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이종우의 인사이트] 일제 징용 피해배상, 돈이 아니라 자존심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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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우의 인사이트] 일제 징용 피해배상, 돈이 아니라 자존심 문제다

UPI뉴스
기사승인 : 2023-01-19 09:09:42
1972년 한중 국교수립 협상 때 사과한 日, 당당했던 中
마오쩌둥은 배상 요구하지 않았지만 훈수 두듯 '당당'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당시 한국은 협상서 열세 상황
지금은 당당한 국격 갖췄는데 왜 스스로 굴종 선택하나
1972년 9월 25일 다나카 총리가 중국과 국교 수립을 논의하기 위해 베이징에 도착했다. 첫날 1차 회담이 끝나고 만찬 때 일본 총리는 '일본은 과거 전쟁으로 중국 인민에게 중대한 손해를 야기한 데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며 깊은 반성을 표하는 바입니다'라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것도 만찬 시작과 끝 두 번이나.

환영 연회가 끝나고 다나카 총리는 마오쩌둥(毛澤東)을 만나기 위해 그의 서재로 찾아갔다. 한시간가량 계속된 접견에서 마오는 바짝 긴장한 일본 총리에게 "국교 수립을 위한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와 싸움은 끝났소?"라고 물었다. 그리고 "싸우지 않으면 안되오, 싸우지 않으면 사귈 수가 없소"라는 말을 남겼다. 고수가 하수에게 훈수를 두는 형태였다.

회담에서 중국은 전쟁 배상을 요구하지 않았다. 이런 중국 정부의 당당함을 보면서 중국 국민들은 청일전쟁 패배 이후 일본 시모노세키에서 열렸던 협상을 떠올렸다. 당시 73세였던 리훙장(李鴻章)은 55세의 이토 히로부미 앞에서 평화를 애걸했고, 일본은 오만한 태도로 일관했다. 80년 만에 서로의 태도가 180도 달라진 것이다.

같은 시각 대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9월 17일 일본 특사가 대만에 도착해 대만정부 지도자와 3일간 회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일본은 4000만 달러에 달하는 원자력발전소와 1700만 달러의 도로 건설을 포함해 타이완 경제 발전을 지원하겠다고 제안했지만 대만 정부가 단호히 거절했다. 

일본 특사가 장징궈(蔣經國) 행정원장에게 "타이완이 일본에게 원하는 게 무엇인가"라고 묻자 장징궈는 일본이 친구를 팔아 넘기는 것을 그만두어야 하며, 일본이 베이징 정부를 승인할 경우 타이완은 일본과 관계를 단절하겠다고 밝혔다. 

중국과 대만의 사례와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당시 우리를 비교해 얘기하고 싶지 않다. 그때 우리는 너무 가난해 한 푼이 아쉬웠고, 중국처럼 잠재적인 힘을 가지고 있지도 않아 회담에서 열세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대일청구권에 목을 매고, 불리한 조항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합의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으로 따지면 우리와 일본이 엇비슷하다. 전체 GDP를 봐도 우리의 경제력이 일본의 절반을 넘었다. 일본이 자랑하던 전자산업에서는 일본 상위 10개 기업의 이익을 다 모아도 삼성전자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너무 가난해서 모든 걸 참아야 하는 상황이 아니다.

외교부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 대신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통해 보상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필요한 자금은 우리기업이 내는 기부금으로 충당할 예정이다. 이런 방안을 내놓은 이유로 강제집행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일본 기업들이 이미 한국에서의 경제활동을 중단하고 자산을 철수해버려 압류할 자산이 없다는 사실을 들었다. 

보수정권은 일본과 관련된 일이 벌어지면 돈으로 해결하려 한다. 박근혜 정부 때 한일위안부협상이 그랬고 이번도 비슷하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진정 원하는 게 돈 뿐일까? 국가가 부강해지고, 힘이 강해지면 그에 맞는 당당함을 보여야 한다. 비단 이번 일만이 아니라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우리 정부가 일본 앞에서 당당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1965년 한국의 저자세가 피치 못할 사정 때문이었다면 지금의 저자세는 굴종일 뿐이다.

▲ 이종우 이코노미스트

● 이종우는

애널리스트로 명성을 쌓은 증권 전문가다. 리서치센터장만 16년을 했다. 장밋빛 전망이 쏟아질 때 그는 거품 붕괴를 경고하곤 했다. 2000년 IT(정보기술) 버블 때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용감하게 외쳤고, 경고는 적중했다.경제비관론자를 상징하는 별명 '닥터 둠'이 따라붙은 계기다.

그의 전망이 비관 일색인 것은 아니다. 거꾸로 비관론이 쏟아질 때 낙관적 전망을 내놓은 경우도 적잖다. 2016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브렉시트' 결정 직후 비관론이 시장을 지배할 때 정작 그는 "하루 이틀이면 진정될 것"이라고 낙관했고, 이런 예상 역시 적중했다.

△ 1962년 서울 출생 △ 1989년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 1992년 대우경제연구소 입사 △ 2001년 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 △ 2007년 한화증권 리서치센터장 △ 2011년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 △ 2015년 아이엠증권 리서치센터장 △ 2018년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 저서 <기본에 충실한 주식투자의 원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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