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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인생길은 몇 굽이냐"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Google구글에서 선호하는 출처로 추가
기사승인 : 2022-09-16 11:04:30
이재무 시인 새 산문집 '괜히 열심히 살았다'
에두르지 않고 직격하는 세상과 문학 이야기
"열심히 사는 삶, 미덕이라는 고정관념 버리자"
"후회는 현재를 좀먹는 무능한 자의 나쁜 버릇"

'감히 말하건대 주체적 독자들은 그의 소통 불능 시편들에 대해 전혀 주눅들 필요가 없다. 난해함은 미숙이지 심오함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부끄럽게도 오래전부터 우상을 숭배하는 집단 최면이 존재해 왔다. 이런 증세는 지식인 사회에서 더욱 심하다. 나는 김수영을 과도하게 숭배하는 현상이 불편하다.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그 대상이 누구이든 간에 신화화란 경계와 주의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평자들은 부지불식간 김수영 시편들을 자기주장의 합리화를 위한 수단과 도구로 삼아온 것은 아닐까.'

▲산문집을 펴낸 이재무 시인. 세상과 문학을 대하는 태도를 중심으로 좋은 시를 쓰는 법과 일상의 단상까지 고루 담았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시인들의 시인이요, 거의 모든 후대 평론가들이 높이 평가하는 김수영(1921~1968) 시인을 함부로 비판하기는 쉽지 않다. 이재무 시인이 최근 펴낸 산문집 '괜히 열심히 살았다'(천년의시작)에는 작심하고 쓴 '김수영에 대한 불편한 진실'이 실려 있다. 에두르지 못하고 직격하는 스타일인 이재무다운 접근이다. 

그는 "김수영은 소시민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글을 무기로 불의한 시대에 맞서 혼신을 다해 싸워 온, 우리 시문학사에서 보기 드문 시인이었다"면서 "이 점을 높이 산 이들 중 대개는 칭송하고 떠받들 줄만 알았지 글과 생활 속에서 올곧게 살지는 않았는데, 실천은 유보한 채 책상에 앉아 인유하고 주석 달면서 과잉 해석을 일삼는 것이 과연 온당한 태도일까"라고 묻는다. 독자들이라고 예외 없다.

'한국의 일부 독자는 비굴한 면이 없지 않다. 자기 줏대나 견해가 없는 것이다. 작심하고 말하고 싶은 내용이 있는데 그것은 독자들이 시를 읽지 않고 시인을 읽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예술가는 죽을 때까지 현역이어야 한다. 초심을 잃는 순간 타락한다. 진실은 불편하다.'

어린시절 손님이 오면 닭장에 들어가 닭을 잡는 일을 도맡았는데, 그가 들어가면 닭들이 이리저리 푸드덕거리며 안간힘을 쓰며 도망다니다가 한 녀석을 처리하고 나면 금세 고요해지는 상황을 떠올린다.

'천연덕스럽다. 돌대가리들. 방금 전의 소란을 벌써 잊었다. 아니다. 본능적으로 죽음을 피했다는 것을 안 것이다. …천렵을 하는 동안 아수라장으로 변해 버린 냇물에는 검붉은 흙물이 일고는 했다. 그러나 한바탕 소란이 지나가고 난 뒤 이내 투명한 거울로 돌아간 냇가에는 살아남은 물고기들이 겅중겅중 물속을 걸어 다니는 구름의 연한 속살을 파고들거나 척척 늘어지게 드리운 물푸레나무 가지들 사이를 넘나들며 그늘의 평화를 유영했다.'

그는 이 기억을 붙들고 "사람이 사는 세상에도 이런 닭 같은, 물고기 같은 존재들이 없다고 나는 감히 주장하지 못한다"면서 "망각에 익숙한 존재들을 생각하면 두려운 일"이라고 세월호 7주기에 썼다.

이번 산문집에는 세상에 대한 시인의 예리한 시선을 담은 글들을 포함해 문학을 대하는 태도, 좋은 시를 짓는 요령, 김주대 시인과의 대담, 일상에서 건져 올린 단상들이 고루 담겨 있다. 이재무는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괴테의 말을 떠올리면서 "열심히 사는 삶이 미덕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자"고 말한다. 마지막 글에서는 "결코 후회하지 말라"는 니체의 말을 인용하면서 "후회는 현재의 삶을 방해하는 나쁜 감정이고, 무능한 자들의 나쁜 버릇"이라고 강조한다.

이재무는 서문에도 "완벽한 혼자이고 우주적 고아일 뿐인 우리는 현재에 충실하며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걸어야 하는 것"이라고 대범하게 썼지만, 정작 마포 강변을 거닐며 '유정천리'를 부르다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인생길은 몇 굽이냐"는 노랫말에 이르러 갑자기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지는 못했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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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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