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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산업화의 상징, 봉제거리를 가다

UPI뉴스
기사승인 : 2019-03-03 16:35:22
창신4가 길은 거리 전체가 박물관

대림동이 중국인의 거리라면 동대문 창신동 일대는 네팔인들의 거리다. 동대문역 3번 출구 앞에 서 있으면 인도와 네팔에서 온 듯한 외모의 외국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커리나 탄두리치킨, 라씨가 주 메뉴인 네팔 음식 거리도 근처에 있다. 한번쯤 오고 싶었던 거리다. 우선 좀 걷다가 배가 고프면 네팔 식당 거리를 찾아가도 좋겠다고 생각하며 창신 골목시장 쪽으로 접어들었다. 


골목길을 따라 구불구불 만들어져서 ‘골목 시장’인가 보다. 유독 빵집과 반찬 가게가 많다. 텔레비전에 소개된 적이 있는 매운 족발집도 보인다. 골목 시장을 통과해 주택가로 들어섰는데 길이 막혀 있다. 폐건축 자재를 실은 대형 트럭과 맞은 편에서 오던 승용차가 멈춰 서서 길을 막고 있었다. 트럭과 승용차가 비껴갈 공간이 없다. 승용차는 트럭 옆길로 지나가보려다 포기한다. 결국 승용차가 후진해서 트럭이 지나갈 길을 만들어주고서야 막힌 길이 열렸다. 

 

▲ 창신동 봉제거리 봉제공장 [정병혁 기자]

유리문 안으로 색색의 재봉틀 실이 쌓인 가게가 보였다. 바로 옆은 지물포였다. ‘지물포’ 간판은 참 오랜만이다. 이른바 인테리어 업체에서 집 수리 전체를 맡게 되면서 도배, 장판을 취급하는 지물포가 점차 사라진 것 같다. 공업용 재봉틀이 길 가장자리에 놓여 있다. 재봉틀을 제작하고 수리하는 가게다. 집 앞에 원단 자투리를 담은 쓰레기 봉투가 쌓여 있다. 오토바이도 흔하다. 좁은 골목이나 복잡한 동대문 쇼핑단지를 비집고 다니기엔 오토바이가 좋다. 


창신4가 길은 거리 전체가 박물관이다. 봉제거리 박물관. 서울문화유산으로 선정된 곳이기도 하다. 겉으로 보면 일반 주택처럼 보이지만 대문 앞에 쌓아놓은 원단 두루마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대부분이 봉제 공장들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봉제 공장이 모여 있는 골목이다. 


1950~60년대 전쟁 피란민 등이 이주해 의류를 생산하기 시작한 봉제거리는 1980년대 들어 청계천 평화시장의 봉제공장들이 창신동 주택가로 들어오면서 급격히 규모가 커졌다. 다세대나 다가구주택을 개조한 가내 수공업 형태의 영세한 공장들이 대부분이다. 패턴, 재단, 재봉을 담당하는 소규모 하청공장들에 밀집해 있어서 일감을 나누고 수거하기 쉬웠다. 원단이 이 골목에 들어오면 하루만에 완성품이 되어 동대문 패션타운에 보내졌다. 창신동은 뉴타운으로 개발될 예정이었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2014년 도시 재생 선도지역으로 지정되었다. 봉제거리 박물관도 도시재생 마중물 사업 중 하나다. 


봉제거리를 따라 걷다보면 봉제용어와 봉제인 기억의 벽과 쉼터,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 창신동 봉제공장의 24시간 등의 설명을 볼 수 있다. 길이 끝나는 지점에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이 있다. 

 

▲ 이음피움 봉제역사관 [정병혁 기자]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은 봉제의 역사를 통해 도시의 발전을 돌아보고, 봉제산업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봉제사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봉제의 미래를 전망하기 위해 설립되었다고 한다. 


지하 1층 봉제작업실에 들어서니 두 사람이 ‘시대의 아이콘 의상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었다. 아이콘 의상 키트를 선택해서 가위로 색을 칠하고 가위로 오려붙이는 간단한 체험이다. 단추달기와 컴퓨터 자수기로 이니셜 새기기 체험도 있다. 아이콘 의상만들기 키트 중 ‘몸빼’를 챙겨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갔다. 

 

▲ 이음피움 봉제역사관 [정병혁 기자]

‘바느질 카페’ 소파는 창신동을 마주보고 앉을 수 있게 놓여있다.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산을 따라 지어진 집들을 바라봤다. 집 사이로 채석장 절개지 흔적이 보였다. 카페 창에 적힌 설명에 의하면 창신동 돌산은 1942년 일제강점기 당시 경성부 직영 채석장으로 탈바꿈되어 매일 같이 발파와 석재 채취를 했다고 한다. 조선총독부 건물 석조의 대부분은 여기서 채석하여 일일이 손으로 쪼아 목재처럼 만들어 사용하였다고.


3층 봉제마스터 기념관에는 10인의 봉제인의 가위와 그들의 이야기와 함께 전시하고 있다. 낡은 가위에 한 사람의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봉제마스터들이 직접 제작한 옷들이 빙빙 돌아가는 오브제도 인상적이었다. 2층은 봉제산업의 역사와 창신동 이야기를 사진과 글로 풀어내고 있었다. 이 부분은 도슨트 설명을 들으면 더 좋을 것 같았다. ‘단추가게’는 일종의 기념품 가게다. 서랍 속 예쁜 단추를 살 수 있지만 에코백이나 워크쟈켓을 사서 단추를 골라 달 수도 있다. 봉제의 시작이 단추달기라고 생각해서 이런 체험을 기획했다고. 지금은 에코백과 워크재킷을 팔고 있지만 아이템을 바꿔갈 계획이라고 한다.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을 가려면 이니셜을 새길 셔츠나 4층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텀블러를 챙겨가면 좋다.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서 ‘태극기 만들기 체험’도 준비했다고 한다. 실제로 3.1운동 때 창신동에서 태극기가 만들어졌고 여학생들에 의해 은밀히 배달되었다. 아이들과 함께 체험도 하고 창신동 골목 구경도 하고 골목시장 매운족발이나 네팔 음식을 먹으면 색다른 체험이 되지 않을까. 창신동을 걸을 때, 등 뒤 봄볕이 따스했다.

 

강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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