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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잃어버린 골목의 시간들

UPI뉴스
기사승인 : 2018-11-15 10:45:38
서울 종로구 익선동
▲ 익선동 골목 풍경 [정병혁 기자]

 

종로3가역은 평일보다 주말에 더 붐빈다. 익선동을 가려면 출구 번호를 확인할 필요없이 젊은 사람들을 따라가면 된다. 익선동 골목에 들어서려면 갈매기살 굽는 냄새를 무사히 지나야 한다. 불판에서 익어가는 고기에 자꾸만 눈이 가면 줄을 서서라도 일단 갈매기살을 먹고 골목 구경을 하면 된다.

한옥밀집지역인 종로구 익선동 166번지는 철종의 사진 전계대원군의 사손들의 사저인 누동궁(樓洞宮)이 있던 지역이다. 누동궁 대문에 딸린 좌우 행랑채가 매우 커서 누동궁과 그 주변을 익랑골 또는 익동, 익랑골 등으로 불리었다. 기상관측를 맡아보던 관상감의 부속기관 ‘측후소’가 1907년에 익선동에 설치되었고, 측후소가 송원동으로 이전하면서 그 자리에 현재의 한옥마을이 만들어졌다.

현재 익선동에 남아 있는 한옥을 전통적인 한옥과 구분해서 ‘도시형한옥’이라고 부른다. 도시형한옥은 주택업자들이 택지를 사들여 표준화된 설계도 만든 한옥을 말한다. 당시 경성에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이 등장한 것처럼 새로운 형태의 한옥이 등장했다고해서 ‘모던 한옥’이 라 부르는 사람도 있다. 일제의 토지수탈과 농민들의 소작농 전락은 도시로 이주를 부추겼다. 1920년대부터 몰려드는 사람들이 많아서 서울은 집이 부족했다. 도시형한옥은 이런 요구로 만들어진 새로운 형태의 한옥이었다.

도시형한옥은 전통적인 한옥과는 몇 가지가 다르다. 나무와 흙이 전통 한옥의 주재료였다면 도시형 한옥은 벽돌, 유리, 함석, 시멘트 등을 건축재료로 사용하였다. 건설업자가 계획적으로 정형화된 필지에 지었다는 것도 도시형한옥의 특징이다. 익선동의 골목이 구불구불하지않고 가지런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골목 어귀에 있는 카페로 들어섰다. 나무 대문 문고리 주변을 함석이나 쇠로 장식했다. 카페나 술집으로 개조된 한옥을 자세히 보면 원래 구조를 짐작할 수 있다. 천장을 막아 실내로 만들었지만 원래 한옥의 마당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익선동 개발자는 집을 ㄴ, ㅁ자로 앉혔다. 마루의 유리문 몇 짝이 아직 그대로다. 처마의 물받이 홈통도 흔적이 남아 있다. 내가 앉은 곳은 작은 마당이 있었으리라. 그 당시엔 집에 마당이 없다는 것이 생소했던 걸까. 마당이 있었다는 게 갑자기 부러웠다. 사람들은 마당 한켠에 장독대를 만들고 화단을 가꾸었으리라. 사계절의 변화를 집에서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보면 사람이 집을 만들지만 어떤 집에 사느냐가 사람들의 생활을 지배하기도 한다.

한복을 입은 젊은 남녀가 골목을 막고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한 장씩 찍더니 지나가는 사람에게 핸드폰을 맡기고 둘이 같이 찍는다. 멈추고 기다릴 수 밖에 없다. 몇 걸음 걸으니 여섯 명의 여학생들이 대문 앞에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찍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모양이다. 웃는 소리가 떠들썩하다. 익선동 골목에서는 흔한 풍경이다.

집과 집은 벽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이어져 있다. 앞 집과는 골목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지만 지붕이 맞닿을 듯 가깝다. 독립된 공간이 보장되어 있지만 이웃과도 얼마든지 소통할 수 있는 구조다. 대문만 열면 앞집이고 앞집 대문이 반쯤 열렸으면 마당에 무슨 꽃이 피었는지 들여다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대문을 나서서 큰 길까지 가기 전에 골목에서 이웃을 만나고, 아이들은 골목에서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놀았을 것이다. 어른들은 골목 한구석에서 장기를 두거나 수다를 떨었을까.
 

▲ 익선동 골목 풍경 [정병혁 기자]

익선동이 특별한 것은 좁은 골목 때문이다. 골목을 남기지 않고 큰 건물을 지으며 도시는 거대해졌다. 거대함에 압도되고 감탄하지만 쉽게 다가갈 수는 없다. 익선동에서 액세서리 가게나 공방 앞에 멈춰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은 그 가게들이 좁은 골목에 있기 때문이다.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골목이 생각나는 사람들은 좁은 골목을 걷는 것만으로도 옛 추억에 젖을 수 있다. 골목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골목의 소소한 가치를 느끼게 해준다. 골목은 우리가 잃어버린 세계다. 잃어버린 사람도, 경험하지 못한 사람도 골목길을 동경하며 익선동을 걷는다.

주말 익선동은 대부분 데이트족이다. 가끔 가족 단위 나들이족도 보이지만 혼자 온 사람은 드물다. 북적거려서 혼자 음식점에 들어가는 것도 차를 마시러 가는 것도 쉽지 않다. 왠지 쑥스럽다. 따라서 주말 익선동 구경은 될 수 있으면 누군가랑 같이 해야 한다. 애인이 없다면 같이 갈 친구를 물색하자. 갈매기살을 미끼로 사용해도 좋을 것이다. 친구가 걷는 걸 좋아한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은 산책을 할 수 있다. 좁은 골목을 돌아다니다보면 저절로 잃어버린 ‘골목의 시간들’을 만날 수 있다. 혹시 어쩔 수 없이 혼자 나섰다면 만화방에 틀어박혀 있는 걸 추천한다. 바빠서 읽지못한 만화를 쟁여두고 읽는 게 툴툴거리는 친구를 데리고 다니는 것보다 훨씬 나을지도 모른다. 물론 평일에는 혼자 어슬렁거리기에 그만이다. 어디서 찍어도 좋은 사진을 건질 수 있다. 골목이 주는 또 다른 매력이다.

이 글은 익선동 카페 ‘뜰안’에서 쓰고 있다.

강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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