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원양어선원 유골 국내 이장, 고국의 품에서 영면

  • 맑음인제2.5℃
  • 맑음합천6.5℃
  • 맑음양산시10.1℃
  • 맑음고창9.4℃
  • 구름많음제주14.6℃
  • 맑음춘천1.9℃
  • 맑음김해시9.6℃
  • 맑음영덕9.0℃
  • 맑음의성3.1℃
  • 맑음홍천4.1℃
  • 맑음영광군10.0℃
  • 맑음울산8.9℃
  • 맑음북창원11.2℃
  • 맑음세종6.8℃
  • 맑음수원7.1℃
  • 맑음의령군6.8℃
  • 맑음안동6.5℃
  • 맑음경주시9.6℃
  • 맑음고흥9.8℃
  • 맑음통영10.9℃
  • 맑음속초7.9℃
  • 맑음보령7.6℃
  • 맑음해남12.1℃
  • 맑음거제11.9℃
  • 맑음영주6.9℃
  • 맑음대전6.5℃
  • 맑음완도11.7℃
  • 맑음구미7.8℃
  • 맑음양평7.8℃
  • 맑음광양시9.5℃
  • 맑음산청9.1℃
  • 맑음보성군11.2℃
  • 맑음천안8.4℃
  • 맑음대구9.5℃
  • 맑음서귀포15.3℃
  • 맑음흑산도13.2℃
  • 맑음장흥9.9℃
  • 맑음장수4.9℃
  • 맑음북강릉7.6℃
  • 맑음이천5.9℃
  • 맑음전주7.7℃
  • 맑음동두천℃
  • 맑음인천7.6℃
  • 맑음정읍7.6℃
  • 맑음영천8.3℃
  • 맑음광주10.2℃
  • 맑음철원1.0℃
  • 맑음영월3.7℃
  • 맑음북춘천1.6℃
  • 맑음함양군8.9℃
  • 맑음진도군12.9℃
  • 맑음순창군9.1℃
  • 맑음제천0.8℃
  • 맑음임실7.4℃
  • 맑음부여5.3℃
  • 맑음정선군5.6℃
  • 맑음백령도9.4℃
  • 맑음부안7.8℃
  • 맑음강릉8.7℃
  • 맑음포항10.1℃
  • 맑음창원10.6℃
  • 맑음강진군11.1℃
  • 맑음울릉도11.2℃
  • 맑음성산12.8℃
  • 맑음남해8.9℃
  • 맑음상주8.1℃
  • 맑음서산8.9℃
  • 맑음목포12.8℃
  • 맑음태백3.1℃
  • 맑음남원5.0℃
  • 맑음추풍령7.2℃
  • 맑음봉화5.2℃
  • 맑음홍성8.0℃
  • 맑음강화6.5℃
  • 맑음군산7.2℃
  • 맑음파주3.0℃
  • 맑음밀양10.1℃
  • 맑음여수10.5℃
  • 맑음충주2.5℃
  • 맑음동해9.5℃
  • 맑음대관령1.0℃
  • 맑음거창4.8℃
  • 맑음고창군9.2℃
  • 맑음진주8.4℃
  • 맑음원주4.0℃
  • 맑음순천8.5℃
  • 맑음청송군5.3℃
  • 맑음금산4.7℃
  • 맑음청주8.8℃
  • 맑음북부산10.4℃
  • 맑음울진8.4℃
  • 맑음고산14.6℃
  • 맑음서청주4.9℃
  • 맑음문경7.7℃
  • 맑음부산10.7℃
  • 맑음보은5.2℃
  • 맑음서울6.6℃

원양어선원 유골 국내 이장, 고국의 품에서 영면

UPI뉴스 Google구글에서 선호하는 출처로 추가
기사승인 : 2019-06-19 15:35:55
해외에서 순직한 원양어선원 유골 3위 가족의 품으로


해양수산부


1970~80년대 우리나라 경제역군으로 세계의 바다를 누비다 이역만리에 묻힌 원양어선원 유골 3위가 19일 인천공항을 통해 그리던 고국과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다.

해양수산부는 스페인 라스팔마스와 사모아에 묻혀 있던 원양어선원 유골 3위를 국내로 이장한다고 밝혔다. 유골은 26일 오전 11시 서울역에서 추모행사를 진행한 후에 가족에게 전달된다.

해양수산부는 2002년부터 해외 선원묘지 정비 사업을 통해 스페인 라스팔마스와 테네리페, 사모아 등 7개 나라에 있는 318기의 묘지를 보수하고 현지 한인회 등의 도움을 얻어 관리해 오고 있다.

특히, 2014년부터는 유족이 희망하는 경우 현지 정부와 협의해원양어선원 유골을 국내로 옮겨와 가족에게 전달하는 사업을 추진해 오고 있다. 이 사업으로 올해 3위를 포함해 현재까지 총 31위의 유골을 이장했고, 287위가 해외에 남아 있게 된다.

우리 원양어업은 1957년 시험조사선 ‘지남호’의 출항을 시작으로 오대양에 진출해 외화 획득과 국위 선양, 민간 외교에 기여해 왔다. 1971년 원양수산물의 수출액은 5천 5백만 달러로, 우리나라 총 수출액의 5%를 차지할 만큼 원양어업은 수출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다.

1970년대 후반 들어 연안국의 배타적경제수역 선포와 공해어업 규제 등으로 원양어업의 세력이 점차 약화되기도 했지만, 1977년에는 원양어선 850척에 2만 2천여 명의 어선원이 오대양을 누볐다. 그 중에는 불의의 사고로 순직한 어선원도 있었고, 여러 사정으로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타국 현지에서 운명한 경우도 있었다.

양영진 해양수산부 원양산업과장은 “머나 먼 이국땅에서 고혼이 된 원양어선원의 넋이 편히 잠들 수 있도록 해외 선원 묘지관리를 더욱 철저히 하고, 유골의 국내 이장 사업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겠다.”라고 말했다.

한편, 원양어선원 유골의 국내 이장 사업은 한국원양산업협회가 위탁 받아 수행하고 있으며, 자세한 사항은 협회로 문의하면 된다.


KPI뉴스 / UPI뉴스 기자

[저작권자ⓒ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