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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에서 슬픔을 딛고 뛰어오르라

UPI뉴스
기사승인 : 2019-03-18 16:04:10
[남인복의 타박타박 지구촌 ③]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Ushuaia)

아르헨티나 남쪽 끝 세계 최남단 도시
도시 분위기는 전형적인 유럽 도시풍
펭귄, 가마우지, 물개 등도 버글버글

우리는 일상에 지쳤을 때 여행을 꿈꾸곤 한다. 그냥 떨치고 나서면 다 괜찮아질 것 같아서다. 그러나 세상 일이 마음 먹었다고 다 할 수 있던가. 그동안 이런저런 이유를 만들어 여러 곳을 다녔다. 쉽게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그마한 위로가 되길 바라면서 여행지에 대한 기억을 펼쳐놓으려 한다. 새삼스런 설렘에 나 자신 다시 길 위로 나설지도 모르겠다.

 

▲ 남미 주요 도시를 보여주는 관광 지도. 아르헨티나 남쪽 끝에 우수아이아가 보인다. [KRT여행사 제공]

 

슬픔은 힘이 세다. 우리 모두 울면서 태어난 경험을 가진 때문일까. 슬퍼했던 기억, 서러워했던 경험들 쉽게 버리지 못하고 마음에 새겨 두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미친 듯 웃다가도 마지막엔 한소끔 눈물을 내보이는 것인지도.
세상 사람들이 슬픔을 묻으러 가는 곳, 그 슬픔이 모이는 곳, 바로 세상의 끝 우수아이아다. 거대한 남아메리카 대륙, 아르헨티나의 남쪽 끝에 있는 세계 최남단 도시로 ‘깊은 만(灣)’이라는 뜻을 가졌지만 ‘핀 델 문도(Fin del Mundo)’, 즉 ‘세계의 끝’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있다.

육로로 갈 땐 버스 탄 채 마젤란 해협 건너 


아르헨티나는 남미 국가들 중에서도 유럽을 가장 많이 닮았다. 특히 우수아이아는 유럽에서 건너온 이주민들이 많이 정착했기 때문에 도시의 분위기도 전형적인 유럽 도시를 옮겨온 듯 비슷하다. 이 작은 항구 마을은 바다로 나가는 좁은 길목인 비글 해협을 마주하고 있다. 비글해협은 영국의 찰스 다윈이 남아메리카 항해 때 이용한 선박 비글호에서 따온 이름이다. 

 

▲ 마젤란 해협을 건너는 선박.

아르헨티나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주로 엘 칼라파테(El Calafate)에서 비행기를 타거나 버스로 우수아이아에 들어간다. 비행기는 국내선으로 1시간 20분 정도 걸리지만 육로로 갈 때는 15시간이 넘게 걸리는 강행군의 일정이 된다. 그러나 그 힘든 여정을 선택하는 이유가 있다. 바로 마젤란 해협을 통과하기 때문이다. 버스는 선박에 탄 채 20분 정도 걸려 해협을 건넌다. 우수아이아가 있는 티에라 델 푸에고 섬은 칠레와 아르헨티나가 땅을 나누고 있어서 아르헨티나 국내인 우수아이아로 가는데도 칠레로 넘어갔다가 다시 아르헨티나로, 즉 하루에 두 나라를 왔다 갔다 하는 드문 경험을 하게 된다. 


티에라 델 푸에고 섬은 얼핏 보면 남아메리카 대륙 맨 끝에 꼬리처럼 붙은 듯 보이지만 좁은 바다가 길처럼 뚫고 지나가 대륙과 떨어뜨려 놓았고, 군데군데 작은 섬도 여럿 있다. 좁은 바닷길에는 마젤란 해협, 비글 해협, 마이레 해협 등이 있고, 대륙 최남단 끝을 도는 곳은 케이프 혼 항로다. 이 항로는 강풍이 심하고 해류도 빠른데다 남극에서 흘러나온 유빙도 떠돌아 항해하기에 아주 위험하다. 이와 달리 마젤란 해협은 1520년 포르투갈 탐험가 마젤란이 발견한 뒤로 비교적 안전하게 여겨져 유럽에서 태평양으로 항해하는 선박들이 오랫동안 이용해 왔다. 오늘날에도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지 못하는 대형 선박들은 이곳을 거치는 경우가 많다. 


‘슬픔을 묻는 곳’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탓인지 도시에 발을 딛고 보니 왠지 우울한 기운이 감도는 듯하다. 비까지 내리고 있어 나그네의 마음은 더욱 스산하다. 도시를 뒤에서 병풍처럼 받쳐주듯 서 있는 설산도 때를 잘못 맞춘 탓인지 눈을 털어내고 거무튀튀한 색을 입고 있어 기대한 것처럼 멋있는 풍광은 보여주지 못한다. 시가지는 산 쪽으로 비탈지게 형성돼 있는데 건물 대부분이 항구 쪽을 바라보고 있어 어디서나 확 트인 바다를 볼 수 있다.

비글 해협 투어…펭귄섬과 빨간 등대 구경


▲ 선착장에서 바라본 도심 풍경. 뒷산에 눈이 별로 없다.

바다를 둘러보는 비글 해협 투어에 나선다. 대형 크루즈선을 타고 펭귄이 사는 마르틸로섬을 가거나 그 유명한 빨간 등대를 보고 돌아온다. 그러나 문제는 날씨다. 비에다 바람까지 심하게 불어 펭귄섬까지는 운항을 할 수 없단다. 그곳에 가면 직접 섬에 내려 펭귄과 함께 사진도 찍고 걸어 다니기도 하는데 그럴 수 없어 무척 서운했다. 별 수 없이 시간이 덜 걸리는 빨간 등대가 있는 곳까지만 다녀오기로 했다. 선창에는 세찬 빗줄기와 거센 파도에 바닷물까지 덮쳐 흘러내리는 통에 바깥 풍경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상당히 큰 배인데도 몹시 흔들려 지지대를 잡지 않으면 걷기도 힘들다. 한 시간 정도 힘겹게 달리자 빨간 등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다행히 등대가 보이는 곳까지 상당히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멀리서 따닥따닥 붙어 있던 것들은 가마우지, 물개 등 바다동물들이다. 높은 파도에 휘몰아치는 물보라가 섬을 쓸어버릴 듯 기세가 맹렬한데도 그들은 여유롭게 꼬물거리고만 있다. 불안해 하는 사람들과 달리 오히려 태연히 우리를 바라본다. 그들은 사람들이 왜 이곳을 찾는지 알까. 장국영은 영화 ‘해피 투게더’에서 언젠가 이곳을 찾아갈 것이라고 다짐했지만 결국 오지 못했고, 이젠 그 자신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등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이 순간에 우리들은 과연 가슴 속 슬픔을 바다에 묻고 있는 것일까. 


시내에 있는 세상의 끝 박물관(Museo del Fin del Mundo), 감옥 박물관 등에서는 우수아이아에 대해 좀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세상의 끝 박물관에는 티에라 델 푸에고 섬에 살았던 여러 민족의 생활 모습과 비글 해협에 사는 바다사자 등 해양 생물과 각종 새의 박제도 있어 볼거리로 손색이 없다. 또 감옥 박물관은 과거 교도소로 사용했던 건물로, 20세기 초에 죄수들이 직접 지은 것이라고 한다. 자신이 갇힐 감옥을 직접 짓게 하는 것은 너무 잔인한 조치가 아닐지. 1947년 감옥이 폐쇄된 뒤 박물관으로 문을 열었는데, 당시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어 관람을 한 사람들도 엇갈리는 반응을 보인다. 

 

▲ 개업한 지 100년이 넘은 알마센 라모스 헤네랄레스 카페 내부.

분위기가 색다른 알마센 라모스 헤네랄레스(El Almacen de Ramos Generales) 카페는 1906년에 문을 연 곳이다. 간판에 박물관이라는 이름도 붙어 있듯이 각종 골동품이 그 연륜을 드러낸 채 실내 선반을 가득 메우고 있다. 식사를 하면서 통기타 가수가 들려주는 생음악에 젖어 여독을 푸는 사람들로 항상 붐비는 편이다.

“일생에 한 번…남극으로 가세요”


말끔하고 활기찬 거리를 보면 슬픔이 차지할 자리는 없는 것 같다. 거리 곳곳에 노점상이 있고, 정부의 공무원 연금정책에 반대하는 데모도 벌어지듯 여느 곳과 다름 없는 일상이 펼쳐진다. 유독 여행자의 눈길을 끄는 것은 남극 여행을 권하는 문구다. “다음의 주인공은 당신입니다”라며 남극 탐험에 도전해 볼 것을 부추기고 있다. ‘일생에 한 번’을 강조하고 있으니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이곳에서 남극까지는 1000km 정도. 서울과 부산을 왕복하는 거리와 비슷하다. 남극 기지로 여행을 하려는 사람들은 반드시 이곳에서 출발을 준비해야 하는 중간 기착지인 셈이다. ‘세상의 끝’인 이곳이 또 다른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시작 지점이라는 반전(反轉)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 세상의 끝 표지판.

도심 외곽에 있는 티에라 델 푸에고 국립공원에는 한적한 숲과 호수를 볼 수 있는 트래킹 코스가 잘 조성돼 있다. 특히 세상 끝 우체국은 모든 이의 편지를 받아 전 세계로 보내준다. 오래 전 헤어진 연인을 잊지 못하고 이곳에서 마지막 편지를 보내며 자신만의 작별의식을 치르려고 왔다는 한 청년의 특별한 사연에 잠시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모두가 슬픔을 버리려 하지만 정작 슬픔은 버려지지 않는다. 차라리 그 슬픔을 딛고 넘어서는 것은 어떨까. 바닥에 발이 닿았을 때 비로소 도약할 수 있다. 세상의 끝에서 힘차게 뛰어올라 세상 속으로 벅차게 뛰어들자!

 

글·사진 남인복(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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