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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별을 따라가면 만화 속 주인공이 된다

UPI뉴스
기사승인 : 2019-05-17 11:15:43
성내동

성내동 골목은 많이 변해 있었다. 희망지사업 ‘이웃기웃’을 진행하면서 성내동을 몇 번 간 적이 있고, 사람들과 기록을 핑계로 몇 번 성내동을 기웃거렸다. 하지만 마음 먹고 걸어본 적은 없다. 마을 주민들이 사진으로 담아온 풍경으로 성내동을 익혔고 거기에 이야기를 입히며 동네 얘기를 많이 들었다.

 

▲ 성내동 강풀만화거리 [정병혁 기자]

강동역4번 출구로 나와 150m쯤 걸었을까. 성내동으로 들어가는 골목이 보였다. 거기가 강풀 만화거리가 시작되는 곳이다. 바닥에 그려진 별을 보며 골목으로 접어들면 강풀 만화의 세상이 열린다. 강동구 주민인 강풀 작가는 강동구를 배경으로 만화를 많이 그렸다. 만화거리에는 강풀의 작품 ‘바보’, ‘순정만화’, ‘그대를 사랑합니다’ 의 장면 중 60여 개가 담과 벽, 문에 그려져 있다. 벽화 옆에는 원작의 제목과 부제, 그리고 짧은 설명이 있다.


벽화를 그릴 때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반영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벽화가 내 이야기 같다. 골목을 돌아서는데 전봇대가 앞을 막는다. ‘사는 건 말이다 뭐 별거 아냐. 젊었을 때는 좋은 추억 거리를 만들고 나이 들어선 그 추억을 되씹으면서 사는 게 인생이지.’ 강풀 <그대를 사랑합니다>에 있는 말이란다. 만화거리 입구에서 안내서를 챙겨도 좋고, 바닥의 별을 따라 자유롭게 이리저리 돌아다녀도 좋다. 


별을 따라 걷다보면 웃는 승룡이가 반갑게 인사하는 벽화와 만난다. 그곳이 ‘승룡이네집’이다. 강풀 <바보>의 주인공 승룡이가 문 앞을 지키고 있는 그곳은 주민 커뮤니티 공간이다. 커피 한 잔 주문해 놓고 천천히 둘러본다. 


▲ 주민 커뮤니티공간 ‘승룡이네집’ [정병혁 기자]


1층은 사람들이 모이는 카페 겸 공동체 공간, 2층은 만화책을 읽을 수 있고, 3층은 만화가들의 작업실이다. 옥상까지 둘러보고 내려오는데 2층 만화공간으로 세 명의 아이들이 들어간다. 학원에 갔다오는 길인 듯 보였다. 아이들은 익숙한 듯 만화책 몇 권을 꺼내서 읽기 시작한다. 마루에 누워 책장을 넘긴다. 동네 한가운데 이런 공간이 있다니. 갑자기 성내동 사람들이 부러워졌다. 

천호대로168가길에는 개성있는 가게들이 많았다. 책을 직접 만들 수 있는 서점, 맥주를 마실 수 있는 펍, 일본가정식 식당, 대나무 수공예점, 디저트 카페, 와인바 등 다양했다. 한때 공유부엌으로 사용되었던 ‘소소부엌’은 ‘내일부엌’으로 간판이 바뀌었다. 부엌은 여전히 공유부엌으로 남아 있었지만 안쪽 사무실에는 성내동 도시재생 공동체 활성화지원센터가 입주해 있었다.


문 닫힌 대나무 수공예점을 유리창으로 들여다봤다. 어릴 적 부엌에서 봤던 대나무 채반이 걸려 있다. 대나무를 엮은 바구니와 가방도 보였다. 꼭 필요한 물품을 만들기 위한 옛날의 노동이 다소 변형되어 공방의 작업이 된 것 같았다. 꽃케이크 가게도 엿봤다. ‘추억이 흐르는 이발소’는 만화거리의 명물이다.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흰가운을 입고 머리를 깎고 있는 이발사의 뒷모습을 유리 너머로 한참 쳐다봤다. ‘이발소’와 ‘이발사’라는 말이 어색해져버린 시대에 눈 앞에서 ‘이발사’를 만났다. 

 
얼마 전 TV프로그램에 이 골목 식당들이 나왔다. 와인집, 파스타집, 분식집, 중국집이 맛평가와 주방을 점검받는 프로그램이었다. 성내동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해 주민의 제보로 방송까지 타게 되었다고 한다. 성내동 주민들의 동네 사랑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걷다보니 성내종합시장 입구였다. 마을기록사업을 할 때 주민들이 ‘우리동네 단골가게’를 주제로 글을 한 편씩 썼는데 성내종합시장 안에 있는 가게가 많았다. 글에서 봤던 미용실과 닭집이 보였다. 글과 사진으로만 봤을 뿐인데 와본 것 같이 익숙했다. 기분이 저기압일 땐 ‘고기 앞으로,’라는 정육점 광고가 재미있다. 구립웃말경로당 앞을 지나자 언젠가 칼국수를 맛있게 먹었던 식당이 나왔다. 


성내동에서 쭈꾸미 골목을 빼놓을 수 없다. 쭈꾸미 골목은 상점마다 불이 환했다. 친구와 연인과 가족과 마주앉아 쭈꾸미를 먹는다. 얘기를 나눈다. 시끄럽고 부산한 쭈꾸미 골목에 쭈꾸미집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쭈꾸미가 아닌 것을 파는 가게가 눈에 띄었다. 스시집, 디저트 카페, 그리고 골목 끝에서 발견한 꽃가게. 


▲ ‘추억이 흐르는 이발소’ [정병혁 기자]


바로 앞이 천호역인데 돌아서서 성내동 골목으로 다시 들어갔다. 혹여 뭔가 놓치지 않았는가 싶어서 강풀 만화거리를, 작은 가게가 밀집된 골목을, 승룔이네집을 둘러봤다. 만화거리 별을 따라 걸으며 놓쳤던 것들이 보였다. 최근에 새로 지은 건물과 짓고 있는 건물들이 많이 보였고, 가로등 환한 골목으로 제법 많은 사람들이 오갔다. 


성내동은 성 안쪽 마을의 한자식 표기이다. 풍납토성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로 성안말, 안말, 성내리로 불리었다. 과거의 성내동에는 벽돌, 토관, 기와, 화분 등을 굽는 공장이 많았다고 한다. 천호역 근처에 남아 있는 ‘동명 대장간’ 같은 곳이 그런 흔적이라고 한다. 동명 대장간을 떠올리자 전철을 타기 전 마지막으로 그곳에 가 보고 싶어졌다. 그러나 이미 문을 닫았을 시간이었다. 성내동의 과거 탐색은 다음으로 미루고 전철역으로 향했다.


강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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