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쉬었음' 31만 역대 최대…청년 73% "노력해도 계층 상승 어렵다"
윤동열 교수 "노동시장·자산시장 격차가 만든 구조적 신호"
'월급'에는 단지 급여 이상의 사회적 의미가 있다. 근로자들이 오늘을 살아가는 동시에 내일을 준비하도록 하는 원천이다. 청년들의 월급은 10년 전보다 늘었다. 그러나 필수 생활비는 훨씬 더 빠르게 올랐고, 자산 격차는 더 벌어졌다. 당장의 생존수단 외에는 월급의 기능이 퇴화한 모습이다. 월급으론 미래를 설계할 수 없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배달기사 37세 장은호(가명) 씨는 가끔 배달 앱을 켠다. 돈이 필요할 때, 딱 필요한 만큼만 일한다. 장 씨는 32세에 지역 중소기업에 입사했다. 2년이 지나도 월급이 오를 기미가 없었다. "내가 여기서 계속 있어봤자 뭐가 달라지나 싶었다"고 했다.
그렇게 회사를 그만뒀다. 처음에는 조금만 쉬자는 생각이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점점 외출이 줄었다. 노부모와 최대한 마주치지 않으려고 가족들이 잠든 새벽에 방에서 나와 끼니를 해결했다.
깨어 있는 시간 대부분은 게임으로 보냈다. 순식간에 1년이 흘렀다. 도저히 버틸 수 없는 궁지에 몰려서야 배달 일을 시작했다. 장 씨는 "이제 딱히 잘 되고 싶다는 욕망도 없다"고 했다.
"지금 제 삶이 정상적으로 굴러간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런데 언젠가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잘 모르겠다"고 했다.
![]() |
| ▲ 질주하는 배달 라이더. 기사와 상관없음. [뉴시스] |
30일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30대 '쉬었음' 인구는 31만4000명으로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03년 이래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일각에서는 이들을 조롱하기도 한다.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 쉬었음 청년 관련 기사를 게시한 글에는 "은둔 쉬었음 한다는 거 자체가 집안이 좀 산다는 거 아니야?" "대기업에서 안 뽑아주면 걍 중소 가면 되잖아" 같은 댓글이 달려 있다.
하지만 월급으로 삶을 바꿀 수 없다는 체념은 널리 퍼져 있다. 국가데이터처의 '청년 삶의 질 2025' 보고서를 보면 청년(19~34세) 10명 중 7명(73.6%)은 "노력해도 계층 사다리를 오를 수 없다"고 답했다. 계층 이동이 가능하다고 답한 청년은 26.4%에 그쳤다.
월급쟁이 청년들의 체념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서울의 광고회사에서 6년째 일하는 배형석(가명·34세) 씨는 매달 실수령 310만 원 중 180만 원이 대출 상환으로 빠져나간다. 월세와 공과금을 내고 나면 50만 원 남짓이 남는다.
5년 전 그는 적금을 깨고 신용대출 5500만 원과 마이너스 통장 2000만 원을 실행했다. 주식 레버리지 상품과 알트코인에 투자했다. "야근을 밥먹듯 해도 월급만으로는 답이 안 보였다"고 했다. 커뮤니티에는 코인으로 수십억을 벌어 퇴사했다는 이야기가 매일 올라왔다.
그런데 2022년 말 금리가 치솟았다. 자산 가치가 폭락했다. 배 씨는 추가로 카드론 1000만 원을 내야 했다. 지금도 빚에 허덕이지만, 그는 여전히 코인 시세화면을 본다고 했다.
배 씨는 "시간을 돌려도 똑같은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만약 제가 코스피에 그렇게 투자했다면 지금쯤 큰 돈을 벌었을 것"이라며 "빚을 내서 투자를 한 행동이 잘못된 선택이라기보다, 누군가는 운이 좋았고 저는 단지 운이 없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배 씨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30대의 1인당 평균 은행 대출 잔액은 1억218만 원으로 사상 처음 1억 원을 넘어섰다. 고위험가구 45만9000가구 가운데 20~30대 청년층 비중은 34.9%로 2020년(22.6%)보다 12.3%포인트 증가했다.
![]() |
| ▲ 2015년~2025년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과 청년 월평균 임금 Claude AI 생성 이미지. [KB국민은행 주택가격동향, 국가통계포털(KOSIS)] |
지금도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진다. KPI뉴스가 KB국민은행 주택가격동향과 국가통계포털(KOSIS)을 분석한 결과 지난 10년간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124% 상승했다. 같은 기간 청년 중위소득 증가율은 31%에 그쳤다. 집값과 월급의 상승률 격차가 네 배에 달한다.전문가들은 청년들에게 나타나는 '쉬었음'과 '빚투'가 결국 같은 배경에서 출발한 현상이라고 본다. '노동만으로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불안감이 공통 원인이라는 것이다.
윤동열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반복된 취업 실패나 질 낮은 일자리 경험 속에서 노동시장 자체에 대한 신뢰를 잃은 것"이라며 "개인의 근성 부족이나 투기 성향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시장, 주거시장, 자산시장 간 격차가 만들어낸 구조적 신호로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KPI뉴스 / 서승재·송채린 기자 seungjaeseo@kpinews.kr
[저작권자ⓒ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