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조용호의 문학공간] "신은 치매에 걸렸다...지금 우리는 어느 과거를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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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 문학공간] "신은 치매에 걸렸다...지금 우리는 어느 과거를 사는가"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Google구글에서 선호하는 출처로 추가
기사승인 : 2024-12-27 16:07:17
2023 인터내셔널 부커상 수상 '타임 셸터' 국내 번역 출간
불투명한 미래 대신 과거회귀 국민투표로 '중고' 희망 찾는
불가리아 작가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도저한 세태 풍자
"망각 시작한 신의 불확실한 기억, 신은 죽지 않고 잊었다"

'과거는 어딘가에서 집이나 거리로 존재한다. 당신은 그 집에서 잠시, 오 분 정도 떠나왔을 뿐인데 어느새 낯선 도시에 와 있음을 깨닫는다. 여러 글에서 과거는 타국으로 표현되었다. 말도 안 된다. 과거는 고국이다. 미래야말로 낯선 얼굴만 가득한 타국이다. 나는 그곳에 발을 디디지 않을 것이다.'

2023년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한 불가리아 작가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Georgi Gospodinov, 1968~)의 '타임 셸터'(민은영 옮김, 문학동네) 한 대목이다. 우리 말로 옮기면 '시간 보호소' 혹은 '시간 방공호'쯤으로 번역되는 이 소설의 표제처럼, 이 작품은 '과거'에 대한 철학적 사유와 함께 종말을 향해 치닫는 듯한 문명의 현주소를 격렬하게 풍자한다. 

 

▲ 불가리아 작가로는 처음으로 인터내셔널 부커상(2023)을 수상한 소설가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부커재단]

 

판타지 성격을 띤 우화적 스토리로 전개하지만 기억을 잃어버리고 과거에서 헤매는 존재의 비애와, 미래를 기약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이 준엄하게 다가온다. 소설가인 화자는 자신이 투사된 '가우스틴'이라는 인물을 내세운다. 가우스틴은 노인정신의학센터에서 알츠하이머 환자를 치유하는 클리닉 닥터로, 과거 어느 시점인가로 돌아가면 비로소 행복해지는 치매 환자들을 위해 과거 요법을 도입한다.

이를테면 1960년대 횐경으로 건물의 한 층을 통째로 꾸미고 그 시기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알츠하이머 환자가 행복감을 누리며 치유되기를 기대한다. 실제로 효과가 있었고, 환자가 아닌 이들에게도 인기가 높았다. 급기야 유럽연합의 주요 인사가 방문해 자문을 구하고, 각 나라마다 과거로 돌아가 20세기 경계 안에서 특정 시기 10년을 고르는 국민투표로까지 나아간다.

'오늘날 기억을 잃는 사람들이 갑자기 급증한 건 우연이 아니네… 그들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해주기 위해 여기에 있어. 내 말을 믿으라고, 언젠가, 머지않아,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과거로 돌아가기 시작할 거야. 기억을 기꺼이 '잃기' 시작할 거라고.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과거라는 동굴에 숨기를, 돌아가기를 원하는 때가 올 거야. 그런데 행복한 이유로 그러진 않겠지. 우리는 과거라는 방공호를 마련해야 하네. 시간 대피소(time shelter)라고나 할까.'

1939년 2차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으로 회귀한 가우스틴이 그 시대를 배경으로 편지를 보내오다 소식이 두절됐다. 마지막 편지는 어머니가 유대인인 그가 다가올 재난을 피해 리스본을 거쳐 뉴욕으로 떠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를 스위스 취리히에서 다시 만난다. 그는 이곳에서 본격적으로 노인정신의학센터를 꾸리고 빌딩 하나를 통째로 빌려 각 층마다 다른 연대의 과거 환경을 조성해 과거 요법 크리닉에 나선다. 소설가 화자도 각 시기의 소품과 자료를 확보하는 역할을 하면서 가우스틴을 돕는다.


'과거에 다시 살 수 있다는 개념, 현재라는 막다른 골목에서 벗어나 과거로 대피하겠다는 욕망은 나이나 병의 여부와 무관하게 점점 더 많은 이를 사로잡으며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는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유럽연합이 나서서 과거 회귀 국민투표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좌충우돌 양태가 철학적 사유와 날카로운 풍자로 그려진다. 이를테면 과거 어느 시점 10년을 선택할 것인가를 두고 게오르기의 모국 불가리아에서 벌어지는 소동은 풍자를 넘어서는 구체적 실감을 제공한다. 인터넷은 펄펄 끓어오르고, 반목은 도를 넘는다. 

'이 도시에서 의사소통은 모든 수준에서 가로막힌다고 나는 판단했다. 사람들은 다른 직업군끼리 대화하지 않는다. 의사가 환자와 말하지 않고, 판매원이 손님과 말하지 않으며, 택시 기사는 승객과도 말하지 않는다. 직능 조합에서도 서로 말하지 않고 어떤 작가들은 다른 작가들과 말하지 않으며 그 작가들은 또다른 작가들과 말하지 않는다. 가족들은 집에서 서로 말하지 않고 남편과 아내도 말하지 않으며 엄마와 아빠도 말하지 않는다. 마치 공룡이 사라지듯, 꿀벌이 알 수 없이 종적을 감추듯, 모든 대홧거리가 갑자기 증발한 것 같다. 부엌의 배기 후드로 빨려들어가고 작은 욕실 창문의 찢어진 방충망을 통해 빠져나가 사라졌다.'

국가사회주의 시기를 선택할 것인지, 19세기 말부터 이어진 '영웅'들의 시기를 내세울 것인지 여론은 막상막하였다. 이들의 치열한 공방전은 결국 사회주의 쪽의 미세한 승리로 끝난다. 유럽연합의 지도는 이제 영토 개념이 아니라 연대별 지도로 바뀐다. 여일하게 전체 국민이 투표로 선택된 연대에 머문다는 건 어려운 일, 여기저기서 독립된 시기가 불거져 나오고 과거는 대혼돈 국면으로 접어든다. 이들이 과거로 회귀하는 선택을 한다는 전제에는 작가가 작금의 유럽 혹은 인류의 문명을 바라보는 도저한 비관주의가 바탕에 깔려 있다. 그는 세상은 언제나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2차세계대전이 시작된) 9월 1일 조금 전이라고 생각한다.

'미래에 심각한 결손이 발생할 때 우리는 어떻게 내일을 위한 시간을 조금이나마 벌 수 있을까- 간단한 대답은 바로, 약간 뒤로 가는 것이었다. 뭐든 확실한 게 있다면 그것은 과거다. 오십 년 전은 지금부터 오십 년 후보다 더 확실하다. 이십, 삼십, 혹은 오십 년을 뒤로 간다면 딱 그만큼 앞서게 된다. 맞다, 그것은 이미 살아본 시간, '중고' 미래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미래는 미래다. 그래도 지금 우리 앞에 입 벌린 무(無)보다는 낫다. 미래의 유럽은 이제 가능하지 않으므로 과거의 유럽을 택하자. 간단하다. 미래가 없을 때는 과거에 투표하는 것이다.'

그는 영국 시인 오든의 시구를 빌려 '우리는 서로 사랑하든가, 아니면 죽어야 한다'고 쓴다. 유럽의회 의장은 과거 선택 국민투표는 '불가능한 미래에 직면한 마지막 생존시도'라고 역설한다. '우리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지금까지 해온 대로 공유하는 과거 안에서 함께 살아가기, 혹은 역시 지금까지 해온 대로 완전히 허물어져 서로를 살육하도록 손놓고 있기. 두 선택지 모두 타당합니다. 오든의 저 위대한 시구를 떠올려봅시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든가, 아니면 죽어야 한다.'

혐오와 저주, 무자비한 폭력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미래를 암담하게 바라보는 작가의 시각이 우화적인 설정 속에 시종 전개되는 양상이다. 그는 '기억하는 한, 지나간 시간의 접근을 막을 수 있다'고 역설한다.

'숲 한가운데에서 밤중에 불을 피우듯이. 악령과 늑대가 사방에 웅크리고 있다. 과거의 짐승들이 포위망을 좁혀오지만 아직은 감히 원 안으로 들어서진 못한다. 이 알레고리는 단순하다. 기억의 불길이 타오르는 한 당신이 주인이다. 불길이 잦아들기 시작하면 짐승들은 점점 더 크게 포효하며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온다. 과거라는 짐승의 무리.'

 

▲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공동 수상한 미국 출신 번역가 앤젤라 로델(오른쪽)과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부커재단]

 

게오르기는 '소설은 질서와 형식에 대해 기만적인 위안을 제공한다'고 본다. '누군가가 행동의 모든 가닥을 쥔 채로 순서와 결과, 어떤 장면이 어떤 장면 뒤에 나오는지 등을 전부 알고 있다고 가정한다. 진실로 용감한 책, 용감하고 절망적인 책은 그 안에서 모든 이야기가, 일어난 일과 일어나지 않은 일 전부가, 우리 주변의 원초적 혼돈 속에 둥둥 뜬 채로 어둠 속에서 고함치고 속삭이는, 애원하고 킬킬거리는, 만나고 스쳐가는 그런 책일 것이다. 소설의 끝은 세상의 끝과 같다. 미루는 것이 좋다.'

이런 시각을 소설 속에서 소설가가 말하는 형식으로 이끌어간 게오르기는 '내가 가우스틴을 만들어냈는지 가우스틴이 나를 만들어냈는지 이제는 기억하지 못한다, 과거 요법 클리닉이라는 게 정말로 있었는지, 그저 떠오른 아이디어였거나 노트 속 메모였거나 마구잡이로 읽은 신문에 언급된 얘기였는지'라고 짐짓 너스레를 떤다. 이어서 그는 '과거의 도래에 관한 이 모든 일이 이미 일어났는지 아니면 내일 시작될 것인지도' 모르겠다면서 서늘하게 마지막 문장을 맺는다. '내일은 9월 1일이었다.' 그에게 내일은 참혹한 살육으로 이어지는, 아직 오지 않는 과거이자 미래인 셈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어느 과거로 회귀했는가.

'신이 필름을 거꾸로 돌리고 있을 가능성도 있을까? 우리는 망각을 시작한 신의 불확실한 기억 속에 있다. 처음에 자신이 했던 말에 대한 기억을 전부 잃어버리기 시작한 신. 이름으로 만들어진 세계에서 이름을 잊는다는 것은 그 세계의 자연적인 종말이다. 신은 죽지 않았다. 신은 잊었다. 신은 치매에 걸렸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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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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