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 참전 용사·후손으로 이뤄진 합창단 입국
놀라운 전과…그러나 승리로 보기 어려운 사례 존재
군사학 박사 "253전 253승 기록 수정될 필요 있어"
파병 관련 기록 혼선…"추모는 정확한 기록에서 시작"
과도한 반공주의보다는 폭넓은 이해 위한 노력 필요
한국전쟁에서 활약했던 에티오피아군 참전 용사와 그 후손들로 이뤄진 강뉴합창단이 22일 국내 단체 초청으로 입국했다. 내달 말까지 국내에 머물며 기념 공연 등을 할 예정이다.
다수 언론이 이들의 방한 소식을 보도했다. 해당 기사들에는 에티오피아군이 한국전쟁에서 253전 253승을 거뒀다는 내용이 공통적으로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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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티오피아 한국전 참전기념관 홈페이지의 기념관 소개 화면 중 일부. |
253전 253승은 오래전부터 한국전쟁 시기 에티오피아군 관련 기사에 거의 빠짐없이 등장한 이야기다. 거기에는 '6·25 무패 신화', '불패 신화', '백전백승' 같은 찬사가 따라붙었다.
253전 253승 신화를 구체적으로 검증하는 시도는 찾기 어려웠다. 이 신화는 사실과 부합할까? 학계에서는 당시 에티오피아군이 놀라운 전과를 거둔 것은 분명하지만 253전 253승은 군사적 관점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표현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에티오피아는 한국전쟁 때 전투 부대인 강뉴부대를 파병했다. 강뉴는 '상대를 궤멸시키는 것' 또는 '혼돈에서 질서 확립', '초전박살'을 뜻하는 에티오피아어다.
강뉴부대 1진(1153명)은 1951년 5월 부산에 도착했고, 휴전 협상이 시작된 7월 경기도 가평에 배치됐다. 강뉴부대는 1952년 2진(1094명) 도착 후 1진이, 1953년 3진(1271명) 도착 후 2진이 귀국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강원도 화천·양구·철원, 경기도 연천 등 중동부 및 중부 전선에서 작전을 수행했다.
군사학 박사인 장재규 영남대 군사학과 부교수는 에티오피아의 한국전쟁 참가 관련 역사적 사실을 검증한 2024년 논문에서 강뉴부대의 253회 전투는 분대·소대급의 정찰·매복·수색 같은 소규모 작전을 모두 포함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대·중대급 이상 규모의 공격·방어 작전도 일부 수행했지만 253회 모두 그런 사례라고 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장 교수는 253전 253승 기록은 수정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군사적 승리의 의미를 적 격멸 또는 격퇴에 국한하지 않고 폭넓게 해석하더라도 승리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사례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그 근거다.
그런 사례로 1951년 9월 12일, 1952년 7월 24일에 각각 전개된 전투를 제시했다. 두 사례에서 에티오피아군은 적군 고지를 점령하라는 명령을 받고 적을 공격했다. 그러나 점령·유지하지 못하고, 접전 끝에 전투력을 최대한 보존한 상태로 복귀했다.
장 교수는 두 전투 사례를 실패한 작전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복귀에 성공했다고 해서 승리한 전투로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강뉴부대의 전투 결과는 253전 253승이 아니라 '대부분 전투에서 임무 달성(승리)'으로 표현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에티오피아 현지 조사 결과도 그러한 판단에 영향을 줬다. 장 교수에 따르면, 강뉴부대의 놀라운 전투 결과를 가장 자랑스러워할 에티오피아 참전 용사와 후손들이 제작한 자료에 253전 253승에 대한 내용은 전혀 없다. '백전백승' 같은 표현이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한국과는 다른 분위기라는 얘기다.
장 교수는 에티오피아군 총인원 등에 대한 기록이 자료에 따라 다르고 모호한 부분이 많다는 지적도 했다. 파병 총인원으로 통상 6037명이 제시된다. 장 교수는 이것이 한국전쟁 시기에 활동한 전투 부대와 1953년 7월 정전협정 체결 후 평화유지군으로 주둔한 인원을 모두 포함한 수치임은 분명하지만, 6037명으로 집계한 근거는 찾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에티오피아군 파병 관련 사항이 여러 기록과 전시에서 다르게 제시되거나 불명확하게 처리된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 연구자는 장 교수만이 아니다. 한국 현대사 연구자인 김도민 강원대 역사교육과 조교수는 장 교수에 앞서 2022년 논문에서 그 문제를 제기했다.
김 교수는 에티오피아군의 한국 주둔 종료 시점, 전사자 수 같은 기초적인 역사적 사실조차 여러 관련 책자 등에 상이하게 제시돼 있다고 밝혔다. 국가보훈처(현 국가보훈부)가 2012년에 발간한 하나의 책자 내에서도 에티오피아군 철수 시점이 서로 다르게 기술돼 있는 식이다.
김 교수는 "진정한 추모는 머나먼 아프리카에서 온 수많은 청년들의 주둔 기간과 인원 그리고 이곳에서 몇 명이 죽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에서 시작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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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동쪽으로 뿔처럼 돌출된 부분에 위치하고 있다. [에티오피아 한국전 참전기념관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
그와 함께, 에티오피아군 참전을 기리는 대표적 기념 시설인 '에티오피아 한국전 참전기념관' 전시의 문제점도 비판했다. 강원도 춘천에 있는 이 기념관은 2007년에 개관했다.
이 기념관의 전시 내용이 이분법적·냉전적인 반공주의 서사 구조에 따라 구성돼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판단이다. 한국전쟁 시기 파병, 1968년 에티오피아 황제의 한국 방문 등만 설명할 뿐 냉전 시대에 양국 간에 전개된 복잡한 역사적 관계 부분은 다루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제대로 다뤄지지 않은 대표적 주제가 에티오피아의 비동맹주의 역사다. 1960년대 이후 에티오피아는 미국 진영에도, 소련 진영에도 속하지 않으려 한 비동맹주의 지향 국가 중 하나였다. 한국전쟁 시기에 군대를 보냈던 에티오피아만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상당히 낯설 수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 다수가 직시하지 않은 에티오피아의 또 다른 모습이다.
김 교수는 에티오피아 황제 방한도 비동맹주의 문제와 관련돼 있다고 지적했다. 1960년대 중반 박정희 정권이 미국 편에 서서 베트남전쟁에 전투 부대를 보내면서 '비동맹주의' 에티오피아와 한국의 관계에 여러 어려움이 발생했고,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에티오피아 황제 방한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냉전적인 반공주의 서사 구조의 문제점에 더해 이 기념관 전시에 에티오피아의 전근대적·원시적·부족적 이미지를 부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과도한 반공주의 서사 및 원시적 이미지를 강조하는 접근 방식은 이 기념관만의 문제가 아니다. 에티오피아에 대한 한국 사회 전반의 인식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사안이다.
한국전쟁 시기에 한반도에 와서 피를 흘리고, 1974년 에티오피아에 좌익 정권이 들어선 후에는 한반도 파병 사실로 인해 고초를 겪은 에티오피아인들을 기억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말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에티오피아 역사 및 한국-에티오피아 관계를 폭넓게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때다.
△주요 참조=장재규 논문(「에티오피아의 6·25전쟁 참전 관련 역사적 사실 검증」, 『군사』 131, 2024), 김도민 논문(「춘천 '에티오피아 한국전 참전기념관'의 전시 분석과 개선 방향」, 『강원사학』 39, 2022)
KPI뉴스 /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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