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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산책자] 백남준, 김광석…창신동 골목골목 남은 노래들

UPI뉴스
기사승인 : 2019-03-11 13:53:02
회오리길에서 듣는 삶의 노래

골목에는 고유의 노래가 있다. 오랜 시간 골목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쌓이면 노래가 된다. 아담한 기역자 한옥 ‘백남준 기념관’ 앞에 서서 창신동의 노래는 무엇일까, 생각했다. 

 

▲ 서울 종로구 창신동 백남준 생가터에 자리한 ‘백남준 기념관’ [정병혁 기자]

백남준은 1932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고 다섯 살부터 1950년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 창신동에서 살았다. 2015년 창신·숭인 도시재생 선도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백남준이 성장기를 보낸 창신동 197번지 일대 집터에 위치한 한옥을 매입해서 ‘백남준 기념관’을 만들었다. 


입구로 들어서면 백남준의 기억을 테마로 엮은 열 편의 노트가 펼쳐진다. 그의 말과 글, 작업의 단상, 지인들의 회고담들이 정리되어 있다. 군데군데 설치된 작은 모니터로는 백남준의 실험적 연주 영상이나 지인들이 기억하는 백남준에 대해 볼 수 있다. 기억의 노트에는 백남준이 17살 때 들은 김순남의 곡들이 그의 음악과 예술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내용도 있다. ‘산유화’나 ‘진달래꽃’으로 유명한 김순남의 음악이 백남준 예술에 많을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 ‘백남준 기념관’ 내부 작업실 모습 [정병혁 기자]


‘백남준 버츄얼뮤지엄’에는 그의 예술 작업 과정을 한눈에 알 수 있도록 아카이빙되어 있다. 작고 낡은 나무 의자에 앉아 한 예술가의 평생 작업을 훑어볼 수 있다. 기념관 카페에 들렀더니 방금 전에 해설을 해주셨던 분이 커피를 뽑아주신다. 지역 주민들이 공동으로 카페도 운영하고, 도슨트도 맡고 있다고 한다. ‘백남준을 기억하는 집’에서 만난 ‘백남준을 기억하는 사람들’이었다. 

 

채석장 절개지를 바라보며 창신동 깊숙이 걸어 들어갔다. 다닥다닥 붙은 연립주택 사이를 걷는데 오토바이들이 끊임없이 오간다. 김광석의 학창 시절이 담긴 김광석의 집터. 발 아래 동판에는 그렇게 새겨져 있었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창신동으로 이사 온 김광석은 연립주택 2층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사계’의 노랫말에는 창신동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되면서 길이 좁아졌다. 계단만 있는 곳도 있었다. 사람들은 이곳을 ‘절벽 마을’ 혹은 ‘돌산 마을’이라고 부른다. 이방인으로 마을을 한번 둘러보는 것과 그곳에 사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계단을 오르며 재개발이 아니라 도시 재생을 선택한 창신동 사람들의 여러 가지 고민을 생각했다. 


창신소통공작소까지 와서 채석장 조망점에서 남산과 시내를 바라보는 것이 창신동 산책의 절정이며 반환점이다. 미세먼지 때문에 아름다운 석양을 기대할 수는 없었지만 채석장 조망점에서 지는 해를 보는 감회는 특별했다. 창신동이 있는 낙산 자락은 원래 마을 전체에 복숭아와 앵두나무가 심겨져 있었단다. 붉은 열매 나무로 둘러싸여 있어서 ‘홍숫골’ 혹은 ‘홍수동’으로 불렸다고 한다. 복숭아꽃과 앵두꽃이 핀 봄날의 낙산 자락을 상상하니 올라오면서 봤던 집들이 꽃처럼 보였다. 

 

▲ 창신골목시장을 안내하는 옛날TV 모양의 독특한 입간판 [정병혁 기자]

 

회오리길을 따라 내려오다보면 창신동 라디오 ‘덤’이 입주해 있는 회오리마당이 보인다. 그 급경사를 오토바이가 올라간다. 굉음을 내며 오르는 오토바이를 바라보니 창신동이 들려주는 노래가 들리는 듯하다. 아무리 힘들어도 지치지 않고 돌아가는 미싱 같은 삶의 노래가 말이다. 그 노랫소리가 척박한 삶을 지탱해 줬으리라.

 

강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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