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특별기획 광복군] ⑦ 인면전구공작대원 4명은 왜 훈장을 받지 못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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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광복군] ⑦ 인면전구공작대원 4명은 왜 훈장을 받지 못했나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기사승인 : 2023-11-24 17:55:10
[한국광복군 인면전구공작대를 찾아서]
공작대원 10명 중 6명 서훈, 공작대 도운 외국인 2명도 포상
대장 한지성은 광복 후 행적 때문에 서훈 받지 못해
"김성호·송철, 친북 활동 인사와 동일인인지 추가 조사 필요"
이영수, 광복 후 78년이 지나도록 '미심사' 상태

 

UPI뉴스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주관하는 2023년 언론진흥기금 기획취재 지원사업(3차)의 일환으로 지난 8월부터 이달 초까지 미얀마와 인도를 방문해 한국광복군 인면전구공작대에 대한 기획취재를 진행했다. 2차 세계대전 때 인도·미얀마 전선에서 인상적 활동을 벌였으나 지금은 기억하는 이가 드문 인면전구공작대의 잊힌 역사를 복원하는 작업이었다. 인면전구공작대 유적지 전반에 대한 한국 언론 최초의 현지 조사이기도 한 기획취재 결과물을 8회에 걸쳐 연재한다.

한국광복군 인면전구공작대(이하 공작대)는 조국 독립을 염원하며 머나먼 인도·미얀마 전선에서 한뜻으로 싸웠다. 그러나 광복 후 서훈은 일부 대원에게만 이뤄졌다. 분단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면서 생긴 현상이다.


공작대원 10명 중 6명은 훈장을 받았다. 문응국·김상준·최봉진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나동규·안원생에게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박영진에게는 1993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공작대를 도운 외국인도 독립유공자로 포상됐다. 인도 현지에서 공작대원들에게 영어를 가르친 프랭크 얼 크랜스턴 윌리엄스(Frank Earl Cranston Williams) 선교사에게 올해 8·15를 맞아 건국포장이 추서됐다.

공작대와 영국군 간 연락 장교로 활동하다 1945년 3월 전사한 롤랜드 클린턴 베이컨(Roland Clinton Bacon) 대위에게는 202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또 베이컨 대위 전사 후 그를 대신해 연락 장교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알려진 부인 엘리자베스 펄 베이컨(Elizabeth Pearl Bacon)에 대한 포상 심사가 예정돼 있다. 

 

▲ 1945년 인도 콜카타에서 인면전구공작대장 한지성(가장 오른쪽)과 부인 안금생(오른쪽에서 세 번째, 안중근 동생 안공근의 딸), 베이컨 대위 부인인 엘리자베스 펄 베이컨(오른쪽에서 두 번째). [베이컨 대위 유족 제공]

 

이들과 달리 공작대장 한지성과 대원 김성호·송철·이영수는 독립유공자로 포상되지 않았다. 한지성에 대해 2018년 3·1절을 앞두고 서훈 심사가 진행됐으나 포상이 이뤄지지 않았다.

1912년 경상도 성주 태생인 한지성은 1930년을 전후해 중국에 망명한 후 독립운동에 매진하는데, 김원봉 쪽과 돈독한 관계를 형성했다. 1938년 김원봉이 중국 한커우에서 창설한 조선의용대에서 정치조 선전주임(1939년), 외교주임(1941년)으로 활약했다.

김원봉이 이끈 조선민족혁명당이 대한민국임시정부(임정)에 참여한 후 한지성은 임정의 입법 기관인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선출됐다. 임정 선전부와 광복군 업무도 수행하던 중 공작대장으로서 인도·미얀마 전선에 파견돼 활동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이런 공적에도 서훈 대상이 되지 못한 건 광복 후 행적 때문이다. 1946년 귀국 후 한지성은 좌우 연합 전선 구축을 시도한 김원봉 등과 함께 활동하지만, 1947년 경찰에 잡혀 석 달간 구금되는 등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

결국 1948년 4월 남북연석회의 참석차 평양에 간 후 북한에 머물게 된다. 한국전쟁 발발 후 서울이 북한에 점령된 때에는 서울시임시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올해 3·1절을 앞두고 김성호·송철에 대한 서훈 심사가 진행됐으나 포상이 이뤄지지 않은 것도 분단 문제와 무관치 않다. 보훈부는 "해방 후 친북 활동 자료에 두 사람 이름이 나오는데, 동일인인지 동명이인인지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이들의 신상 정보가 불명확하다는 점도 작용했다. 김성호는 출신지(신의주)는 확인되지만 생몰년이 미상이고, 송철은 출신지·생몰년 모두 미상이다.

이영수도 출신지·생몰년 미상인데, 송철과 달리 서훈 심사조차 받지 못했다. 보훈부는 "기초 조사가 충분치 않아 심사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밝혔다. 광복 후 78년이 지나도록 '미심사' 상태인 이영수 사례는 한국 사회에서 공작대가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준다.

 

▲ 1944년 인도 파구(Fagu)에서 영국군 I.F.B.U.(인도전지선전대) 대원들과 자리를 함께한 인면전구공작대원들. [베이컨 대위 유족 제공]

 

이처럼 분단의 그림자로 인해 서훈 여부에 차이가 생겼지만, 그것과 별개로 이들의 독립운동은 온전하게 기억될 가치가 충분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지난해에 발간된 '한국광복군 인면전구공작대장 한지성의 독립운동 자료집'을 편찬한 김영범 대구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공작대는 동남아 전선에서 영국군이 난관에 봉착했을 때 특수 임무를 수행하며 큰 공을 세웠다"고 평가했다.

김 명예교수는 "연합국의 일원이자 교전국으로 인정받아 전후 처리에서 동등한 지위를 얻는 데까지 이르는 목표를 이루진 못했지만, 이들의 헌신적 분투는 그 자체로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5년 독립기념관팀의 일원으로 공작대 유적지를 최초로 답사한 박민영 전 독립기념관 수석연구위원은 "처음에 공작대원 증언을 읽었을 때 '과장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영국군, 일본군 기록을 통해 공작대의 활약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극소수였지만 성과가 상당했던 공작대의 활약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KPI뉴스 / 탐사보도부 김덕련전혁수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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