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강준만의 직설] "너는 어느 편이냐"고 묻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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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직설] "너는 어느 편이냐"고 묻지 말라

UPI뉴스
기사승인 : 2021-09-02 15:51:45
무주택자에게 고통 안겨준 세력이 진보 자처하는 상황
'자칭 진보' 비판하면 곧 보수라는 단세포적 발상 횡행
진보·보수 이분법은 '이권 쟁탈전' 정당화 위한 도구일 뿐

"'동인(東人)이라 하여서 어찌 다 소인(小人)이며 서인(西人)이라 하여서 어찌 다 군자(君子)랴'고 율곡은 울었다지만 오늘날 좌라 하여 모두가 극렬분자일 리가 없고 우라 하여 모두가 반동분자일 리가 없는데 좌우 양 노선이 달랐기로 그렇게도 불공대천(不共戴天)의 구수(仇讐)가 되어야 할 까닭이 어째서 항상 상대편만의 책임이라고 하는지 한심하며 조선민족이 이렇게도 도량이 좁은 민족인가를 슬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으로부터 75년전 좌우(左右) 갈등과 투쟁이 격렬했던 상황에서 중간파 언론인이라고 할 수 있는 오기영이 '신천지'(1946년 11월호)라는 잡지에 쓴 "경애하는 지도자와 인민에게 호소함"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한 말이다.

그는 좌우는 싸움으로 세월을 허비하고 있다고 개탄하면서 자신에게 가해진 좌우 양측으로부터의 공격에 대한 이야기도 덧붙였다. "나는 실상 아직 '공산당선언'조차 똑똑히 읽어본 일이 없는 사람인데 공산주의자라는 말을 우익측 지인(知人)으로부터 듣는 이유는 우익 정당에 가입하지 않은 것과 우익의 비(非)를 비라고 한 까닭 이외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또는 나를 기회주의자라, 심하게는 반동분자라는 비난을 좌익측 지인으로부터 많이 듣고 있는데 이것도 내가 좌익 정당에 가입하지 않은 것과 좌익의 비를 비라고 한 까닭 이외에 아무 이유도 없습니다."

우리는 남북분단의 이유에 대해 늘 '외세의 개입'이라는 모범답안을 준비해놓고 있지만, 3년간의 해방정국을 좌우 갈등과 투쟁 대신 타협과 협력으로 보냈더라면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점에 대해선 잘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남탓'을 하는 게 마음이 편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겠지만, 그 덕분에 우리는 그 어떤 역사적 교훈과 그에 따른 후세 교육을 제대로 챙기질 못했다.

그래서 해방정국의 갈등과 투쟁은 그 내용과 양상만 달리 한 채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물리적 폭력은 없다는 진보는 이루었지만, 편을 갈라 상대편을 적대하고 증오하는 건 별로 달라진 게 없다. 해방정국에서도 그랬듯이, 늘 그런 편가르기에 동원되는 명분은 '정의'와 '이념'이다. 자기편이 정권을 잡아 더 많은 이익을 누려보겠다는 욕심이 클수록 그걸 감추기 위한 수사(修辭)는 더욱 화려하고 웅장해진다. 이런 사람들은 끊임없이 묻는다. "너는 어느 편이냐"고.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은 무소속으로 살아가면 안되는 건가?

지난해 8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시무 7조'라는 글을 올린 조은산이 최근 출간한 동명의 책을 읽으면서 해본 생각이다. 이 글은 43만 개의 동의와 12만 개의 댓글, 260회의 언론 보도로 세상에 알려지면서 그를 그야말로 혜성처럼 나타난 명 논객으로 만들어 주었다.

"나는 39세 애 아빠다"라는 글로 시작하는 이 책에서 내가 가장 눈여겨 본 글은 세 번째로 등장하는 "너는 어느 편이냐"라는 글이었다. 그가 가장 곤혹스러워 한 질문이었을 게다. 흘러 넘치는 정파적 열정을 주체할 길이 없는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곤 일반적인 보통사람들은 그런 편가르기 없이 세상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공론장에 나서는 사람들에겐 "너는 어느 편이냐"라는 질문이나 추궁이 암묵적인 형식으로나마 끊임없이 던져진다. 그러니 곤혹스러울 수밖에.

그 편가르기가 평등이라는 가치의 실천에 얼마나 적극적이냐에 따라 '진보'와 '보수'로 나누는 것이라면 그건 정당민주주의의 원리에 부합하는 것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것은 그런 편가르기가 아니다. 예컨대,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무주택자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준 세력이 진보를 자처하는 상황에서 그들의 실정을 비판하면 보수인가? 그게 아니잖은가. 그런데 그런 '자칭 진보'를 비판하면 곧 보수라는 단세포적 발상이 횡행하고 있다. 이는 기존 편가르기가 '이권 쟁탈전'으로 타락했음을 시사해주는 건 아닐까?

조은산은 자신이 "과거 노무현을 지지했던 진보도 보수도 아닌 자"로 판명되었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그럼에도 "너는 어느 편이냐"라는 추궁에 질린 탓인지 "내가 진보인지 보수인지, 차라리 누가 대신 나를 정의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진보·보수라는 이분법은 이론으로만 의미를 가질 뿐 현실 세계에선 '이권 쟁탈전'을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일 가능성이 높다는 답을 드리고 싶다. 그래도 다시 묻는다면, "나는 오염되지 않은 상식의 편이다"라고 말하면 좋을 것 같다.

조은산의 모든 주장에 다 동의할 필요는 없다. 누군가의 모든 주장에 다 동의한다는 건 끔찍한 일이다. 진영논리의 포로가 된 사람들은 자기편이 무슨 짓을 저질러도 '닥치고 지지'를 해대는데, 보기에 징그럽지 않은가? 우리에게 중요한 건 그런 '레밍 기질'이 아니라 다른 생각을 존중하는 태도다. 상호 존중을 하면서 소통을 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 "너는 어느 편이냐"고 묻지 말고 정파성으로 오염되지 않은 소통을 해보자.

 

▲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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