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美 자동차산업 전설' 아이아코카, 94세로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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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자동차산업 전설' 아이아코카, 94세로 타계

윤흥식 Google구글에서 선호하는 출처로 추가
기사승인 : 2019-07-03 15:07:52
1980년대 경영난 빠진 크라이슬러 회생에 주도적 역할

'미국 자동차 산업의 전설'이자 '경영의 귀재'로 불려온 리 아이아코카 전 크라이슬러 회장이 2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 벨에어의 자택에서 사망했다고 미 CNBC 방송과 워싱턴포스트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향년 94세.


▲  미국 자동차산업의 전설로 불리던 아이아코카가 2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의 저택에서 94살을 일기로 사망했다. 사진은 1989년 2월 크라이슬러의 전년도 4분기 세전 이익을 발표하는 아이아코카.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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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계 이민의 후손으로 1924년 펜실베이니아주 앨런타운에서 태어난 아이아코카는 프린스턴 대학에서 공학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1946년 포드 자동차에 입사해 사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아이아코카는 현대 산업 역사에서 미국 3대 자동차업체 가운데 2곳을 지휘한 경영인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는 1946년 포드에 기능공으로 입사해 자동차 업계와 인연을 맺었다. 곧 판매사원으로 직책을 바꿔 두각을 드러낸 그는 고속 승진을 거듭하며 36세이던 1960년 포드 부회장이자 총지배인이 됐다.

아이아코카는 이후 스포츠카 '머스탱'을 출시했으며 46세이던 1970년 포드 회장 자리에 앉았다. 포드 머스탱은 전 시대를 통틀어 가장 주목을 받는 미국 명품 자동차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아이아코카는 포드 창업자의 손자인 헨리 포드 2세와의 의견 충돌로 1978년 해고되는 굴곡을 겪었다.

그는 해고된 지 몇달 뒤 파산 위기에 몰린 크라이슬러의 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회생을 위해 일부 공장을 폐쇄하고 전 부문에서 정리해고와 임금삭감을 단행했으며 자신도 첫해에 임금을 1달러만 받았다.

아이아코카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 속에 케이카, 미니밴 등을 히트시키며 크라이슬러를 재정난에서 구해냈다. 그는 1980년대 한때 분기당 1억6000만 달러라는 엄청난 적자에 허덕이던 크라이슬러 자동차로 옮겨 정부로부터 구제금융을 끌어들여 회사를 회생시키고 8억 달러가 넘는 구제금융 지원금을 수표로 한꺼번에 갚아 유명해졌다. 크라이슬러의 경영상태는 1980년 17억 달러 적자에서 1984년 24억 달러 흑자로 바뀔 만큼 호전됐다. 

아이아코카는 크라이슬러를 회생시키는 과정에서 자신이 직접 크라이슬러 광고에 출연해 유명 연예인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아이아코카의 1980년대 도발적인 텔레비전 광고는 그 시대를 보낸 미국 소비자들의 뇌리에 선연하게 남아있다. 그는 자서전 '아이아코카'에서 "넘버원이 아니라면 혁신해야 한다"는 소신을 밝힌 바 있다.

미국인들은 아이아코카를 한 시대를 풍미한 경영인을 넘어 도전정신의 화신으로 평가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아이어코카는 자동차 업계에서 거의 누구와도 비교되지 않을 업적을 남겼다"고 평가했다. 일각에서는 아이어코카의 성공 신화를 둘러싸고 마키아벨리처럼 냉정한 장사꾼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KPI뉴스 / 윤흥식 기자 jardin@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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