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코로나 위기로 다시 귀환한 케인즈와 '큰 정부'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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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위기로 다시 귀환한 케인즈와 '큰 정부'의 시대

UPI뉴스
기사승인 : 2021-12-28 10:35:31
위기 대응, 단지 '큰 정부'이기만 하면 되는 건 아냐
케인즈와 하이에크 역량 겸비한 통찰력과 균형 필요
중앙은행인으로서 필자에게 코로나 위기는 세 번째 맞는 위기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의 현장에 있었고 이젠 코로나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90년 전에는 직접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경제사와 금융사의 흐름을 바꾸었던 대공황이 있었다. 이러한 위기시에는 항상 큰 정부(big government)가 등장했다. 그리고 엄청난 변화의 모멘텀이 있었다. 코로나 위기는 진행형이지만 이미 많은 변화의 모멘텀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공황을 계기로 19세기 후반 경부터 이어져 오던 자유방임주의(laissez-faire) 철학이 큰 정부를 뒷받침하는 철학으로 바뀌었고,이같은 흐름은 그 이후의 위기에서도 이어졌다. 외환위기가 그랬고 글로벌 금융위기 또한 자유방임주의에서 큰 정부로의 전환점을 제공했다.

코로나 위기에서도 마찬가지 상황이 전개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지는 최근 '큰 정부의 승리(The triumph of big government)'라는 제목의 커버스토리를 냈다. 팬데믹에 대응한 각국 정부의 지출이 '작은 정부'를 선호했던 밀턴 프리드먼이 보면 놀랄 17조 달러로 전세계 GDP의 16%에 이르는 규모라는 것이다. 코로나 위기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강하게 정부의 귀환을 촉진했고 강력한 재정, 통화정책을 통해 천문학적인 법정 화폐(fiat money)를 공급했다. 다시 케인즈의 귀환이며 케인즈의 시대라 할 수 있다. 위기 때면 늘 케인즈가 구원투수로 등판해 적극적인 정부의 역할이 부각되는 흐름이다.

그런데 위기 대응이 단순히 큰 정부면 되는 것인가? 직관적이고 선언적으로 들리겠으나 큰 정부로 갈 경우에도 단순하게 큰 정부면 되는 것은 아니다. 역량(competence)과 공정성(fairness)을 지닌 큰 정부여야 할 당위성이 있다고 본다. 대공황을 분기점으로 1930년대 중반 이후 나타났던 변화도 공정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부의 역할을 중시한 시대사상이 있었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코로나 이후의 패러다임 전환 국면에서 새로운 사회계약으로 가는 흐름이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예컨대 예전에 비해 고용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갖는 흐름이 있는지, 그렇다면 이것이 공정성 내지 사회 안정 유지에 가까이 다가가는 단면을 시사하는지 주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과거 위기와 마찬가지로 금번 위기로부터 잠재적 취약그룹이 형성될 가능성,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각된 불평등의 심화가 코로나 위기 이후 더욱 심화될 가능성, 코로나 위기 대응 과정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새로운 리스크와 불균형 가능성, 사회 곳곳에 아직 내재된 서민들이 느끼는 착취적 구조와 시스템이 코로나 위기 이후 한층 고착화될 가능성 등을 적시에 포착해서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아직 취약한 법의 지배(rule of law)가 21세기에 어울리는 선진국 수준으로 확립되어야 하며 행정과 사법 시스템 운영의 현실정합성이 제고되어야 한다. 민생을 살피는 제도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아직도 서민을 착취하는 구시대적 유물이 적지 않으며 강력한 제도개혁을 통해 바로 잡아야 할 당위성이 크다. 취약그룹을 보호하고 중산층을 키우며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과 급변하는 산업환경, 경제환경, 사회환경에 대응하는 인적자원의 역량 제고와 개발에 정부가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큰 정부라 하더라도 이러한 역량을 갖춘 정부를 코로나 위기 이후 절실히 필요로 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역량을 갖춘 정부는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일까? 우선 현실에 대한 넓은 이해와 통찰력을 갖추는 데서 비롯된다고 본다. 이는 이른바 보수와 진보의 문제라기보다는 현실에 대한 인식과 인식의 변화를 향한 노력의 문제이다.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리버럴(liberal)을 논쟁에 있어 특정 편을 들지 않는 넓은 마음을 지닌(broad-minded) 사람으로 정의한 바 있다.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에서 길이 다양하다는 것을 말함으로써 리버럴의 면모를 보여주는 듯하다. 선택하지 않은 다른 길에 대한 아쉬움을 간직하면서도 동시에 현실의 어느 길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선회하는 아이디어를 지지함으로써 현실주의자로서의 면모를 시사하고 있다. 프로스트의 시에 나타나는 리버럴리즘은 현실을 도외시하지 않는 리얼리즘의 표현이다.
 
패러다임의 전환 단계에서 현실문제에 접근함에 있어서는 늘 겸손이 필요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평소 하이에크의 옹호자였던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케인즈의 처방을 선택했던 것은 역설적이지만 현실을 중시한 리얼리즘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정 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넓은 마음을 지니는 리버럴리즘은 균형 있는 리얼리즘의 표현이다.

위기는 인간의 현실과 삶을 근본적으로 흔든다. 그래서 인간의 요소와 가치를 중시하면서 위기시 나타나는 문제들의 본질을 제대로 직시하고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팬데믹 이후 집중해온 케인즈류의 경기대응적 거시정책 처방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이에크류의 변화와 새로운 사회계약으로 가는 흐름을 함께 고려하는 통찰력과 균형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 이러한 역량을 갖춘 정부야말로 코로나 위기 이후를 감당할 수 있는 정부일 것이다. 진정한 리버럴은 어떤 이념에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현실에 대한 넓은 이해와 통찰력을 바탕으로 인간의 가치를 중시하는 가운데 균형 있는 접근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노력한다.
 
필자가 공부했던 미 워싱턴대에서 법경제학과 정치경제학을 강의했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더글러스 노스는 제도와 제도 아래에서 움직이는 정부를 포함한 플레이어의 상호작용이 바람직한 제도변화를 가져오고 경제적 성과를 제고하는 데 긴요하다고 보았다. 여기서 상호작용의 주체인 정부의 역량이 어떠하느냐에 따라 한 나라의 경제적, 사회적 성과는 크게 달라지게 된다.

지난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돌아볼 때도 위기 이후 등장하는 정부 역량의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었다. 코로나 위기 이후 직면하는 숱한 도전과 과제를 감당할 수 있는 더 역량 있는 정부의 등장을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다.

▲ 조홍균 한국은행 경제교육실 부실장(미 워싱턴대 법학박사) 

조홍균 한국은행 경제교육실 부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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