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신간] '폭풍의 언덕'을 넘은 14세 가출 소년의 드라마틱한 성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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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폭풍의 언덕'을 넘은 14세 가출 소년의 드라마틱한 성장기

박지은 Google구글에서 선호하는 출처로 추가
기사승인 : 2024-10-29 13:22:59
6월항쟁과 촛불혁명의 시대상을 반추하는 감동의 서사

6월항쟁이 일어났던 87년 봄, 고려대 교정에 홀연히 열네 살 소년이 나타났다. 매일 술 마시는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경기도 연천에서 무작정 상경한 가출 소년이었다. 청계천 봉제공장에 다니던 누나를 찾았지만 함께 살 수 없었던 소년은 배고픔과 두려움에 떨며 서울 거리를 헤매며 수돗물로 배를 채워야 했다. 그 가여운 꼬마에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는데, 우연히 시국사범으로 수배 중이던 대학생과의 우연한 만남 덕분이었다. 그 인연으로 소년은 고려대 정경대학에서 살게 되었다.

 

 

 

어떤 드라마도 상상할 수 없는 아름다운 서사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고려대 학생들은 둥지를 잃은 소년을 사랑으로 품었다. 밥을 사 주고 재워주었을 뿐 아니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그리하여 그 소년은 '정돌이'로 새롭게 태어났다. 정돌이는 정경대에서 살고 있는 꼬마란 의미다.

 

정돌이가 된 소년은 매일같이 밥을 사 주고 재워주는 것은 물론 진심으로 아껴주는 형, 누나들의 따스한 보살핌을 받으며 가정폭력의 상처를 조금씩 치유해 나갔다. 그리고 형, 누나들이 있는 곳에 늘 함께하면서 단 한 번도 갖지 못했던 자신의 꿈을 찾기 시작했다. 고대 서클에서 우연히 배운 풍물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정돌이는 열심히 배우고 익히기를 거듭했다. 이후 청년이 된 정돌이는 더욱 정진해 결국에는 국내 최고의 장구 전문가로 성장하며 풍물패를 운영하는 선생이 되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의 악몽에서 벗어난 정돌이에게 고려대는 고향이었고 늘 자신을 챙겨주는 형, 누나들은 든든한 가족이었다. 그 시기, 정돌이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6월항쟁으로 이어지는 생생한 현장을 눈앞에서 보게 된 것이다. 경찰들에 의해 무차별 구타를 당하고 구속되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형, 누나들의 의로운 투쟁을 응원하며 함께하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다.

 

37년의 시간이 흘러 이제 50을 넘긴 정돌이는 그때의 다짐을 지금껏 잊지 않고 있다. 열네 살 때인 1987년에 '온몸 바쳐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형, 누나들에게서 배운 정의로운 가치'를 평생 실천하는 게 정돌이의 하나뿐인 삶의 방향이다. 그는 "그때 형, 누나들이 베푼 사랑과 돌봄이 없었다면 내 인생은 어찌 되었을까."라고 회고하면서 자신의 인생 목표를 분명하게 밝힌다. "그 은혜를 평생 갚는 것이 내 인생 목표이며 그때 배우고 가슴에 새긴 그 가치를 올곧게 실천하는 삶을 살겠다."

 

아주 어린 나이에 맺은 인연을 평생 이어가고 있는 정돌이 이야기는 그 어떤 영화에서도 보기 어려운, 무척 흥미로우면서 반전의 감동을 주는 서사임이 분명하다. 더욱이 어린 정돌이가 직접 마주했던 현장이 6월항쟁 격전지였다는 점에서 격동의 시대상을 반추하는 특별한 서사를 이 책을 통해 엿보게 한다. 그 시절 운동권 대학생들 손을 잡고 각종 시위에 참여했던 정돌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충격 그 자체였다. 최루탄이 난무하고 사복 경찰에 잡혀 질질 끌려가는 형, 누나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국가권력의 막강한 폭력 앞에 정의로운 사람이 고통받는 현실'을 인식하게 된다.

 

정돌이는 사회의식이나 이념 같은 걸 가질 수 없었던 어린아이일 뿐이었다. 하지만 한없이 선량한 고대생들의 드높은 결기와 투쟁대열을 지켜보면서 어렴풋이나마 정의의 가치를 배웠고, 무자비한 폭력 앞에 참혹한 몰골이 된 채 감옥에 끌려가는 고대생 형, 누나들의 모습을 보면서는 펑펑 눈물을 흘렸다. 그래서 정돌이 선택은 늘 하나였다. 자신을 보살펴 준 고대생들에 대한 무한한 믿음이고 의로운 투쟁을 하는 형, 누나를 응원하는 거였다. 이념 같은 건 필요 없었고, 그들이 향하는 모든 곳에 동행했다. 6월항쟁의 거센 불꽃이 타오를 무렵, 정돌이는 각종 민주화 시위 현장에 빠지지 않았고 북과 장구를 치면서 응원의 목소리를 보탰다.

 

청년이 되어 홀로서기를 할 때는 현실의 냉혹함을 경험하면서 좌절하기도 했지만, 고려대 생활에서 체득한 '정의롭게 살아야 하고 어려운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철칙만은 잊지 않았다. 그 일환으로 아내와 함께 사물놀이패 '미르'를 열어 풍물 교습을 시작했고, 공연팀을 구성해 도움이 필요한 여러 곳에 봉사활동을 꾸준히 전개하고 있다. 촛불혁명이 절정에 이른 2016년 마지막 날, 정돌이는 100만 명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새해맞이 촛불집회 무대에 올라 전인권 등의 유명 가수와 함께 합동공연을 했다. 정돌이 개인적으로도 영원히 잊지 못할 무대였으며, 30년 전의 형, 누나들과 다시 어울려 역사의 현장을 껴안았던 감동의 순간이었다.

 

KPI뉴스 / 박지은 기자 pje@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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