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AI 패권전쟁과 한국①] 한국경제 자체가 되어버린 '삼전·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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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패권전쟁과 한국①] 한국경제 자체가 되어버린 '삼전·닉스'

유충현 기자   배지수 기자
기사승인 : 2026-06-15 11:21:59
AI 연산하는 GPU, 메모리반도체 전송 속도가 성능 좌우
글로벌 빅테크 'AI 설비전쟁' 자금…韓 반도체 제조사로
호황·불황 반복 '사이클 산업'에서 '선수주·후증설' 구조로
호황 지속가능성은 '양갈래길'…국가전략적 대응 움직임

1983년 2월 8일,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은 도쿄에서 반도체 사업 진출을 선언했다. 주변 반응은 싸늘했다. 당시 삼성은 가전에서도 금성사(현 LG)에 뒤처져 있었다. '3년 안에 실패할 것'이라는 냉소가 나왔다. 이 회장은 반대를 무릅쓰고 도전을 감행했다.

 

SK하이닉스의 전신인 현대전자도 같은 해 출범해 뒤를 따랐다. 이후 40년 동안 두 회사는 혹독한 사이클을 버텼다. 공급 과잉으로 D램 가격이 폭락하면 함께 적자를 냈고, 회복이 오면 다시 증설 경쟁을 벌였다. 그 사이에 일본 기업들이 하나둘 시장을 떠났고, 독일 키몬다가 파산했지만 두 회사는 버텼다.

 

두 회사가 택한 전략은 불황에도 투자를 멈추지 않는 것이었다. 경쟁사들이 적자를 이유로 감산할 때, 두 회사는 설비와 연구개발에 돈을 댔다. 그렇게 격차가 벌어졌다. 2013년, SK하이닉스가 세계 최초로 HBM(고대역폭메모리)을 개발했고, 삼성전자도 곧 시장에 뛰어들었다. 값은 비싼데 수요가 불분명한 시장이었다. 그런데도 쌓아 올린 기술이 10년 뒤 'AI 혁명'이라는 대운을 만났다.

 

▲ 삼성전자 DS부문(반도체 총괄 부서)과 SK하이닉스 분기별 영업이익 추이.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

 

1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2026년 1분기 영업이익은 37조6103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05% 늘었다. 4개 분기 연속 사상 최대다. 삼성전자는 57조2000억 원으로 756% 증가했다. 삼성전자의 한 분기 영업이익이 일본 최대 자동차 기업 도요타의 한 해 영업이익보다 많다. 두 회사 분기 영업이익을 합하면 거의 100조 원이다.

 

영업이익률은 더 놀랍다. SK하이닉스의 1분기 영업이익률은 72%였다. 삼성전자 스마트폰·가전 부문(DX부문)의 같은 기간 영업이익률이 5.6%, 현대자동차가 5.5%, 기아가 7.5%였다. 제조업에서 매출의 72%가 이익으로 남는다는 것은 전례 없는 수준이다. 더군다나 이게 한 해 반짝하는 일회성 이익도 아니다. 증권가의 영업이익 전망치는 갈수록 높아진다. KB증권은 2분기 삼성전자 영업이익을 90조 원, SK하이닉스를 69조 원으로 추정했다.

 

메모리 반도체는 오랫동안 경기순환 산업이었다. 수요가 늘면 증설하고, 공급이 넘치면 가격이 폭락하는 2~3년 주기가 반복됐다. '선(先)증설, 후(後)수주' 형태로 운영할 수밖에 없었던 탓이다. 그런데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그 구조가 바뀌어 버렸다. AI가 작동하는 방식 때문이다. AI 연산을 처리하는 GPU가 아무리 좋아도 데이터를 빠르게 공급하는 메모리가 없다면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셰프가 아무리 뛰어나도 조수가 느리면 주문이 밀리는 것과 같다. 

 

이때 필요한 것이 HBM이다. 메모리 칩을 수직으로 쌓아 GPU 바로 옆에 붙인 구조로 전송 속도를 수십 배 높였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올해 기준 HBM 시장 점유율은 SK하이닉스 50%(매출 기준), 삼성 29%, 마이크론 21%다. 세계에서 단 세 기업만 만드는 물건이다.


▲ 국내 주요 제조업체 2026년 1분기 영업이익률 비교.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 

 

구글·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메타 같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AI 설비전쟁'을 벌이면서 HBM 수요가 폭발했다. 구글이 데이터센터를 늘리면 마이크로소프트도 늘려야 하고, 메타가 GPU를 확보하면 아마존도 확보해야 한다. 뒤처지면 AI 서비스 경쟁에서 밀린다는 공포가 투자를 부른다. 4대 빅테크의 올해 AI 인프라 설비투자(CAPEX) 합산은 7250억 달러(약 110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 투자금 상당 부분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 흘러드는 구조다. HBM 생산에 설비를 집중하자 범용 D램 공급이 줄면서 범용 D램 가격 상승 효과까지 겹쳤다.

 

두 회사의 협상력도 한층 올라갔다. 빅테크 입장에선 선금을 내고 물량을 미리 확보하는 전략이 유리해졌다. 물량을 확보하려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잘 보여야 한다. 두 회사가 이제 '슈퍼 을(乙)'이 된 것이다. 사이클을 만들었던 '선증설, 후수주' 구조는 '선수주, 후증설'로 뒤집혔다. 삼성전자는 1분기 컨퍼런스콜에서 "고객사들이 중장기 물량 확보를 요청해 왔으며, 이미 일부 고객사와 계약을 완료한 상태"라고 밝혔다. 노무라증권은 "이 사업 모델이 자리잡는다면 메모리 업체의 높은 수익성이 중장기적으로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금은 AI혁명에서 촉발된 변화가 한국 경제 전체를 바꾸고 있는 국면이다. 올해 5월 반도체가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2.4%까지 치솟았다. 2023년 초만 해도 전체 수출에서 12%에서 19% 사이를 오가던 것이 3년 만에 세 배 이상으로 뛰었다. 국내 증시에서 두 회사가 시가총액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의 50%를 넘어섰다. 

 

국가 재정에 대한 기여도 점점 커지고 있다. 임재균 KB증권 연구원은 두 회사가 올해 실적 기준으로 내년에 납부할 법인세가 합산 125조 원 에 이를 수 있다고 추산했다. 지난해 대한민국 국세수입액이 374조 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3분의 1에 달하는 규모다. AI혁명이 부른 메모리 반도체 호황 속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한국경제 자체'가 되어가는 흐름이다.

 

▲ 전체 수출액, 반도체 수출액, 전체 수출액 대비 반도체 비중 월별 추이. [산업통상자원부]  

 

반도체 호황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에 대해선 전망이 갈린다. 단기적으로는 기세가 이어질 것이란 시각이 많다. 삼성전자는 분기보고서에서 "에이전틱 AI 확산이 예상보다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며 서버 메모리 수요의 가파른 증가를 전망했다.글로벌 금융기관 UBS는 AI 인프라 투자 확대로 메모리 공급 부족이 적어도 2028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경계론도 있다. 삼성전자의 직전 반도체 부문 사장을 지낸 경계현 상근고문은 지난달 한국공학한림원 포럼에서 "중국 기업이 공격적으로 생산능력을 확장하고 있다"며 "내년 하반기 이후로 시장이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 업체가 범용 D램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하면, 장기적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 파이가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단지 두 회사의 문제가 아니라 국운이 걸린 문제가 되면서, 정부도 AI 시대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한 전략적 구상을 시작됐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최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린 '프로젝트 트리니티' 구상이 대표적이다. '반도체', '데이터센터', '피지컬 AI' 세 축을 하나의 구조로 묶으려는 시도다. 한국을 세계 AI 공급망의 핵심 거점으로 만들자는 개념이다.

 

김 실장은 "한국은 반도체, 전력 인프라, 첨단 제조를 한꺼번에 갖춘 흔치 않은 나라"라며 "이 셋이 맞물려 순환고리가 돌기 시작하면 한국은 단순히 부품을 대주는 나라가 아니라 인공지능 공급망 전체를 떠받치는 거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KPI뉴스 / 유충현·배지수 기자 babybug@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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