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기자수첩] 기자의 명함은 취재용인가, 영업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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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기자의 명함은 취재용인가, 영업용인가

강성명 기자 Google구글에서 선호하는 출처로 추가
기사승인 : 2026-09-03 13:56:10

"민망한 소리를 잡아준다고 설치해달라고 했어요."

 

기자는 취재를 위해 사람을 만나고, 정보를 얻고, 공공기관과 관계를 맺는다.

 

그 관계는 어디까지나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그 관계를 특정 업체의 물품을 공공기관에 소개하고, 그 대가를 받는 데 활용했다면 어떨까.

 

불법 여부를 떠나 기자 윤리로서 떳떳한 일일까?

 

이번 전남광주통합특별시교육청의 '음압변기시스템' 수의계약 논란을 취재하면서 이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70대 A  씨 본인의 설명이다.

 

A 씨는 KPI뉴스의 보도 이후 "음압변기시스템을 알게 돼 소개한 것은 약 2~3년 전부터다"며 "일부 교육청 관계자에게 제품자료를 보여주고 제품을 소개한 사실은 있다"고 인정했다.

 

더 중요한 대목은 대가성이다.

 

그는 "제품을 소개한 이후 업체로부터 일부 소개에 따른 대가가 발생한 사실 자체도 전면 부인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다만 "자신의 사업장을 통해 정상적으로 세금계산서를 발행했고, 관련 세무신고와 세금납부를 했다"는 입장이다.

 

세금을 냈는지 여부는 세법의 영역이다.

 

또 물건을 알선한 뒤 대가를 받았다면 이는 사법당국에서 들여다봐야 할 문제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묻고 싶은 것은 세금이나 법 위반 여부가 아니다.

 

기자가 취재를 위해 쌓아온 공공기관과 관계를 활용해 특정 업체의 제품을 소개하고 그 대가를 받는 것이 언론윤리상 적절한가 하는 문제다.

 

한국기자협회 언론윤리헌장 제8조를 보면 언론의 힘을 사적으로 남용하지 않고 이해 상충을 경계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취재원과 공과 사를 분명히 구분하고,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된 정보를 이용해 금전적 또는 사적 이익을 추구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도 제시한다.

 

취재원으로부터 정당한 이유가 없는 혜택과 편의를 제공받지 않고 부당한 청탁이나 압력을 행사하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이 원칙을 놓고 보면 질문은 명확해진다.

 

언론사 대표라는 직함으로 교육청을 드나드는 것과, 특정 업체의 판촉물을 들고 교육청을 찾아가는 것은 과연 같은 행위인가.

 

더 나아가 그 제품이 실제 납품된 뒤 업체로부터 대가까지 받았다면 기자와 판촉사원의 경계는 어디인가?

 

A 씨는 30년 가까이 교육청을 취재를 위한 기자로 드나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교육청 공직자들은 A 씨가 직접 찾아와 제품 설명을 하고 설치를 요구하거나 예산을 확보해보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증언했다.

 

A 씨가 특정 업체 제품을 소개했다는 사실은 본인도 인정하고 있다.

 

업체 측 역시 A 씨를 직원은 아니지만 전남지역을 담당하는 "총판 개념의 협력사"라고 설명했고, 수수료와 관련해서는 서로 협의한다는 취지로 밝혔다.

 

그렇다면 적어도 한 가지 사실 만큼은 분명해진다.

 

A 씨가 단순히 제품을 우연히 소개한 사람인지, 아니면 특정 업체의 제품 판매를 위해 움직인 영업 관계자였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단순한 개인 영업활동으로 끝나지 않는다.

 

A 씨 스스로 일부 대가 발생 사실을 인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영업 과정에 '언론사 대표' '기자'라는 직업이 함께 사용됐다면, 공공기관 입장에서는 그 자체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통합특별시교육청의 한 간부는 "공무원으로서 그렇게 생각 안하려고 해도 '을' 적인 성격이 있어서, 언론에서 와서 (물건 납품) 얘기를 하면 거절하기가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기자의 직함이 제품 판매에 영향을 미쳤다고 느끼는 공무원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A 씨는 공교롭게도 언론사 두 곳에 소속돼 있다. 

 

한 언론사에 소속돼 있는 일반적인 기자와는 차이가 있다.

 

시민단체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시민모임'이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인한 자료에는 통합특별시교육청 전남청사와 8개 교육지원청, 5개 직속기관에서 확인된 계약금액만 1억5000만 원 상당으로 나타났다.

 

학교 계약은 이 수치에서도 제외됐다.

 

이 자료를 두고 A 씨가 전체 계약을 주선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확인해야 한다.

 

통합특별시교육청은 왜 같은 제품을 선택했는가. 그 당시 꼭 필요한 제품이었나. 누가 처음 제품을 소개했는가. 제품 선정 과정에서 다른 제품과의 비교는 이뤄졌는가. 특정 외부인의 영업활동이 기관의 구매 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공공기관이라면 당연히 답해야 할 질문이다.

 

특히 학교와 교육청에서 집행되는 예산은 개인의 돈이 아니다. 학생과 학부모, 국민이 낸 세금이다.

 

따라서 계약 과정이 적법했다는 설명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적법성과 공정성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수의계약이 법적으로 가능했다고 해서 그 과정까지 설명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이번 논란을 제기한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시민모임'의 자료는 KPI뉴스가 취재한 범위를 넘어선다.

 

시민모임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전남청사 46대 2024만 원, 8개 교육지원청 186대 6622만 원, 5개 직속기관 156대 6611만 원 등 확인된 계약만 1억5000만 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학교 구매 현황까지 포함하면 실제 규모가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며 계약 경위와 업체 선정 과정에 대한 감사를 요구했다.

 

시민단체가 별도로 문제를 제기했고, KBS·연합뉴스·뉴시스 등 10여 개 주요 언론사가 이를 보도했다.

 

그렇다면 이제 교육청이 답할 차례다. 그리고 A 씨에게도 답할 차례다.

 

기자로서 취재를 한 것인가, 영업사업으로서 제품을 판 것인가. 둘 다 했다면 그 경계는 어디였는가.

 

언론사 대표라는 직함으로 얻은 관계와 접근성이 제품 영업에 활용됐다면 그것은 개인의 '부업' 정도로 치부할 수 있는 일인가.

 

한국기자협회 언론윤리헌장이 굳이 '이해상충'을 경계하라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기자는 누구보다 자신이 가진 직함의 무게를 알아야 한다. 또 기자에게 명함은 단순한 신분증이 아니다.

 

취재원이 문을 열어주고, 공직자가 말을 꺼내고, 때로는 조직의 내부 이야기를 들려주는 신뢰의 증표다.

 

그 신뢰를 이용해 물건을 팔고 대가를 받는 순간, 기자와 영업자의 경계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A 씨가 여러 사업과 단체에서 다양한 직함을 갖고 활동해왔다는 사실 자체를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

 

사업을 하는 것도, 봉사활동을 하는 것도, 단체를 운영하는 것도 그 자체로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언론사 대표 즉, 기자라는 직함과 사업적 이해관계가 한 사람 안에서 동시에 작동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중요한 것은 감투의 개수가 아니라 그 감투들이 어떤 순간에 서로의 힘을 보태고 있는가다.

 

기자는 권력을 감시해야지, 자신의 직함을 권력처럼 사용해서는 안 된다.

 

기자는 영업을 위해 취재원을 만나서도 안 되고, 취재를 위해 얻은 신뢰를 영업의 지렛대로 삼아서도 안 된다.

 

적어도 그것이 한국기자협회 언론윤리헌장이 말하는 '이해상충을 경계한다'는 원칙의 의미일 것이다.

 

이번 논란의 본질은 음압변기시스템의 성능이나 가격이 아니다.

 

공공기관의 구매 과정에 외부인의 영업이 어디까지 개입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자'라는 직함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결국 핵심은 간단하다.

 

기자가 취재를 한 것인지, 기자의 이름으로 영업을 한 것인지다.

 

물품을 알선하고 대가까지 받았다면 독자들이 이 둘을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기자의 신뢰가 영업의 수단이 되는 순간, 언론의 신뢰도 함께 무너진다.

 

그리고 그 피해는 결국 언론 전체에 대한 신뢰로 되돌아온다.

 

▲ 광주·전남취재본부 강성명 기자

 

KPI뉴스 / 강성명 기자 name@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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