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 음식에 대한 높아진 관심…기록 많지 않아
육즙 섭취 문제로 신하들과 맞선 실록 기록 눈길
유배지 영월에서는 어수리 맛봤을 것으로 여겨져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가 국가유산진흥원과 함께 27일부터 내달 3일까지 경복궁 생과방(生果房)에서 '유주(幼主), 생과방의 봄' 행사를 연다고 16일 밝혔다.
유주는 어린 임금을 말한다. 생과방은 조선시대 궁궐의 부엌 공간 중 하나다. 떡, 전통 과자인 다식(茶食), 죽, 미음 같은 별식(別食)을 이곳에서 만들었다. 생물방, 생것방으로도 불렸다.
행사는 조선의 어린 군주였던 단종 이야기를 매개로 해서 진행된다. 단종의 삶은 근래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이하 '왕사남')가 흥행하면서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그러면서 영화 속 단종의 음식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하지만 관련 기록이 많지 않아 세세한 내용은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 |
| ▲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음식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단종(왼쪽, 박지훈 분)과 엄흥도(오른쪽, 유해진 분). [쇼박스] |
영화의 배경인 강원도 영월로 유배되기 전엔 어땠을까. 조선 국왕은 통상적으로 1일 평균 5회 식사를 했다. 그중 2회차인 아침 수라(오전 10시)와 4회차인 저녁 수라(오후 5시) 때 국왕에게 밥, 국, 반찬으로 구성된 수라상을 올렸다. 1·3·5회차에 해당하는 이른 아침, 점심, 취침 전에는 주로 죽이나 면을 준비했다.
수라상 하면 열두 가지 반찬으로 이뤄진 12첩 반상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지만, 12첩 반상은 조선 말기인 고종·순종 때 궁궐에 있었던 상궁들이 말한 수라상 모습이다. 그 이전에는 반찬을 7가지 정도만 올렸을 것으로 얘기된다.
왕위에 있을 때 단종의 식생활도 이런 틀에 따라 이뤄졌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생과방의 다양한 별식도 음미했을 것이다. 다만 국왕 각각의 건강 상태, 취향 등에 따라 수라상 구성이나 식사 횟수 등은 바뀔 수 있었음을 함께 기억할 필요가 있다.
재위 기간에 단종의 먹을거리와 관련해 눈길을 끄는 것은 육즙 관련 기록이다. 육즙은 쇠고기를 다져 삶은 다음 즙만 꼭 짜낸 국물 음식을 말한다.
이 시기에 조선은 농업에서 중요한 생산 수단인 소의 도축을 법으로 금지했다. 예외 조항을 활용해 쇠고기를 매매할 수 있기는 했지만, 쇠고기는 귀한 음식이었다. 육즙은 그러한 쇠고기의 정수를 추출한 것으로 회복기 환자나 노인에게 알맞다고 여겨진 보양식이었다.
조선왕조실록(이하 실록)에는 단종과 신하들이 육즙 섭취를 놓고 줄다리기하는 풍경이 기록돼 있다. 단종 즉위 두 달 후인 1452년 7월 6일 중신들이 단종에게 육즙을 섭취할 것을 청했다. 단종이 어리고 혈기가 충실하지 못하며 구역질 증세가 있으니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는 단종의 부친 문종의 삼년상 기간이었다. 유교 예법에 따르면 상주는 부모의 삼년상을 치르는 중에는 고기를 먹을 수 없다. 그러나 중신들은 단종의 할아버지 세종이 '상중이라도 병이 있으면 육즙을 올릴 수 있다'고 했다며 육즙을 권했다. 단종은 거부했다. 구역질 증세는 본래 있었던 것인데 그게 어떻게 고기반찬 없이 밥을 먹어서 생긴 것이겠냐고 반박했다.
그러자 종친들도 나섰다. 6일 후인 그달 12일 단종의 작은할아버지인 효령대군(세종의 둘째 형), 수양대군(훗날의 세조)과 금성대군을 비롯한 단종의 숙부들이 중신들과 함께 단종에게 육즙을 권했다. 단종은 이번에도 거부했다. 병이 없는데 어떻게 고기를 먹겠느냐는 것이었다.
종친들은 '연장자인 숙부들이 강권하면 먹어도 괜찮다'며 단종을 압박했다. 그래도 단종이 받아들이지 않자, 수양대군이 육즙과 말린 고기를 갖춘 신하를 대동하고 단종을 다시 압박했다. 단종은 자신에게 병이 없지만 여러 사람이 청하는 것에 쫓겨 육즙을 섭취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뜻을 꺾어야 했다.
이 일은 국왕의 건강을 염려하는 중신·종친들의 좋은 의도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단종 재위기의 특징을 보여주는 면도 있다. 신하들이 어린 국왕의 뜻을 기어이 꺾고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는 풍경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단종의 할머니나 어머니가 대왕대비나 대비 자격으로 국왕 곁에 있었다면, 신하들이 집단으로 단종에게 가서 육즙을 강권하는 일이 생길 확률은 낮았을 것이다. 하지만 단종의 할머니와 어머니는 세상을 떠난 지 오래였고, 어린 국왕은 외로운 처지였다.
마지못해 섭취해야 했던 육즙이 단종의 신체에는 도움이 됐을지 모르지만 마음에는 상처를 남기지 않았을까? 육즙은 단종에게 잊을 수 없는 음식으로 남았을 것이다.
![]() |
| ▲ 어수리 나물밥. [영월군청] |
왕위를 잃고 노산군으로 강봉된 단종은 1457년(세조 3년) 6월 영월로 유배됐다. 이곳에서 어수리를 맛보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 산나물의 본래 이름은 어누리인데, 백성들이 단종에게 대접한 후 '임금에게 올린 나물'이라는 뜻을 담아 어수리로 부르게 됐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영월에서 단종의 식생활이 어떠했는지는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어렵다. 단종 시신을 수습한 엄흥도의 후손들이 1817년(순조 17년) 초간한 '충의공엄선생실기'에서도 그에 관한 내용을 찾아보기 어렵다. 엄흥도와 단종이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 단종 사후 엄흥도가 어떻게 했는지 등에 대해 상세히 기록한 것과 대조적이다.
음식을 매개로 한 단종과 백성의 접촉 이야기는 설화에서 접할 수 있다. 단종 사후 여러 지역에 단종 설화가 다양하게 전승되는데, 그중에는 '백성들이 준 음식을 먹고 단종이 목숨을 구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표주박에 음식을 담아 단종에게 보낸 백성'에 관한 내용도 있다. 흥미롭지만 확인된 사실이 아닌 설화임을 고려해 읽을 필요가 있다.
실록에는 영월 시절 단종의 식생활과 관련해 세조가 강원도 관찰사에게 지시하는 내용이 나온다. 단종이 영월에 유배된 바로 그달, 세조는 '노산군에게 사철 과실을 따는 대로 바치고 거처 뒤쪽 울타리 안이나 밭에 수박, 참외, 채소 따위를 많이 심어 가꿔 올리게 하라'고 지시했다.
왕위를 뺏고 쫓아낸 조카에 대한 세조 나름의 배려였을까? 그로부터 넉 달 후 단종은 목숨을 잃었고, 강원도 관찰사는 이 지시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게 된다.
KPI뉴스 /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저작권자ⓒ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