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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표면 '남병철 크레이터' 주인공의 숨은 이야기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기사승인 : 2024-08-23 10:17:44
[김덕련의 역사산책 ⑥] 5개 주제 어구로 살펴본 남병철의 삶
고위 관료였던 조선 천문학자‧수학자…퇴청 후엔 은둔의 선비
학계 "19세기 중반 최고 수준의 천문학적 성취 보여줬다"
"동생 남병길과 함께 조선 천문학의 화려한 끝 장식" 평가도

달 표면 크레이터(충돌구)에 처음으로 한국인 이름이 붙었다. 주인공은 조선의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인 남병철(1817~1863)이다.

경희대 우주탐사학과 다누리 자기장 탑재체 연구팀이 지난 19일 '남병철 크레이터' 명명 사실을 공개하자 많은 매체가 이를 보도했다. 그런데 정작 남병철의 삶이 어떠했는지, 과학과 수학 분야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를 충실히 다룬 기사는 찾기 어렵다. 

 

▲ 달 표면 '남병철 크레이터'의 모습. [경희대학교 제공]

 

조선 시대 과학‧수학사 연구 결과물 등에 담긴 남병철의 삶과 활동을 5개 주제 어구를 매개로 살펴본다.

① 고위 관료이자 은둔의 선비: 남병철은 독서광이었다. 마치 먹을거리에 주린 것처럼 책을 좋아했다고 한다. 또 기억력이 비상했다.

이러한 지적 능력을 바탕으로 20세에 과거에 급제한 후 지금의 장관에 해당하는 판서를 역임했고, 문신들이 선망한 자리인 홍문관 대제학도 지냈다. 그러면서 천문‧역법 등을 담당하는 기구인 관상감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제조(提調)직을 오랫동안 겸임했다.

퇴청 후에는 사뭇 다른 느낌의 삶을 살았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자택은 조용하기만 했고 남병철은 함부로 다가가기 어려운 은둔의 선비와 같았다고 기록돼 있다. 남병철에게 퇴청 후는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② 안동 김씨: 남병철은 의령 남씨다. 의령 남씨 집안은 영의정을 여럿 배출한 유력 가문으로 노론의 주요 축 중 하나였다. 의령 남씨 집안의 일원인 것에 더해 남병철은 그보다 훨씬 막강한 또 다른 가문과 이어져 있었다. 세도 정치로 잘 알려진 안동 김씨다.

60년 세도 정치의 문을 연 김조순이 남병철의 외할아버지다. 남병철의 장인 김조근도 안동 김씨의 중심인물 중 한 명으로, 제24대 임금 헌종(재위 1834~1849)의 장인이기도 했다. 헌종은 열 살 연상인 동서 남병철을 총애해 자주 불렀고, '규재'라는 호까지 내려줬다.

남병철의 생애 전 시기는 세도 정치기에 해당한다. 안동 김씨와 외가‧처가로 맺어진 점과 헌종의 총애는 귀양 한 번 없이 고위 관료로서 순탄했던 남병철의 삶을 설명할 때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요소다. 남병철이 안동 김씨와 대립한 추사 김정희 등과 교유하는 등 정쟁과는 일정하게 거리를 뒀다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③ 최고 수준의 천문학적 성취: 남병철은 천문학과 수학에 능통하다는 평가를 당대부터 받았다. 오랫동안 관상감 제조를 맡은 데서도 잘 드러난다. 다수의 책을 남겼는데 '추보속해(推步續解)', '의기집설(儀器輯說)', '해경세초해(海鏡細草解)'가 주요 저작으로 꼽힌다.

추보속해는 천문학 서적이다. 독일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의 타원 궤도 운동론을 적용해 태양과 달의 운동을 계산하는 방법을 정리하고, 당시 조선과 청나라에서 사용되던 역법인 시헌력의 계산 과정까지 전문적으로 서술했다.

학계에서는 이 책에서 남병철이 19세기 중반 조선 유학자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천문학적 성취를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동아시아에 전해진 서양 천문학 이론을 이해하고 나름대로 재해석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의기집설은 혼천의를 비롯한 열 가지 천문 기구의 구조, 제작법, 사용법 등을 정리한 책이다. 조선 시대 전통 천문 기구를 총정리한 역작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해경세초해는 방정식 풀이법을 정리한 수학 서적이다.

 

▲ 한국천문연구원이 지난 2월 29일 복원 모델 제작에 성공했다고 밝힌 '남병철 혼천의'. 남병철 책 '의기집설'의 혼천의 편 기록을 바탕으로 복원했다. [한국천문연구원 제공]

 

④ 동생 남병길: 남병철에겐 든든한 학문적 동지가 있었다. 세 살 터울의 동생 남병길이다. 남병길은 형 못지않게 천문학과 수학에 능통한 학자였다. 형제는 부친상을 당한 후 3년간 천문‧역법‧수학 연구에 함께 몰두하기도 했다. 학계에서는 남병철 형제가 조선 시대 천문학의 화려한 끝을 함께 장식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남병길은 신분을 뛰어넘은 공동 연구라는 인상적인 장면을 수학의 역사에 새긴 인물이기도 하다. 파트너는 중국 수학뿐 아니라 서양 수학까지 소화해 조선 수학을 체계화하려 한 이상혁이라는 중인 신분의 수학자였다. 두 사람이 신분을 초월한 학문적 교류를 통해 조선 최고의 수학적 업적을 이뤘다는 평가도 있다.

⑤ 서양 과학 중국 원류설 비판: 천문‧역법 등에서 뛰어난 성과를 얻은 서양 과학이 사실은 고대 중국에서 기원했다는 주장을 '서양 과학 중국 원류설'이라 한다. 남병철은 당시 상식처럼 여겨지던 중국 원류설을 도적질에 비유하며 강하게 비판했다. 서양인이 거둔 성과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양인을 우월하거나 대등한 존재로 여겨 그런 주장을 편 것은 아니었다. 남병철은 기본적으로 성리학자였고, 화이론을 바탕으로 서양인을 본성이 편벽된 존재로 규정했다. 그런 서양인이 중국인보다 뛰어난 것은 역법 한 가지뿐이니 그 분야 성과를 인정해 시빗거리를 제거하자는 차원에서 중국 원류설을 비판한 것이다.

서양인 본성에 대한 일방적인 규정 등은 오늘날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중국 원류설이 억지 주장임을 분명히 한 부분은 주목할 만하다. 조선에서 중국 원류설을 본격적으로 비판한 최초의 인물이 남병철이라는 평가도 있다.

△주요 참조=노대환 논문(「19세기 중반 南秉哲(1817-1863)의 학문과 현실 인식」, 『이화사학연구』 40, 2010), 남경욱 논문(「남병철 『의기집설』의 험시의(驗時儀) 연구」, 『한국과학사학회지』 33-3, 2011), 문중양 논문(「전근대라는 이름의 덫에 물린 19세기 조선 과학의 역사성」, 『한국문화』 54, 2011), 전용훈 논문(「南秉哲의 推步續解』와 조선후기 서양천문학」, 『규장각』 38, 2011), 장혜원 책(『수학박물관』, 성안당, 2010)

 

KPI뉴스 / 김덕련 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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