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남인복의 타박타박 지구촌] 시간 여행자 돼 마야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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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인복의 타박타박 지구촌] 시간 여행자 돼 마야를 보다

UPI뉴스
기사승인 : 2019-06-15 10:20:44
- 과테말라 세묵 참페이 그리고 티칼

우리는 일상에 지쳤을 때 여행을 꿈꾸곤 한다. 그냥 떨치고 나서면 다 괜찮아질 것 같아서다. 그러나 세상 일이 마음 먹었다고 다 할 수 있던가. 그동안 이런저런 이유를 만들어 여러 곳을 다녔다. 쉽게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그마한 위로가 되길 바라면서 여행지에 대한 기억을 펼쳐놓으려 한다. 새삼스런 설렘에 나 자신 다시 길 위로 나설지도 모르겠다.

여행은 재미있는 책에 빠져드는 것과 같다. 다음 얘기가 궁금해 밤 새워 계속 책장을 넘기듯이 떠도는 일정에 몸은 지쳐가도 또 다른 자연과 사람들이 전해줄 이야기를 생각하면 걸음을 멈출 수 없다. 그래서 때 묻지 않은 청정 계곡을 만나 잠깐 숨이 멈춰지듯 홀리기도 하고, 세월의 더께가 쌓인 유적지에서 옛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착각에 빠지게도 된다. 과테말라 내륙에서 만난 세묵 참페이(Semuc Champey) 계곡과 마야 문명의 찬란했던 흔적을 간직한 티칼(Tikal)이 그랬다.

▲ 세묵 참페이 계곡 모습 [셔터스톡]


산간 마을 란킨 거쳐 청정 계곡에 가다


과테말라의 내륙 중심부 깊은 산속에 있는 란킨(Lanquin)은 험준한 산들에 둘러싸인 마을로 규모는 작지만 해마다 많은 여행자가 찾는다. 마야어로 ‘성스러운 물’을 뜻하는 세묵 참페이로 가기 위해서다.


안티구아에서 란킨까지 가는 길은 미리 주의를 들은 만큼 웬만큼 각오하고 나섰는데도 역시 고되다. 우선 차량이 편치 않다. 작은 승합차에 보조 좌석까지 펴서 사람들을 앉혔다. 2시간 넘게 달린 뒤 코반(Coban)이라는 도시에 도착해 잠깐 숨을 돌린다. 그곳에는 제법 큰 현대식 쇼핑몰이 있어 갖가지 음식을 종류별로 팔고 있고, 맥도널드 같은 패밀리 레스토랑도 눈에 띄었다. 란킨 주민들이 필요한 생필품을 사러 들르는 곳이기도 하다. 다시 출발할 때 낯선 사람이 올라타기에 머리를 갸웃했는데, 우리 일행이 머물 숙소의 주인이었다. 장 보러 나왔던 길이라며 함께 돌아가자고 한다. 

 
란킨은 전형적인 산골 마을로 비탈을 따라 이어진 골목길에 집들이 옹기종기 펼쳐져 있다. 곳곳을 들여다보니 커피와 차를 파는 곳도 있다. 그러나 전력 사정이 좋지 않은 듯 시원한 생수나 아이스커피를 기대하긴 어렵다. 숙소에서는 자가발전을 하는지 그럭저럭 늦은 시간까지 불을 밝힐 수 있다. 대부분 식당을 겸하고 있어 숙식을 함께 제공한다. 


다음날 세묵 참페이로 가는 길은 더욱더 험하다. 소형 트럭의 짐칸에 올라타 앉지도 못하고 서서 간다. 대략 6, 7km 떨어져 있다는데, 거의 40분이나 걸렸다. 울퉁불퉁한 산길을 덜컹거리며 가는데, 자칫 차 밖으로 떨어질까 애태우며 난간을 꼭 잡았다. 그래도 달리는 차를 뒤쫓아 뛰는 동네 어린이들의 순진한 웃음에 손을 마주 흔들다 보면 이것도 남다른 여행의 맛이겠거니 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입구를 통과하니 평범한 산길이 펼쳐져 별다른 감흥은 없다. 그러나 1시간 정도 산길을 올라가 전망대에 서니 그야말로 눈앞에 별천지가 전개된다. 좁은 계곡 사이에 옥빛 물을 품은 카아본(Cahabón)강이 흐르고 있다. 양쪽의 숲과 대비되는 물 색깔이 이름처럼 ‘성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계단같이 층을 이룬 바위를 거치며 흐르는데 군데군데 저절로 수영장이 만들어져 있다. 물은 깊지 않아 테마파크처럼 바위 계단을 미끄럼틀 삼아 놀 수도 있다. 울창한 숲은 방패가 되어 안전하게 지켜주고, 바람만이 자유롭게 넘나들 뿐이다. 맑고 예쁜 색깔의 물에 몸을 담그면 세상의 먼지가 다 씻길 듯하다. 


▲ 세묵 참페이 계곡


▲ 세묵 참페이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


물놀이와 함께 강을 따라 튜브를 타고 내려오는 리버 튜빙을 즐기거나 그루타스 데 란킨(Grutas de Lanquin)이라는 동굴 여행에 도전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동굴 여행은 어두운 곳에서 촛불을 든 채 움직여야 하고, 수영복에 구명조끼를 착용했다고 해도 때때로 발이 닿지 않아 섬뜩함을 느꼈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수영을 못하는 사람은 피하는 게 좋다.

열대우림 속 유적지의 신비로운 분위기 


중앙아메리카에 있는 마야 문명 유적지로는 멕시코의 팔렌케, 온두라스의 코판, 과테말라의 티칼을 꼽는데 그중에서도 티칼은 규모가 가장 크고 오래된 유적지로 여겨지고 있다. 티칼은 플로레스(Flores)를 거쳐서 간다. 이곳은 북부 페텐주에 있는 호수 페텐이트사에 떠 있는 섬 도시로 본토와 짧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섬에 있는 곳은 구시가지로 골목골목 예쁘게 색칠한 집들과 식민지 시대 양식의 건물들도 있어 그런대로 볼만하다. 호수와 면한 곳에는 주로 식당과 카페가 있어 늦은 밤까지 관광객을 부르고 있다. 


이곳에서 티칼까진 1시간 정도 걸린다. 티칼 유적들은 울창한 열대우림 속에 흩어져 있어 3시간 이상 들여야 돌아볼 수 있다. 대중교통이 좋은 편은 아니어서 일출이나 일몰을 보려면 여행사 투어를 이용해야 한다. 


이른 아침 유적지로 들어가니 신선한 공기에 기분이 상쾌하다. 걷다 보니 나뭇가지에 북슬북슬한 털실 꾸러미가 매달린 듯 독특하게 생긴 세이바(Ceiba)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마야인은 생명의 나무로 귀하게 여겼다고 하는데, 현재 과테말라의 국가 수(樹)로 정해져 있다.


▲ 티칼의 아크로폴리스 주변 모습


티칼은 다른 마야 도시보다 일찍 기원전 4세기 무렵 세워졌으며, 서기 200년부터 900년 사이 고전 말기에 번성을 누렸다고 한다. 이곳은 당시 아메리카 대륙에서 달력, 천문학, 문자, 건축, 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가장 발달한 도시로 마야 문명의 중심 도시였다. 최전성기였던 700년 무렵에는 수만 명의 인구를 자랑했고 멕시코의 테우티우아칸과 교류도 한 듯하다. 그러다가 10세기쯤 완전히 몰락한 뒤 잊힌 채 있다가 17세기 스페인 선교사에 의해 우연히 발견됨으로써 다시 세상에 등장했다.


유적의 중심부에는 아크로폴리스(궁전이나 신전이 모여 있는 곳)라고 부르는 곳에 석조 건축물과 왕의 고분들이 흩어져 있고, 주변에 모두 5개의 피라미드 형태 신전이 있다. 제1호 신전(Templo I)은 대략 서기 732년에 완성된 피라미드로 높이 47m에 석회암 계단이 있다. 그 아래에선 마야 왕의 유해와 부장품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또 신전 상부의 문틀에 정교한 재규어 조각이 새겨져 있었기에 ‘재규어 신전’이라고도 부른다. 제4호 신전(Templo IV)은 이곳에서 가장 높은 65m로 서기 740년 무렵에 지어졌다. 중앙에 있는 아크로폴리스는 처음에는 종교시설로 생각했으나 뒤에 상류계급의 주거지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곳은 1950년대에 정부에 의해 티칼 국립공원으로 지정했으며, 1979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제2호 신전은 위쪽까지 올라갈 수 있다. 옆에 설치된 계단을 조심조심 오른다. 투어에 참여한 일행이 다 오르자 안내자는 편하게 자리를 잡고 앉으라고 한다. 그러더니 눈을 감고 숲이 깨어나는 소리를 들으란다. 해는 아직 숲 위로는 떠오르지 않았다. 뿌연 안개에 덮인 숲을 바라보니 스멀스멀 연기가 피어오르는 듯 신비로운 분위기가 주위를 휩싼다. 숲을 뚫고 튀어나오듯 서 있는 피라미드의 형체가 아슴푸레하다.


어디선지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정말 잠을 깨어 기지개하는 듯하다. 그 소리에 약간은 으스스해진다.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침범한 인간의 냄새를 맡은 것일까. 왠지 스치는 바람에 우듬지들이 파도가 밀리듯 한 방향으로 눕는다. 그 밑을 짐승이 지나가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가장 부지런한 동물은 새가 아니던가. 그러고 보니 새 소리는 좀 더 기운차게 들린다. 안내인은 나직한 목소리로 고대인이 살았던 당시를 떠올리며 숲속 모든 것과 대화를 나누라고 주문한다. 서서히 해가 숲 위로 떠 오르자 날씨는 금방 더워진다. 강제로 침묵 수행을 했던 사람들도 지루함을 떨치듯 하나둘 일어나 움직인다. 그 옛날 마야인도 이런 소리와 함께 아침을 시작했을까. 옛 문명의 유적지에서 부서진 돌 조각 옆에 앉아 과거에 있었던 사연을 엿듣듯 귀 기울여 보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숲속 유적지는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자며 부르고 있다. 시간여행을 하려는 듯 발걸음은 자꾸 과거로 내디디려 하지만, 현재의 시간 속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 이제 과테말라를 떠나야 하기에….


글·사진 남인복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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