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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기자에서 시인 배우까지…백학기, 영화감독으로 다시 쓰는 필모그래피

임혜련
기사승인 : 2019-07-06 09:00:53
시, 소설, 시나리오 등 다방면으로 작품 활동 펼쳐
'백학기만이 만들 수 있는 영화' 제작이 최종 목표

중학교 영어 교사에서 기자와 영화배우를 거쳐 영화감독까지. 백학기(60) 씨에게는 여러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1981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해 시집을 펴냈고 2002년부터는 배우로 작품 활동을 했다. 현재는 어릴 적 꿈이었던 '영화감독'의 길을 걷고 있다.

그는 삶의 가치를 창조하는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인 방식은 바로 문학과 영화라고 말한다. 백학기 씨를 만나 그의 삶의 두 축을 이루고 있는 '문학'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6월 25일 UPI뉴스 사무실을 찾은 백학기 감독이 영화와 문학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권라영 기자]

-이력이 화려하다. 기자 생활을 오래 했고 각종 문학 공모전에도 당선됐다. 학창시절엔 전국 백일장을 휩쓸었다고 하던데, 글 재주를 타고 나신건가


문학 이야기를 하면 아버지를 빼놓을 수 없다. 초등학교 때 돌아가신 선친께서 생일에 노란 꽃무늬 표지의 김소월 시집을 선물해주셨다. 왜 그러셨는지는 모르겠는데 그 시집이 정말 좋았다. 그 뒤부터 자연스럽게 시를 읽고 글을 쓰는 환경이 조성됐다.

-1981년 <현대문학>에 '삼류 극장에서 닥터 지바고를'이란 작품이 당선돼 등단했다. 소설가도, 수필가도 아닌 '시인'으로 등단한 이유가 궁금하다
 
젊은 날엔 누구나 다 시인이라고 하지 않는가. 시는 절제된 언어와 감성으로 접근하기 좋다. 그래서 시를 많이 썼고 신춘문예에 응모하고 상을 받으며 자연스럽게 시인으로 데뷔했다. 그렇다고 해서 소설을 도외시하진 않는다. 대학 시절 학보사 주최 공모전에 소설로도 많이 당선됐다. 지금은 폐간된 '샘이 깊은 물'이라는 잡지에도 단편 소설을 실었다.

-시나리오도 집필한다고 들었다
 
서울디지털대학에서 시나리오 강의를 하고 있다. 현재 제작 준비 중인 영화 '이화중선(李花仲仙·1920~30년대 여류명창)'도 직접 시나리오를 썼다. 최근엔 신영(본명 신기남 전 의원의 필명)  작가의 장편소설 '두브로브니크에서 만난 사람'도 시나리오로 각색해 영화화할 준비를 하고 있다.

–직접 쓴 시 '무창포'는 가수 최백호의 앨범 '회귀'에서 음원으로도 만들어져 이목을 끌었다

살다 보면 생각지도 않은 일들이 벌어진다. 그래서 인생은 놀랍고 아름답다. '무창포'는 20대에 쓴 시이다. 가사에 쓸쓸하고 허무한 감정이 짙게 깔려  있다. 시를 읽은 지인들이 최백호 선생의 노래로 만들면 좋을 것 같다고 했었는데 작년에 우연찮게 만났다. 그분께 이 시를 보내드렸더니 좋아하셨고, 한 달 만에 작곡하셨다.

▲ 시와 소설 등 여러 작품을 섭렵한 백학기 감독. 그는 영화감독에 도전장을 던졌다. [권라영 기자]

"감독으로서 최종 목표는 '백학기 아니면 못 만드는 영화'"

백학기 씨의 인생에 빠질 수 없는 게 영화이다. 그의 유별난 '영화사랑' 역시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도청 공보관실에서 근무하며 산골과 농촌에서 문화 영화를 상영하고 주말이면 집으로 영사기를 가져오던 아버지 덕분에 자연스럽게 영화인을 꿈꿨다.

그렇게 불혹의 나이에 어릴 적 꿈을 좇아 배우로 충무로에 입성한 그는 2002년 영화 '스물넷'으로 데뷔하며 스크린에 얼굴을 비춘다. 이후 '녹색의자' '파도 여인 그리고 탱고' '종소리' '참외향기' 등 다양한 영화로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그의 도전은 배우에서 그치지 않았다.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하며 메가폰을 잡았다.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갑자기 영화에 도전한다니 주변의 만류도 있었을 법하다
 
전략을 짰다. 20대에도 연극 활동을 했는데 집안의 반대로 포기한 후 생업으로 교사생활을 했었다. 그때 쓴 글들이 신문에 나왔고 지방지가 생기기 시작하며 지방지 기자로 일하게 됐다. 기자생활을 거쳐 KBS 홍보실에서 일하다보니 마흔이 넘었다. 이제 내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고 싶은 일을 고민해보니 맨 먼저 떠오른  것이 영화였다. 주변 사람들 몰래 대학원을 다니며 준비한 뒤에 '영화하겠다'고 '선전포고'하듯이 말했다.

-영화감독보다 영화배우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

돌아가신 박철수 감독 밑에서 영화 연출을 배우고 조감독 생활을 하다가 자연스럽게 연기를 하게 됐다. 2002년 임종재 감독의 영화 '스물넷'에 조연급으로 출연하면서 배우로서 이름을 알렸다. 영화에 스태프로 참여하며 카메오 출연을 하게 된 것인데 반응이 좋았다. 어떻게 보면 감독보다는 배우로서 활동한 이름이 더 많겠다.

-임종재 감독의 '스물넷'이 첫 작품인 셈인데 연기가 어렵지 않았나

첫 촬영이 베드신이었다. 카메라 뒤에서 스태프로는 있어봤지만 배우로서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은 처음이었다.하필 베드신이라니 난감했다. 그런데 필름이 돌아가기 시작하니 '이 정도도 못해?'라는 오기가 생기더라. 배창호 감독의 '길'이라는 영화에도 잠깐 출연했는데 촬영이 끝난 후 이런 말을 들었다. "리허설 때는 연기가 잘 안 나오는데 카메라만 돌아가면 눈빛이 달라진다." 카메라 체질인 것 같다.

-'두 연인' '체어2014' '완전한 인생'을 직접 연출하며 영화감독으로서 행보도 이어가고 있다. 현재는 영화 '이화중선'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다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1920년대를 좋아한다. 어떤 평론가는 그 시대를 '에로그로우'라고 표현한다. 에로티시즘(eroticism)과 그로테스크(grotesque)가 혼재됐다는 뜻이다. 그런 매력적인 1920~1930년대에 살았던 이화중선 선생은 조선물산장려회 주최 전국명창대회에서 장원을 하며 일약 스타가 된다. 그러면서 만주에 몰래 독립운동자금을 대고 국악 발전을 위해 수익 일부를 기부하기도 한다.


퍼블릭한(공적인) 인물이면서 로망도 있고 비극적인 죽음도 있다. 그의 삶이 창작에 불을 지펴서 6개월 정도 시나리오를 쓰는데 전념했고 이화중선 선생의 궤적을 찾아다녔다. 현재는 프리 프로덕션(영화 촬영 전 프로덕션을 위한 준비를 하는 과정) 단계이다.

-'영화감독 백학기'로서의 최종 목표를 말해 달라

'백학기니까 만들 수 있어' '저건 백학기 아니면 못 만들어'란 말을 들을 수 있는 작품을 내놓는 게 최종목표이다. '이화중선' 역시 백학기만이 할 수 있는 그런 작품이 됐으면 하는 게 제작자로서의 꿈이다.

-앞으로 더 도전하고 싶은 분야는

서사적이고 인생론적인 영화에 황혼의 배우로 출연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 스크린 한 쪽을 잘 채울 수 있는 아우라 있는 조역이나 단역에 도전해보고 싶다.


KPI뉴스 / 임혜련 기자 ih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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