적인 문체로 서사를 그려나가는 문체미학의 작가로 이름이 높았다. 말년에는 그림도 같이 그리며 각 형식에 걸맞은 이야기는 따로 있다는 생각으로, '굽쇠'를 갈아 끼우며 묵묵히 '나귀의 길'을 걸어온 터였다. 1주기를 맞아 7일 남산 자락 '문학의집·서울'에서 열린 추모제에서 정희성 시인은 "윤후명 문학의 그 긴 여정을 생각할 때면 이상하게도 굽쇠라는 나귀의 신발이 떠오른다"면서 이 시편을 낭송했다.

몽골에서 나귀를 타고 간 풀밭 길은/ 중국에서 열차를 타고 간 돌사막 길은/ 멕시코에서 숲속으로 간 마야 언덕길은/ 프랑스에서 버스를 타고 간 겨우살이나무 길은/ 강릉에서 아픈 발을 끌고 간 강문 뒷길 냇가 길은/ 모두 내 굽쇠를 바꾸고 가야 마땅했다/ 나는 늙고 낡았는데도/ 아직은 밝았다/ 가엾고 가없는데도, 덧없는 마지막 날들이/ 그토록 밝으면/ 어디에도 없는/ 이제는 어디에도 없는 날들도 그토록 밝으려나/ 굽쇠를 새로 바꾸고 가야 마땅했다 _ '굽쇠의 날들'

윤후명에게 '나귀'는 방랑하는 예술가의 자아였다. 그 나귀의 발에 박힌 '굽쇠'가 닳았다는 것은, 단순히 노년을 의미하는 것을 넘어 전 지구적인 방랑과 사유의 여정이 그만큼 치열했음을 방증한다. 몽골, 중국, 멕시코, 프랑스라는 광활한 세계의 길들이 결국 '강릉 강문 뒷길'이라는 작고 소박한 냇가 길로 수렴된다. 고향 강릉에서 출발해 서역의 둔황까지 사랑과 사람을 찾아 떠돌다가 다시 출발지로 돌아오는 여정이 이번 유고시집의 족적이다.  

 

고향을 떠나 타관에서 성장하며 늘 그리움을 안고 살았던 그는 시를 쓰기 위해 철학과(연세대)에 들어갔고, 소원대로 시인으로 살기 시작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문학으로 두드리고 열고 싶은 그 무엇은 그를 늘 취하게 만들었다. 죽자고 술을 마셔대는 그를 포함한 일군의 문인들을 문학평론가 김윤식이 '자멸파'(自滅派)라고 일컬었거니와 그 황폐한 행로는 귀한 인연을 만나, 새로운 길로 접어들었다. 그는 "살길을 찾아 울퉁불퉁을 제 길로 만드는 / 방법을 나귀는 알고 있다 / 내가 술을 끊고 폐쇄 병동에서 나온 힘"이라며 "나중에는 나 스스로 나귀가 되어야 하리"라고 썼다.

내 어디가 어떻게 자멸을 말하고 있는지 / 나는 모른다 / 자멸이 아름다울 수 있는가, 나는 묻는다 / 묻는 것이 내 문학이 된다 / 나는 내게 물음을 던지며 밤길을 간다 / 물음이 문학이라고 나는 내게 말한다 / 그래서 자멸파가 되는 것인가 / 나는 내게 답을 줄 수가 없다 / 그러므로 자멸파가 될 수밖에 없는가 / 어두운 밤길이 될 수밖에 없는가 / 어느덧 나는 자멸파가 되어 / 이 밤길을 헤쳐 가야 하는가 - '자멸파(自滅派)의 밤길' 부분

윤후명은 "젊은 날 술을 그렇게 퍼마신 내가 / 이날까지 살아 있는 것은 / 예전에 고개를 넘어 다니던 그 나귀 덕분일 것"('차마고도의 나귀')이라며 거듭 나귀의 길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나도 모르게 저지른 이상한 일들 / 긴 세월의 술 탓으로만 묻어둘 수가 없다 / 모두가 잘못이었다 / 그림자 마을을 지나온 것이었다 / 그것까지도 나는 잊어버린 것이었다 / 그것은 내가 아니었다"('그림자 마을에서')고 고백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자성의 힘이야말로 나귀의 길을 가게 한 바탕일 것이다.

그가 암중모색한 길은 아무도 가지 않는 새 길이었고, 궁극의 사랑을 찾는 구도의 여정이었다. 해남 미황사 주지 시절 윤후명을 만난 중앙승가대 금강 스님은 "돌이켜 보니 단순한 만남이 아니라 깊은 구도의 길 위에서 마주친 도반의 인연이었다"면서 "구름은 사라져도 하늘은 그대로이듯 육신은 잠시 자리를 옮겼으나, 남긴 문장과 그림 그리고 고귀한 성품은 우리 가슴 속에 오래 살아 있을 것"이라고 기렸다.

 

최동호(문학평론가, '문학의집·서울' 이사장) 시인은 "무언가를 찾아나섰지만 바깥으로 떠돌다 결국 고향인 강릉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생애"라면서 "어머니의 정화수를 떠올리면서 한 번도 강릉을 떠난 적이 없다고 말하는 그는 아름다운 서정적인 문체로 사랑과 그리움의 여정을 그려낸 탁월한 작가"라고 말했다. "저세상의 어머니는 아직 강릉에 계신다 / 이모들도 외삼촌들도 / 그 어디에 오간다"('어머니의 정화수 1')고 썼던 윤후명은 "2025년 새해 장독대에서도 어머니의 정화수를" 찾다가, "어머니 마지막 말씀 / 이제서야 깨닫는 것이다 / 큰 산이 거두어 갔음을 깨닫는 것이다 / 이것이 인생, / 이라고 말해야 한다 / 이제는 미룰 수가 없다 / 이것이 인생이라고"('어머니의 정화수 2') 작별인사처럼 썼다.


▲ 서울 중구 예장동 '문학의집·서울'에서 열린 윤후명 작가 1주기 추모제 '사랑의 길'. 미황사 주지 시절 인연을 맺었던 금강 스님은 "돌이켜보니 단순한 만남이 아니라 깊은 구도의 길 위에서 마주친 도반의 인연이었다"고 술회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동인 활동을 함께했던 강은교 시인은 표제작 '모루도서관'을 낭송했다. 모루도서관은 윤후명이 명예관장으로 봉사했던 강릉의 도서관 이름인데, 사물을 벼릴 때 단단한 받침으로 기능하는 '모루'의 속성을 바탕으로 자신의 문학을 받쳐준 생의 모루에 바친 헌사로 읽힌다. '내 삶에서 모루는 무엇이었던가 / 여러 농기구를 벼르기도 했다 / 호미, 곡괭이, 쟁기 들이 내 삶을 지나가고 있었다 / 전쟁과 혁명에 피 흘리며 쓰러지던 / 군인과 학생도 보았다 / 드디어 ㄱ, ㄴ, ㄷ, ㄹ, ㅁ……의 행진…… / 나는 시인이 되었다 / 그 밑을 모루가 받치고 있는 것이었다'('모루도서관' 부분). 강은교는 모루가 받치고 있는 '나는 시인이 되었다'는 마지막 행이 특히 좋았다고 했다. 누구에게나 모루는 있다.

'강릉 바닷가에서 별을 바라보는 것은 / 지금 살아 있음을 되새기며 / 이 삶의 사랑을 물어보는 것'('강릉 별빛')이라던 윤후명은 '이제는 내가 나를 버릴 차례인가 / 모든 것은 여전히 아름답게 비치는데 / 버림받은 사람이 될 차례라니 / 마침내 모든 것이 나를 버리는가 / 이렇게 될 걸 모르지 않았건만 / 나는 어디로 버려지는가'('버림받은 사람')라고 썼다. 그가 남기고 간 '사랑의 길'.

'먼 길을 가야만 한다/ 말하자면 어젯밤에도/ 은하수를 건너온 것이다/ 갈 길은 늘 아득하다/ 몸에 별똥별을 맞으며 우주를 건너야 한다/ 그게 사랑이다 / 언젠가 사라질 때까지 그게 사랑이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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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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