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외국어 남용으로 소통 어려운 공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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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 남용으로 소통 어려운 공문서

김들풀
기사승인 : 2020-10-15 10:29:15
[우리말 바르게] ⑦ 외국어 외래어 남용하는 공공언어
무분별한 외국어 사용…국민과 소통 어려워
한글은 우수하다. 일찍이 벽안의 이방인이 알아봤다. 미국인 호머 헐버트가 뉴욕 트리뷴을 통해 한글의 우수성을 알린 게 1889년이다. 헐버트는 "한글은 완벽한 문자"라고 극찬했다. "최소 문자로 최대 표현력을 갖는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한글의 주인'은 그 가치를 망각하고 사는 듯하다. 바른 한글 사용을 선도해야 할 정부부터 그러하다. 정부부처의 공공문서엔 오염된 언어 투성이다. '공문서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우리말을 사용해야 한다'는 국어기본법을 정부가 앞장서 위반하는 꼴이다. 이런 행태가 국민과의 소통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음은 물론이다.

UPI뉴스는 43개 정부 부처의 공공언어 실태를 취재, 분석해 기획보도 [우리말 바르게]를 연재한다.
▲ 강원도가 코로나19 방역관리 체계를 홍보하는 문구. [강원도청 누리집]

"새로운 '옐로카펫'으로 스쿨존 교통사고 제로 도전" "코로나19를 피하는 강원도 여행 클린강원 패스포트"

공기관의 이해하기 어려운 외국어(외래어) 범벅 홍보 문구다. '옐로카펫'이라는 용어와 '클린강원 패스포트'라는 문구가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외국어 공부를 따로 해야 할 판이다.

'옐로카펫(yellow carpet)'은 어린이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기 전 안전한 곳에서 기다리는 곳으로 운전자가 이를 쉽게 알 수 있도록 바닥 또는 벽면을 노랗게 표시하는 교통안전 설치물이다. '클린강원 패스포트'는 방문자가 강원도 내 시설에서 도장 형태의 큐알(QR)코드를 찍으면 위치와 이용 시간 등이 서버에 자동 저장되는 코로나19 관리 기록 체계다.

따라서 '옐로카펫으로 스쿨존 교통사고 제로 도전'은 '새로운 횡단보도 안전공간으로 어린이 보호구역 자동차 무사고 도전'으로, '클린강원 패스포트'는 '깨끗한 강원 여행 증명서'로 대체하면 쉽게 뜻을 알 수 있다.

정부 부처가 국민에게 발표한 공식문서에 등장한 표현들도 외국어를 마구 섞어 쓰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2020년 공공문서 사용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43개 정부 부처가 외국어를 평균 1000어절 당 26개를 사용했다.

해당 보고서는 UPI뉴스와 한국어인공지능학회가 함께 정부 부처·청·위원회 43곳 주요 문서를 수집해 조사, 분석한 공공언어 실태 조사 보고서다.

한글로 표기한 외국어를 많이 쓴 기관은 중소벤처기업부로 1000어절 당 70개를 사용했다 그다음으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51개, 산업통상자원부 49개 순이다. 가장 적게 쓴 기관은 '법무부, 원자력안전위원회, 소방청' 순으로 각각 5개, 6개, 9개다.

공문서에서 폭넓게 사용한 대표적인 단어는 "시스템, 콘텐츠, 글로벌" 등과 '테스트베드, 패스트트랙, 테크비즈, 가이드라인, 라스트마일' 등과 같은 혼합어 사용도 많았다.

"인권정책 라운드테이블인권정책 연석회의" "특허와 함께 포괄적으로 라이선스하는 행위 등" "사업장 노사갈등 모니터링 맞춤형 해결 지원" 등 문장 곳곳에서 외국어가 등장하고 있다.

굳이 쓰지 않아도 되는 외국어를 쓰는 것은 의사소통을 어렵게 만든다. 세계화 시대에 외국어를 쓰는 일이 증가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하지만 이미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우리말을 두고 의미가 잘 통하지 않고 생소하게 느껴지는 외국어를 일부러 가져다가 쓸 필요까지는 없다. 더욱이 공적으로 의사소통할 때에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누구든지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우리말을 사용해야 한다.

'트라우마(trauma)'라는 단어는 '과거 충격적인 사건의 경험이 현재까지 정신적 고통과 상처로 남아 스트레스가 지속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이 표현은 신문이나 방송 같은 대중매체에 종종 등장하지만 우리 국민 모두가 친숙하게 그 의미를 알고 있다고 하기 어렵다. 그냥 이 말을 '사고후유장애' 또는 '사고후유정신장애'로 쓰면 될 일이다.

국립국어원은 어려운 외국어 대신 뜻이 분명하고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로 다듬어 쓰면 좋을 순화어를 권장하고 있다.

가드레일(guard-rail) → 보호 난간, 뉴스레터(news letter) → 소식지, 롤모델(Role model) → 본보기상, 멘토(Mentor) → (인생)길잡이, 보이스피싱(voice phishing) → (음성)사기전화, 시너지(synergy) 효과 → 상승효과, 와이파이(Wi-Fi) → 근거리무선망, 체크리스트(check list) → 점검표, 팝업창(pop-up 窓) → 알림창, 홈페이지(homepage) → 누리집 등이다.

KPI뉴스 / 김들풀 IT과학 전문기자 itnews@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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