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기자의 눈] '세계 3위' 국중박, 친일파 글씨도 못 가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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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세계 3위' 국중박, 친일파 글씨도 못 가려냈다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Google구글에서 선호하는 출처로 추가
기사승인 : 2026-09-08 16:10:38
친일파 글씨가 독립운동가 유물로 잘못 전시된 것으로 판명
유홍준 관장 "사실 확인은 박물관 기본 책무…미흡했다"
'국중박', 지난해 관람객 급증하며 박물관 세계 순위 상승
외형 성장에 치중해 기본을 소홀히 하지 않았는지 점검해야

국립중앙박물관(이하 '국중박')이 치명적 실수를 범했다. '국중박'은 특별전 '우리들의 밥상'(7.1.~10.25.)에 애국지사 박원근이 썼다고 전시했던 '一飯是國恩(일반시국은)' 유묵이 친일반민족행위자 박중양이 쓴 글씨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7일 밝혔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역사적 인물에 대한 정확한 사실 확인은 박물관이 국민 앞에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책무인데 이에 대해 미흡했다"며 사과했다. 

 

▲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8월 13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열린 특별 강연에 앞서 특별전 '우리들의 밥상' 전시품의 검증 미흡에 대한 사과문을 읽고 있다. [뉴시스]

 

'一飯是國恩(일반시국은)' 유묵은 '한 그릇의 밥도 다 나라의 은혜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앞서 '국중박'은 이 유묵이 친일반민족행위자 작품일 수 있다는 제보가 들어오자, 지난달 10일 이 유묵을 특별전에서 철수시키고 전문가 7인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해 검증을 진행했다. 그 결과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쓴 글씨로 판명됐다.

친일파 글씨가 독립운동가 유물로 둔갑해 전시되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기본적인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아 이런 참담한 상황을 만든 기관이 다른 곳도 아니고 한국을 대표하는 박물관인 '국중박'이라는 점에서도 문제는 심각하다.

'국중박' 전시를 계기로 유묵의 존재를 뒤늦게 알게 된 독립운동가 박원근 유족이 받았을 충격도 간과할 수 없다. 특별전에 찾아와 전시품 앞에서 흐느꼈는데 그게 친일파 작품으로 판명됐으니, 이들이 얼마나 큰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박중양이 이토 히로부미 숭배자이자, 친일파 중에서도 한국을 철저히 멸시·혐오하고 일본을 진심으로 찬양한 이른바 '신념형 친일파'로 평가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국중박'은 박원근 유족에게 조사 경위와 결과를 설명하고 거듭 사과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유사한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전시품과 전시 내용에 대한 사전 검증을 강화하고 근현대사 전문가 풀(pool)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시 관련 검증 강화는 당연한 일이다. 전문가 풀 확대도 필요하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더 폭넓게 바라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국중박'의 외형 성장을 지나치게 부각하는 사회 분위기의 조성과 확산을 되짚어보는 것도 그러한 방법 중 하나다.

지난해 '국중박' 관람객은 크게 늘어 650만 명에 이르렀다. 역대 최다 관람객을 기록하며, 연간 관람객 수에서 전 세계 박물관·미술관 중 3위를 차지했다(순위 기준은 본부가 영국에 있는 미술 전문 매체 '아트 뉴스페이퍼'의 통계). 8위였던 2024년에 비해 순위가 수직 상승했다.

그러는 동안 세계 박물관·미술관에서 관람객 수 기준 순위 상승에 과도하게 초점을 맞추는 보도가 다수의 매체에서 이어졌다. 8위에서 출발해 서구의 저명한 박물관·미술관을 하나하나 제치고 세계 3위를 달성했다고 자축하며 성과를 강조하는 모양새였다. 경마 중계 또는 올림픽 메달 경쟁을 연상시키는 접근 방식이기도 했다.

그러한 보도는 올해에도 계속됐다. '국중박, 세계 박물관 3위로 우뚝', '국중박 전 세계 넘버3' 같은 제목을 붙이고 순위 상승을 강조하는 기사를 심심찮게 접할 수 있었다. '국중박 올해 세계 2위 보인다'며 미리부터 기대감을 드러내는 기사도 있었다.

언론만이 아니었다. '국중박' 자체도 자유롭다고 볼 수 없다. '국중박'이 '2025년 연간 관람객 세계 3위' 달성을 강조하며 4월 1일 배포한 자료에서도 이를 느낄 수 있다.

이 자료에서 '국중박'은 세계 3위 기록이 "특히 영국박물관([관람객] 644만 120명),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598만 4091명) 등 세계 유수의 기관을 제치고 거둔 성과"라고 부각했다. 또한 "('국중박'을 비롯한) 한국의 국립 문화 기관 5곳이 세계 100위권에 진입하며, 한국 박물관과 미술관의 국제적 존재감이 한층 뚜렷해졌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국중박'의 외형적 성취를 앞세운 이야기가 안팎에서 쏟아지는 동안, 정작 박물관의 기본인 전시품 검증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독립운동가의 유묵으로 믿고 그 앞에서 눈물 흘린 유족에게, 그것이 친일파의 글씨였다는 뒤늦은 판정은 단순한 전시 오류일 수 없다. 세계 3위라는 화려한 기록 뒤에서 '국중박'이 놓친 것이 무엇인지 뼈아프게 묻는 사건이다.

 


 

▲ 김덕련 기자

 

KPI뉴스 /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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