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강준만의 직설] '언더도그마'는 보수의 언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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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직설] '언더도그마'는 보수의 언어인가

UPI뉴스
기사승인 : 2022-04-18 13:35:53
장애인 지하철 시위 비판에 소환된 '언더도그마'
부적절 상황에 동원해 '극우'개념으로 오인케해
실은 약자 오·남용에 성찰 요구하는 '진보적 개념'
文정권 5년이야말로 언더도그마 역기능 사례의 보고
"전 세계의 모든 언더독들은 들어라. 언젠가 우리가 질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그게 오늘은 아니다. 오늘 우리는 싸울 것이다."

2017년 2월 13일 발매된 방탄소년단(BTS)의 2집 리패키지 앨범에 수록된 노래 ‹Not Today›의 가사다. 세계 정상의 위치에 우뚝 선 오늘날엔 별로 실감이 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BTS는 언더독의 대변자로 출발했다.

언더독(underdog)은 "(생존경쟁 따위의) 패배자, 낙오자, (사회적 부정이나 박해 등에 의한) 희생자, 약자"를 뜻한다. 반대말은 overdog(지배계급의 일원), top dog(승자, 우세한 쪽)이다. 투견(鬪犬)에서 밑에 깔린 개, 즉 싸움에 진 개를 언더독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된 말이지만, 옛날 벌목산업의 나무 자르기 관행도 이 표현의 유행에 일조했다. 큰 나무의 경우엔 미리 파둔 땅 구덩이 위로 나무를 걸쳐둔 뒤 위아래로 톱질을 하는 방식으로 나무를 잘랐는데, 구덩이 속에 들어가 톱질을 하는 건 매우 어려운 고역이었다. 구덩이 속에서 톱질을 하는 사람을 under dog, 나무 위에서 톱질을 하는 사람을 top dog이라 불렀다고 한다.

광고계엔 '언더독 마케팅'이라는 게 있다. 특정 브랜드를 띄우는 데에 '초라한 시작' '희망과 꿈' '역경을 이겨내는 도전정신'을 강조하는 마케팅이다. 이 마케팅은 초라한 시작과 더불어 고난과 시련의 역사를 갖춘 나라, 즉 미국처럼 언더독이 사랑받는 나라에서 잘 먹힌다. 고난과 시련으로 말하자면 한국도 만만치 않은 나라다. 언더독 스토리가 늘 한국 선거판의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하지만 언더독에 대한 우대가 맹목적으로 흐르면 사회적 문제를 유발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미국의 보수운동 단체인 티파티의 전략가인 마이클 프렐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다. 그는 언더독(underdog)에 도그마(dogma)라는 단어를 붙여 언더도그마(underdogma)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그가 ‹언더도그마›(2011)라는 책에서 내린 정의는 다음과 같다.

 "언더도그마는 힘이 약한 사람이 힘이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선하고 고결하며, 힘이 강한 사람은 힘이 강하다는 이유로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믿음을 가리킨다. 언더도그마는 단순히 약자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힘이 약하다는 이유 때문에 무조건 약자 편에 서고 그 약자에게 선함과 고결함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선에서 일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을지도 모를 '언더도그마'가 지난 3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출근 시간대 '지하철 시위'로 인해 뜨거운 논란의 한복판에 소환되었다. 서울지하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는 "장애인 단체의 시위는 약자는 무조건 선하고 강자는 무조건 악하다는 '언더도그마'가 지배 논리로 자리 잡은 이슈"라고 했다.

이 시위에 비판적 목소리를 내온 국민의힘 대표 이준석은 자신의 주장이 장애인 혐오라는 일각의 비판과 관련해 "소수자 정치의 가장 큰 위험성은 성역을 만들고 그에 대한 단 하나의 이의도 제기하지 못하게 틀어막는다는 것에 있다"라며 "이준석을 여성 혐오자로 몰아도 정확히 여성 혐오를 무엇을 했는지 말하지 못하고, 장애인 혐오로 몰아도 무슨 장애인 혐오를 했는지 설명 못하는 일이 반복된다"라고 했다.

이준석은 "왜냐하면 지금까지 수많은 모순이 제기 되었을 때 언더도그마 담론으로 묻어버리는 것이 가장 편하다는 것을 학습했기 때문"이라며 "치열하게 내용을 놓고 토론하기 보다는 프레임 전쟁을 벌인다. 그 안에서 정작 소수자 정치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해당 성역의 PC(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 강도만 높아지고 많은 사람들은 담론을 건드리기를 싫어하게 되고 주제 자체가 갈라파고스화 되어버리는 방식으로 끝난다"라고 했다.

이와 같은 이준석의 일련의 주장에 대해선 진보 진영의 집중폭격이 이루어졌다는 건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다. 나는 그의 주장에 대체적으로 동의하지 않았지만, 한가지 안타깝게 생각한 게 있었다. 그건 바로 '언더도그마'라는 꽤 쓸모 있는 개념을 부적절한 상황에 동원함으로써 '보수' 심지어는 '극우'의 개념으로 몰아가게끔 하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이었다.

나는 보수 쪽에서 나온 개념은 보수적인 것이고, 진보 쪽에서 나온 개념은 진보적인 것이라는 식의 출처 중심주의적 평가에 반대한다. '언더도그마'는 자신의 약자 위치를 무슨 완장이나 되는 것처럼 오·남용하거나, 약자가 아님에도 약자인 척 '약자 코스프레'를 하는 사람들의 성찰을 요구하는 데에 유용한 진보적 개념이 될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진보에 역행해온 문재인 정권의 지난 5년은 언더도그마 역기능 사례의 보고(寶庫)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좋은 비판 대상을 놔두고 한국이 마치 그간 '장애인의 천국'이기라도 했다는 듯 장애인들의 시위 방식을 비판하는 데에 언더도그마를 동원한 건 개탄을 금치 못할 일이었다. 우리 모두 언더도그마는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원리를 경고해주는 가치가 있다는 점에 주목하면 좋겠다.

▲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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