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도시산책자] 저마다 사연 어린 취준생들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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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저마다 사연 어린 취준생들의 거리

관리자 Google구글에서 선호하는 출처로 추가
기사승인 : 2019-07-06 11:45:56
- 노량진

9호선 노량진역 7번 출구로 빠져나오자 바로 노량진 삼거리였다. 장승배기로 넘어가는 길과 노량진에서 영등포로 가는 길이 만나는 지점이다. 잠깐 서 있었는데 떠밀리듯 노량진역 광장까지 갔다. 노량진역 광장에 이르러서야 산책 코스를 정하고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6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역광장은 분주했다. 전철역을 빠져나와 장승배기나 숭실대 쪽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버스 정류소로 가는 사람들, 학원 강의를 듣고 집으로 가려고 노량진역으로 온 사람들, 노량진 근처에서 저녁을 먹으려는 사람들 등 동선이 얽히면서 광장은 복잡했다. 

 

▲ 서울 동작구 노량진 컵밥거리.[정병혁 기자]


한강대교 쪽으로 걷다가 길 건너 컵밥거리, 고시촌 골목을 어슬렁거리는 걸로 코스를 잡았다. 사육신공원을 가보기엔 좀 늦은 듯해서 다음 기회에 가 보는 걸로 마음을 먹었다. 해는 졌지만 아직 캄캄하지 않은 시간. 동네를 산책하기에 딱 좋은 시간이었다. 


만양로를 건너 컵밥거리로 들어서자 노량진역 광장보다 더 북적거렸다. 근처에 사는 취준생이 모두 몰려나온 것만 같았다. 컵밥은 말 그대로 컵에 밥을 넣고 그 위에 토핑을 올리는 간편식을 말한다. 밥과 토핑 재료를 섞어 그 자리에 서서 먹으면 끝이다. 혼자 식당을 가기 뻘쭘할 필요도 없다. 컵밥을 받아들고 10분이면 충분히 다 먹는다. 여러 가지 재료가 섞인 밥이니까 영양도 균형이 잡혔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가격이 싸다. '컵밥'이라고 통칭하지만 종류가 많다. '폭탄밥', '비빔밥', '소시지와 오므라이스', '김치계란볶음밥', '팬케익' 등등. 밥 먹는 시간까지도 아껴야하는 사람들이 애용하는 메뉴들이다. 가게 앞에 서서 컵밥을 먹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취준생이라면 빨리 시험에 합격해서 노량진을 떠나야지, 생각할 것이다. 수험생이라면 시험이 끝나기를 기다릴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위해 한시적으로 컵밥을 먹으며 버틸 수는 있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라면 금방 지치고 말 것이다. 


컵밥 거리가 지금 모양을 갖추게 되기까지 구청과 상인과 주민의 노력이 있었다. 김훈 소설 <영자>에 노량진 노점상과 공권력의 갈등이 드러나는 대목이 있다.

내가 광개토 고시텔 일층 식당에서 삼천오백 원짜리 오므라이스로 점심을 먹을 때 창밖 거리에서 갑자기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더니 건장한 사내들이 달려들어서 노점들을 부수었다. 사내들은 우선 프로판 가스통 밸브를 잠가서 불을 끊었고, 밧데리, 조리도구 들을 끌어냈고, 천막을 걷어서 트럭에 실었다.
 

▲ 국철 1호선 노량진역 광장. [정병혁 기자]


만양로 14번길을 따라 가면서 좌우로 가게들을 둘러봤다. 식당과 편의점, 커피가게, 공인중개사 같은 작은 가게가 이어졌다. 공부하다 답답하면 코인 노래방에 가서 몇 곡 부르고 오는 사람이 많은 걸까. 코인 노래방이 자주 눈에 띄었다. 책을 펴 놓고 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도 식당 유리문 안에 보였다. 길거리 사람들도 식당에 앉은 사람들도 대부분 편한 복장에 삼선 슬리퍼를 신었다. 보증금 500만 원에서 1000만 원 사이. 월세는 대략 35만 원부터 70만 원정도까지이다. 공인중개사 사무소 앞에 붙은 광고 앞에 서서 김훈은 소설을 다시 떠올렸다.

노량진 고시텔 건물은 주상복합 십층이었다. 일층은 박리다매형 대형 식당과 편의점, 약국, PC방 등이 세들었고 이층 삼층은 9급 행정직, 9급 법원직, 9급 세무직, 9급 경찰직, 9급 소방직, 9급 보건직 시험 학원의 강의실이었다. (중략) 9급 공무원 시험 준비생들은 원룸에서 잠자고, 트레이닝 바지에 삼선 슬리퍼를 끌고 이층에 내려와서 강의 듣고 일층 식당이나 노점에서 밥을 먹었다.

삼선슬리퍼를 신은 사람들이 저마다 '영자' 같은 사연을 품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어쩐지 낭패감이 들었다. 피하고 싶은 현실과 마주치고 말았다는 느낌이었다. 소설 속 영자는 9급 준비생이다. 고향의 아버지가 배를 판돈으로 방을 얻어 준다. 싱크대와 욕실이 딸린 원룸으로 보증금 육천만 원에 월세 십만 원의 방이다. 먹고, 자는 시간 외에는 시험만을 생각해야 하는 하루하루가 지난다. 방세를 나눠 내던 동거인 '나'는 시험에 합격해서 노량진을 떠나지만 '영자'는 어찌 됐는지 알 수 없다. 경북 산골 마을 면사무소에 근무하는 '나'가 어느날 문득 술기운에 영자에게 전화를 걸지만, 사용하지 않는 번호라는 기계음만 돌아온다. 

 

▲ 노량진 컵밥거리의 한 건물 음식점 안내판.[정병혁 기자]

  
노량진 취준생은 노량진을 '노량도'라고 부른다. 그곳은 다른 곳과 분리된 공간이다. 탈출을 꿈꾸지만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취준생 중 많은 사람은 취업의 덫에 걸려 십 년 가까이 노량진을 벗어나지 못하기도 한단다. 컵밥으로 배를 채우고 다시 고시원으로 돌아가는 수많은 '영자'의 그림자가 길다. 어디로 갈지 막막해서 한동안 골목에서 서성거렸다.

 

강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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