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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원로들이 박태준 회장 묘 앞에 모인 까닭은?

탐사보도부
기사승인 : 2022-05-27 16:50:25
"회사 정체성 흔드는 상황 걱정된다"며 경영진 성토
황경로 전 회장 "박태준 흔적 지우기 시작됐다" 우려
일부 원로 "중요 의사결정, 원로에게 설명 했으면"
지난 26일 오전11시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백발 성성한 여섯 노인이 고(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묘역에 모였다. 모두 포항제철 창립 요원, 즉 오늘의 포스코가 있게 한 원로들이다. 1968년 34명으로 결성된 모임인데, 현재 9명만 남아 있다. 

"자, 지금부터 박태준 명예회장께 봉고례(奉告禮)를 올리겠습니다."

여상환 전 포스코 부사장이 큰 소리로 외쳤다.봉고례? 흔히 쓰이는 말이 아니다. 여 전 부사장에 따르면, 봉고례는 나라에 큰 변고가 생기면 하늘에 올리는 의식이다. 회사 설립 이래 전직 임원들이 봉고례를 연 것은 처음이다.

▲ 황경로(맨 왼쪽) 전 포스코 회장과 창립 요원 5인이 5월26일 오전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묘역에서 봉고례를 올리고 있다. [ 송창섭 기자 ]

"지금 포스코가 국민기업이 아니라는 식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말을 쏟아내고 있는데, 이보다 더 큰 변고가 어디 있나. 그래서 창업주인 박 전 회장께 하늘에서 회사(포스코)를 잘 지켜달라고 부탁드리고자 모였다."(여 전 부사장)

황경로(92) 전 포스코 회장, 안병화(91) 전 포스코 사장, 이상수(91) 전 거양상사 회장, 여상환(85) 전 포스코 부사장, 안덕주(84) 전 포스코 업무이사, 박준민(82) 전 포스코개발 사장 등은 이날 함께 박 전 회장에게 헌화했다. 이후 '포스코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현 경영진에 대하여 우려를 표하며 자성을 촉구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지난 5월16일에 이어 두 번째다.

▲ 황경로 전 포스코 회장(맨 앞)과 창립요원 5인이 5월26일 오전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내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묘역에서 봉고례를 올리고 있다. [ 송창섭 기자 ]

"포스코는 포스코 정신, 포스코 스피릿이 중요한 회사다. 그 요체는 무한한 창의에 의한 최선 또는 그 이상을 쏟아 세계정상을 지향하는 것이다. 이제 와서 몇 가지 빈약한 이유를 내세워 "더 이상 포스코는 국민기업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편다면 회사의 가장 귀중한 정신적 자산을 스스로 던져 버리려는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전체적인 내용은 16일 성명과 비슷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우리 창립요원 6인은 '타계하신 박태준 회장 등 25인을 포함한 포스코 창립요원 34인 전원의 이름으로 노구를 일으켜 최정우 회장(포스코홀딩스)을 비롯한 현 포스코 경영진의 진정한 자성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 황경로 전 포스코 회장 

이날 행사에는 은퇴 후 일체 대외활동을 하지 않은 황경로 전 포스코 회장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서울 용산고,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황 전 회장은 육군 소령으로 예편한 후 대한중석 관리부장으로 일하다 1968년 포철(포스코 전신) 설립 때 합류했다. 이후 포스코에서 상무, 부회장을 지내다 박태준 전 회장에 이어 1993년 2대 회장에 취임했다.

현재 생존해 있는 포스코 임직원 중 최고령 최고위직 인사다.

-최정우 포스코 회장과 근무한 적은 있는가.

"전중선 (포스코홀딩스) 사장은 내가 포스코경영연구소(POSRI) 회장으로 있을 때 비서로 데리고 있었는데, 최 회장은 딱히 기억나진 않는다. 부회장 시절 한두 번 가량 만난 것 같다."

-어떤 기억이 있는가.

"순수했지. 같이 근무한 시기가 짧았다. 그런데 (최 회장이) 정치적으로(정치권 도움이라는 의미) 회장이 돼서 그런지 '과거를 단절하라'는 것을 하는데…. 난 90살 이후부터는 회사 일에 신경을 안 쓰려고 의식적으로 자료도 안 보고 (회사측에) 연락도 잘 안한다."

황 전 회장은 지난 4월 포스코홀딩스가 전 직원에게 보낸 이메일('포스코는 더 이상 국민기업이 아니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창업자(박태준 전 회장) 흔적을 지우려고 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왜 이번 일(이메일 발송)을 '박 전 회장 흔적 지우기'라고 보는가.

"지주회사를 만드는 것도 그렇고, 국민기업이 아니라는 것도 그렇고, 정체성을 바꾸는 거니까. 그걸 왜 굳이 아니라고 부정하는지."

-최 회장이 지주사로 전환하는 것을 사전에 회사 원로들과 상의했나.

"전혀 없었다. 매스컴(대중미디어) 보고 알았지. 아마도 문재인 정부가 OB(퇴직 임직원)들하고 단절하라고 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작년 박태준 전 회장 추모 행사 10주년 행사를 조촐하게 연 것도 원로들이 서운해 한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좀 소홀하게 했지. 코로나19 핑계 대고…."

-요즘 회사 사정을 어떻게 보는지.

"되게 위험하다고 본다. 포스코인터(포스코인터내셔널)는 왜 사? 신일본제철 같은 회사는 그런 것 안 해. 물론 최정우가 인수한 건 아니지. 가스전 개발 같은 걸 왜해? 나는 중우회(포스코 퇴직임원 모임)만이 포스코 경영진을 진심으로 견제한다고 봐요. 내용을 잘 알고 올바르게 얘기할 수 있는 곳이 중우회 밖에 없거든. 다른 데는 자기중심이고."

-지금 최정우 회장은 중우회를 신경 쓰는지.

"지금은 (신경을) 안 써."

▲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내 위치한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묘소. [송창섭 기자]

형식은 "자성을 촉구한다"는 내용의 쓴 소리였지만, 원로들의 애사심은 여전했다.

안덕주 전 이사는 "회사가 대단히 잘못하고 있어 이러는 건 아니다. 사상 최대 이익을 내고 있지 않나"라면서 "'국민기업이 아니라'라는 내용을 공개적으로 밝힐 때는 조심스럽게, 사전에 서로 상의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KPI뉴스 / 탐사보도부 송창섭 기자 realsong@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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