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니들이 비극을 알아?" 삶과 죽음에 대해 던지는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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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이 비극을 알아?" 삶과 죽음에 대해 던지는 질문들

이성봉
기사승인 : 2019-04-23 14:51:32
김은성 극본, 김광보 연출의 연극 <함익>을 보고

<함익>은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는 연극이다.

원작에서 선왕을 죽인 삼촌이 자신의 어머니와 결혼하고 왕의 자리까지 오르자 복수심과 광기에 휩싸였던 햄릿은 성(性)과 배경을 바꿔, 30대의 재벌 2세이자 연극과 교수인 함익으로 변신한다.


▲ 연극 '함익'은 심리극이다. '햄릿'의 서사보다 심리적인 상황을 재창작했다. 익(최나라, 아래)과 분신 익(이지연, 위) [세종문화회관 제공]

극중 반복된 '왜?'라는 대사처럼 연극은 인물의 생각과 행동에 많은 질문을 던진다. 무대 속 연기가 목적을 갖고 해야 하듯이 행동 하나 하나 '왜'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깔고 있다. 김광보 연출은  극중극이라는 장치를 통해 복잡한 관계 설정을 단순화함과 동시에 무엇을 표현할 것인가애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함익'은 '햄릿'의 서사보다 심리를 파고드는 심리극이다. 김은성 작가는 '함익'에 대해 "햄릿을 각색한 것도 번안한 것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햄릿 안에 숨어 있는 행간의 심리를 주목했다고 말로 작품 의도를 표현했다.

김 작가는 "처음 연극 수업을 듣고 발표했던 내용이 <햄릿>이었다. 극 중 연우의 대사들은 지금까지 내가 <햄릿>에 대해 생각해 온 것들, 그리고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메모한 것을 정리한 것이다. 그동안 마음속에 간직했던 작품에서 모티브를 얻어 연극 <함익〉속 인물과 대사를 만들었다" 고 말했다. 


▲ 익과 아버지 병주(강신구), 이복동생 (최하현), 계모 홍보라역(조아라)(왼쪽으로부터). 아버지의 권위에 눌려 가면속에서 살아간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주인공 여주인공 함익은 20년 가까이 의심을 품고 있으면서도 아버지 함병주(강신구)의 폭력적인 권위에 맞서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한 채 가면을 쓰고 인형처럼 시키는 대로만 살아가고 있다. 그런 그녀가 마음 속 욕망을 드러내며 자유로워지는 때는 거울 속에 살고 있는 내면의 분신과 대화를 나눌 때뿐이다.

복수와 일탈을 꿈꾸며 숨 막히는 온실 속에서 살아가던 익은 그룹 산하의 대학교 연극학과의 교수로 부임한다. 그리고 '햄릿' 공연의 지도를 맡게 된 그녀 앞에 복학생 연우가 나타난다. 파수꾼 버나도 역을 맡은 연극청년 연우와의 만남은 외형만 화려했던 익의 고독한 내면을 조금씩 흔들기 시작한다.

극중극 버나도가 처음 던지는 '누구냐'라는 말은 익 자신에게 던지는 메시지로도 읽힌다. 스스로 "나는 '햄릿'인가 아니면 '줄리엣'인가" 하는 혼란 속에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햄릿'으로 태어나 '줄리엣'으로 살고 싶은 복잡한 심리를 표현해 주고 있다.


▲ 연우역으로 출연하는 오종혁 [세종문화회관 제공]

익이 교수로 임용되어 가르치는 연극학도인 연우(오종혁,조상웅)가 극중극인 '햄릿'에서 버나도역으로 나오는 첫 장면은 '누구냐'라는 대사로 시작한다. 극의 흐름 가운데 반복해 던져지는 '누구냐'라는 문제제기는 가면 속에 숨기고 있는 익의 내면을 향해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듯 파문을 일으킨다.

김 연출은 최소한의 언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해 최대한의 극적효과를 얻는다. 어렵고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단순하고 반복된 단어를 통해 강한 이미지를 연출하고 단순화시켜 관객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돕는다.

익 개인에 대한 복수에서 시발된 '햄릿' 연극화 과정이 궁극적으로는 집단적인 사회적 모순에 대한 대응으로 터져 나오는 형태로 표출된다. 익에게 햄릿이 개인적인 비극성의 표현이었다면, 학생들에게 '햄릿'은 자신들의 존재의 비극성을 표현하는 도구였던 것이었다.

익은 현실에서 가면을 쓴 채 자신의 복수심과 욕망을 숨기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런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내면의 분신 익과 대화할 때뿐이다. 마지막 장면의 열린 결말은 익의 죽음을 뜻하기도 하지만 가면을 벗어버리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익은 "인생이라는 무대에 섰다면 누구도 '사느냐 죽느냐'라는 문제를 피해 갈 수 없다"고 말한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인 익과 "살아있는가, 죽어있는가" 그것이 문제인 연우는 관점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익과 연우 두 사람 사이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는다.

익은 "니들이 셰익스피어를 알아? 니들이 비극을 알아? 웃기고 있네. 비극, 그게 뭔지 알아? 비극을 아무나 가질 수 있는 줄 알아? 정말 웃기고들 있어. 니들은 비극을 가질 수가 없어."라는 대사처럼 연극을 하고 있는 연우를 비롯한 학생들의 대사 속에는 비극적인 상황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분노한다.

학생들이 보는 익은 그저 부모를 잘 만나 교수로 임용되고 재벌 2세로 지내는 금수저일 뿐이다. 학생들의 연극은 생존이고 처절하게 살아가는 도구이자 투쟁이고, 살기 위한 수단이다.  

'함익'은 열린 결말로 보는 이마다 다양한 자의적 해석을 유도한다. '함익' 역을 맡은 최나라는 '햄릿'과 '줄리엣'의 심리를 오가며 독특한 개성과 강렬한 에너지를 분출했다. 분노를 감추고 절제를 통한 차가운 면을 보이다가 분신(이지연)과의 만남에서는 살가운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분신은 익의 내면에서 강한 복수심으로 뒤덮인 익의 마음속에서 욕망을 끄집어내며 독특하면서도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연출 과정부터 강조되었을 법한 배우 간의 호흡이 이번 연극을 템포감이 있는 극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 자칫 무거운 연극으로만 인식될 수 있는 작품을 긴장감 있게 전개한 데는 템포감이 가장 적절한 무기로 사용되었다.


▲ 김은성 작가는 원숭이 캐릭터인 '햄릿(박진호)'을 출연시켜 주인공의 감정을 전달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김은성 작가는 최근 서울시극단과의 작품 <그 개>에서 무스탕이라는 유기견과 보쓰라는 도사견을 등장시켜 사회 문제를 다룬 바 있었다. 이번 작품에서도 덴마크산 원숭이 '햄릿(박진호)'을 출연시켜 주인 옆에서 호가호위 하는 캐릭터를 만들어 낸다. 원숭이 '햄릿'을 잔인하게 죽이는 과정은 익이 눌러왔던 감정을 폭발시킨다.

연극<함익>은 오는 28일까지 세종M씨어터에서 공연한다.


KPI뉴스 / 이성봉 기자 sblee@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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