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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순열 칼럼] 노태우의 개혁, 문재인의 반개혁

류순열 기자
기사승인 : 2021-10-26 17:20:14
보수세력은 변화를 싫어한다. 지금 이대로가 좋은데 변화를 바랄까. 기득권이란 그런 것이다. 진보·개혁과 어울리기보단 충돌한다. 가진 것을 지키려 진보를 증오하고 개혁을 막는다. 

그럼 보수정권은 반개혁 세력일까. 그렇지 않다. 과감한 개혁을 추진한 보수정권이 적잖다. 노태우 정권이 대표적이다. 전두환 군부독재정권의 바통을 이어받았으면서도 정책은 깜짝 놀랄 만큼 진보적이었다. 토지공개념을 법제화하고 북방외교를 펼쳤는데 모두 이념의 덫에 걸리기 딱 좋은 정책들이었다. 

특히 토지공개념은 기득권층 탐욕과 충돌하는 것이었다. 땅에 투자해 불로소득으로 부자가 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시장경제의 기본질서를 훼손할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위헌 소지도 안고 있었다.

그럼에도 노태우정부는 꿋꿋하게 밀어붙였다.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던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부동산값 상승이 불평등 심화, 국민생활 빈곤화의 근본원인이라고 보고 이 제도의 도입 필요성을 누차 말씀드렸다"고 회고했다. '부동산이나 금융자산에서 얻는 불로소득이 땀 흘려 벌어들이는 임금을 늘 앞질러 불평등이 심해진다'는 토마 피케티의 통찰과 똑같다. 이미 그 시절 보수정권이 가장 진보적 어젠다를 고민하고 추진했던 것이다. 

이유가 분명했고, 의지는 확고했다. 집이 돈 버는 수단이 되면 불필요한 보유가 늘게 되고 그 만큼 땅값, 집값이 오르게 된다. 이는 생산소득이 아니고 후세들의 부담으로 이뤄지는 비생산적 소득이다. 집값이 오를수록 삶의 질은 나빠질 수밖에 없다. 박 전 총재는 "부동산중심 사회에 머물러 있는 한 어떤 경제성장에도 삶의 질 선진화는 기대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진보세력은 변화를 추구한다. 그래서 진보정권이 개혁세력일까. 이 역시 오산이다. 촛불혁명 정부라는 문재인 정권을 보라. 집권 4년 동안 화끈한 개혁 같은 건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콘크리트 기득권에 균열을 내 반칙과 특권을 깨부수기는커녕 오히려 기득권을 강화하는 쪽을 선택했다.

개혁이 아니라 반개혁이었다. 대표적인 게 부동산 정책이다. 입으로는 "사는 집 말고 파시라"고 해놓고, 손발은 집을 사면 살수록 대박나게 하는 정책을 폈다. "집값 반드시 잡겠다"더니 어처구니없게도 집 투기에 꽃길을 깔아준 것이다. 망국적인 '미친 집값'은 이런 정책 사기의 결과다. 김헌동 전 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장(현 SH공사 사장 후보)은 "진보를 가장한 무능한 정치세력"이라고 비판했다.

누가 개혁을 하고, 누가 세상을 바꿨나. 보수냐, 진보냐 따지는 건 허망한 일이다. 이미 기득권이 된 정치집단의 진영논리, 밥그릇 싸움 이상의 의미를 찾기 어렵다.

서울시장 이명박의 시내버스 운행 시스템 개편도 꽤나 혁명적이었다. 이 시장은 "거의 사회주의적으로 했다. 때론 이런 방법도 필요하다"(2004년 12월)고 했다. 국민의 보편적 삶을 개선할 수 있다면 '이념의 주소'가 무슨 상관이겠나. 이념은 사람 위에 있지 않다. 사람을 위해 도구로서 존재할 뿐이다. 극단주의만 배격하고, 절충하면 될 일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별세했다. 전두환과 함께 쿠데타로, 군부독재와 공포정치로 한국 현대사를 질식케 한 과오가 크다. 대권을 쥐자 과감한 개혁, 화끈한 친서민 정책을 밀어붙인 건 반전이다. 노태우의 개혁은 그의 과오와 함께 엄연한 역사다.

무늬만 진보, 문재인 정권은 노태우의 유산을 곱씹으며 반성해야 한다. 촛불혁명 정부라면서 보수정권보다도 개혁하지 못했다는 건 부끄러움을 넘어 참담한 일이다. 

▲ 류순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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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순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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