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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항의 인사이트] 에너지 민주화 투쟁이 시작됐다

임항
기사승인 : 2023-06-05 16:07:00
3공화국에 머물러 있는 에너지 정책
수도권 산업용 전기료 차등부과해야
발전소 인근보다 2배 이상 부과 필요
궁극엔 지산지소(地産地消)원칙 정립해야
우리나라 장거리 고압송전탑은 인구가 급감한 과소(過疏)지역 주민들의 피눈물을 싣고 흐른다. 전기를 많이 쓰는 수도권을 위해 농촌 주민들이 싼값에 토지를 포기하고 고향에서 쫓겨나기도 한다. 한국전력은 송전탑 건설을 위해서라면 법에 따라 민간 토지를 강제 수용할 수도 있다. 

대한민국의 에너지 정책은 아직도 제3공화국에 머물러 있다. 소음과 전자파 공해를 일으키는 고압송전탑은 경기도 평택에 이르면 땅 속으로 들어간다. 1등 국민과 2등 국민을 가르는 경계선이라고 해도 반박하기 어렵다.

▲ 경기도 안산시 대부도공원 인근 해안길에서 바라본 송전탑. [UPI뉴스 자료사진]

지금 이 순간에도 동해안에서 동서를 가로질러 수도권까지 연결하는 '500㎸ 동해안―신가평 송전선로' 건설 사업이 여기저기서 갈등을 낳고 있다. 건설 중인 신한울원자력발전소와 삼척 화력발전소 블루파워 등이 생산할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한 송전탑 440개가 백두대간 보호지역과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을 관통하면서 230km를 이어 달릴 계획이다. 2025년 완공이 목표다.
 
울진, 삼척, 봉화, 영월, 정선, 평창, 횡성, 홍성 등 3개도 10개 지자체가 송전탑 건설사업 해당지역이다. 일부 구간은 사업 실시계획이 승인돼 공사를 앞두고 있지만, 홍천과 횡성지역에서는 협의가 난항하고 있다. 

주민들은 송전탑 원천 반대에서 한발 물러나 지중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최근 빈발하는 산불과 산사태 등 자연재해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지중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환경단체인 녹색연합은 송전탑 공사 구간 가운데 경북 울진, 봉화 등지가 포함된 동부 1·2·3구간에서 대규모 자연 훼손이 일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곳은 생물다양성이 매우 높은 지역이다.

한국전력은 요지부동이다. 지중화 요구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훨씬 더 큰돈이 들기 때문이다. 

송전탑 갈등은 때로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정도까지 치닫는다. 지난 2012년 1월 16일 당시 74세이던 이치우 씨는 경남 밀양시 산외면 희곡리 보라마을 보라교 앞 도로에서 휘발유를 온몸에 끼얹고 분신했다. 이 지역은 고리원자력 발전소로부터 750㎸고압송전선로가 지나갈 예정부지였다. 그는 자살하기 전에 "내가 죽어야 문제가 해결되려나"라고 연신 읊조렸다고 한다.

문제의 본질은 우리나라가 에너지를 만들고 쓰는 방식에 있다. 공급중심의 에너지정책, 원거리 대량수송 위주의 중앙집중 공급방식으로는 송전탑 갈등을 멈출 수 없다. 2021년 기준 지역별 전력 자급률을 보면 인천이 242.99%로 가장 높고 충남 227.92%, 부산 197.54% 순이다. 반면 서울과 경기의 전력 자급률은 11.3%와 61.62%에 그친다. 그런데도 전기요금이 모두 같다는 것은 지역 차별이라는 지적을 면할 수 없다. 

게다가 원자력발전소는 경남·북과 전남에 집중돼 있고, 화력발전소는 충남과 인천에 주로 몰려 있다. 전력생산지와 소비처 간의 거리 격차는 더 많은 고압 송전선로를 필요로 하고, 많게는 30%까지 송전 손실을 낳는다. 그런 터에 앞으로 확충되는 IT산업의 데이터센터와 신설되는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는 모두 경기도, 인천, 서울에 집중될 예정이다. 설상가상이다.

데이터센터는 8GW, 반도체 클러스터는 10GW의 천문학적 전력을 필요로 한다고 알려져 있다. 전력수급의 불균형이 더 심해진다는 말이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029년까지 전체 데이터센터의 86.3%가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에 몰릴 예정이다. 

지난달 2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안은 본질적으로는 이런 현실에 제동을 걸기 위한 것이다. 지역 간 전력 공급·수요 불균형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여야가 법안 발의 6개월 만에 처리한 것이다. 

그렇지만 중앙언론에서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지방언론에서는 주로 전기요금을 지역별로 차등 부과할 수 있게 된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전기요금의 차등 부과는 발전소의 분산배치를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 더 중요한 것은 대규모 전기 수요처가 기존 발전단지 근처에 입지하도록 하거나 수요처 가까운 곳에 발전소를 짓도록 유도하는 정책 목표다. 즉 전기도 지산지소(地産地消)를 원칙으로 삼아 송전손실을 줄임으로써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하고, 송전탑 건설로 인한 사회적 갈등과 환경파괴를 예방하자는 것이다. 또한 대규모 발전소가 있는 지방에 공장이 새로 입지를 정하거나 신규 기업이 들어온다면 수도권 과밀해소와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전기요금을 차등 책정한다고 했을 때 도대체 얼마나 큰 차이를 둬야 이런 정책이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인가. 이를 위해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1월 14일 대표 발의한 '전기사업법 개정안'이 이미 상정돼 있다. 개정안은 전기판매사업자가 전기요금과 관련한 사항을 정할 때 발전소와 전기 사용자의 거리와 전압, 전력예비율 등을 고려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거리가 먼 지역으로 전력을 공급하려면 전압과 전력 예비율 모두 높아야 하므로 요금을 달리하자는 것이다. 

요금 차등 책정의 원칙과 차등 정도를 어떻게 정할 것인지가 문제의 핵심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중장기적으로 용도별 요금체계를 폐지한다는 전제 아래 한시적으로 인천을 제외한 수도권 산업용 전기요금을 발전소 인근지역 산업용 요금의 배 이상 부과하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다른 하나는 수도권의 대규모 전기수요처가 자체 발전설비를 갖추는 경우와 가까운 곳에 스스로 발전소를 건설하거나, 혹은 발전사업자를 유치할 경우 낮은 전기요금은 물론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도 검토해 봄직하다. 

데이터센터와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가 수도권을 고집할 경우 경기도 서해안에 대규모 해상풍력발전은 물론 심지어 한강하구에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해야 할지도 모른다.

수도권의 많은 사업장과 주민들이 반발할 것이다. 상업용과 가정용 전기에 대해서는 지역 간 요금격차를 크게 할 필요가 없다. 정치적으로도 불가능할 것이다. 전기 수급과 요금을 둘러싼 민주화 투쟁은 이제 막 시작됐다. 

▲ 임항 사회전문기자

KPI뉴스 / 임항 사회전문기자 yh@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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