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존엄사 法공백③] 죽음을 선택할 권리,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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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사 法공백③] 죽음을 선택할 권리,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배지수 기자   한상진 기자 Google구글에서 선호하는 출처로 추가
기사승인 : 2026-05-04 17:18:43
존엄사 첫 법안 2022년 발의 후 폐기...재발의 돼 국회에 계류 중
연명의료 중단 8만1220명 증가세...호스피스 이용률 29.3%에 불과
"대상과 절차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입법 과정에서 이뤄져야 한다"

고령인구가 늘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만큼 '어떻게 죽을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로 떠오른다. 존엄하게 떠날 권리를 원하는 이들은 적잖다. 하지만 아직 제도는 없다. 사회적 합의도 아직 없다. 그 공백을 해외 고액 프로그램이 채운다. 음성적인 불법 시장이 생겨나기도 한다. '초고령사회 대한민국'의 초입에서 존엄사 이슈를 추적했다.

20대 정 모 씨는 원래 존엄사에 반대하는 쪽이었다. 생각이 바뀐 건 다친 이후부터다. 친구들과 수영장에 갔다가 미끄럼틀에서 크게 다쳤다. 머리를 부딪혀 사지마비 판정을 받았다. 

 

손가락을 굽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자, 그는 존엄사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정 씨는 "비슷한 상황을 겪지 않고서는 그 사람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며 "나아질 가능성이 전혀 없는 상태로 평생을 살아야 할지 고민했다.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정 씨의 고민은 개인의 선택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가 죽음을 어떻게 제도화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현재 국내에서 허용되는 것은 연명의료 중단에 한정되며, 환자의 요청에 따라 의사가 사망을 돕는 '조력존엄사(의사조력자살)'는 합법화되지 않은 상태다.

 

▲ 경기 고양시 국립암센터 호스피스 병동 모습. [뉴시스]

 

존엄사를 둘러싼 논쟁은 찬반 구도로 단순화되기 쉽다. 하지만 정작 제도의 수준을 놓고 보면, 양측 모두 '지금 상태로는 부족하다'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다.

 

현재 존엄사 제도 관련 입법은 제대로 된 법률검토도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4일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첫 조력존엄사 허용 법안은 2022년 발의됐다. 말기 환자가 보건복지부 산하 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조력 존엄사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당시에는 천주교와 대한의사협회의 반대로 논의가 중단됐고 21대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폐기됐다. 그러나 2024년 22대 국회 출범과 동시에 다시 발의돼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런 사이 연명의료 중단을 선택하는 환자는 빠르게 늘고 있다. 연명의료 중단 건수는 2018년 3만1000건에서 지난해 8만1220명으로 증가했다. 대조적으로 말기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호스피스 완화의료 이용률 지난해의 경우 29.3%(2만3816명 이용)에 그쳤다. 정부는 2028년까지 이용률을 50%로 끌어올리겠다는 방침이지만, 2023년 33%였던 것에서 되레 떨어졌다.

 

이는 환자들이 제도적 선택지 속에서 충분한 돌봄을 받지 못한 채, 소극적 방식의 '연명의료 중단'으로 몰리고 있음을 시사한다.

 

존엄사 찬성 측은 이 공백이 환자의 선택권을 침해한다고 본다. 최다혜 한국존엄사협회 회장은 "통증이 너무 심한 암 환자가 창문에서 뛰어내리는 것밖에 없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런 분들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여 안전하게 의료적 대안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정 씨는 "시간이 오래 걸릴 순 있겠지만, 존엄사 제도는 결국 정착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비판하는 사람들, 추진하는 의원들, 저처럼 희망하는 사람들. 그 모든 게 한 과정 속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결국 죽음에 대한 환자들의 권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존엄사를 반대하는 허대석 서울대 의과대학 명예교수도 제도 공백에 공감한다. "임종기 환자에게만 적용되는 우리나라 연명의료결정법은 세계에서 가장 제한적인 수준"이라는 것이다. 

 

허 교수는 "존엄사(의사조력자살)를 합법화하면 자살률이 세계 최고 수준인 나라에서 현대판 고려장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도 "말기 환자와 요양병원 치매 환자까지 (연명의료결정법 적용을) 확장하고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강화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경제적 부담이나 가족의 압박이 환자의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제도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등 관련 단체 또한 존엄사 입법에는 반대하면서 "생애말기 돌봄 제도의 확대와 정착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도 "의사조력자살 입법화보다 양질의 생애말기 돌봄 환경 조성이 먼저"라고 말했다. 

 

결국 풀어야 할 숙제는 '제도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다. 박지용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국 오리건주처럼 질환의 종류와 사망 예상 시점을 미리 정해놓는 방식, 네덜란드처럼 환자가 견딜 수 없는 극심한 고통을 의사가 인정하면 허용하는 방식 등이 있다"며 "대상과 절차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입법 과정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찬성 측 활동가들은 현재 국회에 발의된 법안으로도 제도 공백을 완전히 메울 수 없다고 주장한다. 2년간 50여 명을 상담한 존엄사 활동가 케빈 씨는 "당장 죽도록 아픈 사람한테 위원회를 꾸리고 심의할 동안 기다리라는 것은 환자의 고통을 헤아리지 못한 소리"라고 했다.

 

쟁점은 찬반 이분법이 아니다. 죽음의 선택을 어디까지 제도 안으로 끌어들일 것인가의 문제다.

 


 

KPI뉴스 / 배지수·한상진 기자 didyou@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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